해가 거의 모습을 감출 때쯤 한주와 치에는 구운 고기를 잔뜩 접시에 담아서 들어왔다. 안에는 한영이 말끔하게 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미끈한 체형에 에이프런을 두른 스믈 다섯의 젊음은 귀엽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다. 싱글녀라면 우렁 신랑 같이 집에다 하나씩 비치해두고 싶은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늦었네. 자 먹자”

아닌 게 아니라 생각보다 늦었다. 한주와 한영은 평소보다 늦은 저녁에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치에는 낮에 시음이라고 술을 적잖이 마셔서 배가 안 고플 것 같은데도

“이타다키마스!”

하며 가슴에 손을 모으고는 기쁘게 음식에 팔을 뻗었다.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더니,

“와! 오이시이! 이 고기 진짜 맛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소금 뿌려서 숯불에 굽는 것 같더니?”

치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그게 숙성의 힘이지. 특별한 건 없어. 두툼하게 잘라서 진공포장하고 김치냉장고에 둔 것뿐이야. 우리 고기는 6~8주 정도 지나면 감칠맛이 완전히 끌어올려지지. 그다음부터는 된장이나 치즈 같은 발효취가 생기기 시작하고. 지금 마침 때를 잘 맞춰 왔네 치에가.”

“와, 역시 한국은 야키니쿠의 나라구나. 대단한 고기야.”

“뭘, 고기도 2등급으로 사서 숙성시켰는데. 장기숙성엔 마블링 많은 고기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거든. 지방은 산화가 빠르고 발효취가 단백질보다 더 강렬해서 다루기가 어렵지.”

“이 된장찌개도 정말 맛있다.”

“응, 일본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한국 대기업의 메이커 제품이 아니라 홍천에서 소규모로 만드는 ‘아티잔’ 된장이라고나 할까. 감칠맛이 다르지?”

“응. 고기 단백질도 콩단백질도 모두 발효의 힘이 대단하네.”

 한영이 아주 살가운 목소리로 잠시 끼어들었다. 

“그렇게만 드시면 쉬이 물려서 많이 못 드시니까 쌈채소도 드세요. 여기 풋고추도.”

“아 그럴께요. 고마와요. 우리 한 잔 해요.”

셋이 잔을 모았다. 셀러에서 가져온 술이 또 걸작이라 치에는 정말로 이렇게 입이 호사한 날은 생전 처음인 듯한 느낌이었다. 부르고뉴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고 미슐랭 스타 음식점에 갔던 날도, 교토에서 사케 양조장을 돌고 전통 깊은 가이세키 집에 갔을 때도 좋았지만 정말 이런 날은 처음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말 고마와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술도 음식도 좋은 것을 많이 먹고 마셔봤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이네요. 두 분께 감사합니다.”

치에가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사실 여기서 별로 더 바랄 게 없어요. 샐러에는 색색가지 술이 가득 차있지, 텃밭에는 채소며 허브며 식탁이 풍성하지, 장류며 다른 가공식품이며 농산물이며 전국에 잘한다는 곳을 거래처로 둬서 여러가지로 먹는 것 하나만은 누구도 부럽지 않아요. 특히 텃밭이 있고 없고는 정말 중요해요. 수확한 직후의 신선함이란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거거든요.”

한영이 해맑게 웃으며 자랑이라기보다는 행복을 나눠주고 싶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영이가 요리를 아주 잘 해. 술도 음식의 하나지만 양조 안 하고 요리사가 되었어도 잘 했을 거야. 쟨 안 먹어보고도 상상만으로도 요리의 맛을 그리는 재주가 있거든. 그게 좋은 요리사가 되는 데에는 필수 재능이지.”

한주도 드믈게 표정이 풀어져서 한영을 칭찬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표정이다.

“어휴, 그래도 술은 어려워요. 좀처럼 결과물을 예측하기도 어렵고요, 일 자체도 요리 이상으로 힘든 것들이 많아요.”

“아 정말, 한영 씨 팔뚝 좀 봐. 몸은 호리호리한 데 팔뚝은 울퉁불퉁하고 굵은 게 꼭 오래 묵은 더덕뿌리 같네. 완전 섹시한 팔뚝이에요.”

치에가 한영의 팔뚝을 자연스럽게 만지며 말했다. 

“아 네, 혼자서 60리터나 80리터짜리 독을 옮기다 보면 자연히 이렇게 돼요.”

한영이 멋적어하며 말한다. 치에의 손길은 팔뚝에서 서서히 내려와 혈관이 울퉁불퉁한 손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멋져요. 남자의 단련된 팔이란 건.”

아직 술이 몇 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한영의 얼굴이 붉어지고, 한주의 눈썹이 찡긋하고 섰다. 이 급작스런 분위기의 변화는 뭘까.


용어설명 : 아티잔(Artisan)


본래는 직인(職人), 예술가와 대비되는 기술자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대량생산 제품에 대해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들의 예술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음식료 부문의 경우 아티잔 생산품들은 라이프스타일로서 생산자나 소비자 양 측에서 모두 붐을 이루고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백웅재작가의 뉴스레터 구독 신청https://writerpaik.stibee.com/

키워드

#아티잔 #Artisan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