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쌀과 밀누룩으로 빚은 아주 표준적인 청주에요. 특징이라면 가수량을 늘려서 드라이하게 만들어 보고 있다는 점 정도지요. 물을 늘리면 단맛이 줄고 드라이한 특징이 나타나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향온곡으로 빚은 술. 어디 한 번 시음을 해보세요.”

한영이 드라이한 청주 항아리에서 큰 스포이드 형태의 스테인리스 재질 도구로 술을 조금 채취해서 잔에 따라 치애에게 주었다. 치에는 신중하게 받아 들고 역시 테이스팅 모드로 돌입하려는데…,

“아 너무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시면 부끄러워요. 어디까지나 실험용 술들이라… 그냥 괜찮다 싶은 정도면 반주로 쓰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양조장 술들도 많으니까 그 술들을 드시면 돼요.”

“그런 기준이라면 물론 괜찮은 것 같아요. 향만 맡아봐도 알 수 있어요.”

“자, 그럼 이 청주는 합격인 것 같고, 그럼 향온곡으로 빚은 이 술도 살짝 시음을 해보시고요.”

한영이 이번에는 다른 독에서 술을 채취했다.

치에가 살짝 맛을 보고는 표정이 활짝 피어난다.

“이건 향이 말할 수 없이 좋은데요?”

“네 원래 향온곡으로 빚은 술들이 향이 좋은 편이지요. 저희는 거기에다가 2년째 숙성을 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향이 더 깊어지더라구요.”

“와, 이런 향은 상상도 못 했어요. 어지간한 와인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어요.”

“한주는 아직까지 출시 전 숙성들이 짧은 편이어서 그렇지, 장기숙성만 하면 향도 와인에 견줄 수 있을 정도가 될 수 있을 건 확실해 보여요. 아직 그 향을 컨트롤할 정도의 실험과 연륜은 없지만요. 어쨌든 이것도 통과한 모양이고…”

한영이 작은 병에 술을 채우고 이제 옆방으로 움직였다. 

“여기는 증류주를 숙성시키는 공간이에요. 이거 한 번 시음해봐 주세요.”

옹기가 주류이던 앞의 방과 달리 여기는 스테인리스 용기가 대부분이다. 치에는 우선 주는 술을 받아서 눈을 살피고 코끝으로 가져갔다.

“응? 이건 특이하고 강렬한 향이군요. 무슨 허브인가… 아니… 음… 소나무, 소나무 맞지요? 송화백일주에서 느껴지는 향과 같은 종류에요.”

“네 맞아요. 서양은 오크통을 쓰는데 우리는 소나무통을 써보면 어떨까 그런 소리들 술 마시면서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소나무 통을 만들기엔 나무도 너무 비싸고 우린 쿠퍼도 없으니까, 소나무로 우드칩을 만들어서 넣어봤어요. 소나무칩 만드느라 삽질을 꽤 했지요. 이것도 2년 정도… 이 양조장, 증류소의 연륜이 고작 그 정도니까요.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래도 마실만은 할 거에요.”

“음, 송화백일주나 송순주 같은, 소나무와 관련된 술이 많은 것은 한국의 자연환경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좋네요 소나무 소주. 한국에 왔으니 꼭 마셔봐야 할 것 같아요.”

“오키, 이것도 조금 담아가요. 그런데 사실 ‘한국이라면 소나무’라는 식생의 상식도 점점 바뀌어가고 있어요. 온난화 영향도 있고 숲의 주기도 있어서 중부지방 이남으로는 신갈나무가 많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요. 이 신갈나무가 참나무의 일종이라 굳이 수입할 필요 없이 이것으로 오크향을 내는 곳도 생겨나고 있지요. 이것도 역시 통을 만들 여건은 안 되니까 오크칩이나 오크바 등을 만들어 쓰고 있어요. 소나무칩도 그 방법을 기본으로 해서 만든 것이고요.”

“아 그래요? 그건 처음 듣는 얘기네요.”

“하하, 아마 오늘 처음 듣는 얘기 많으실 거에요. 저는 여기 시골에 박혀서 술만 만드는 편이지만 한주형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양조장 사장님들도 만나고 시음도 하고, 외국에도 가서 공부를 해 오곤 하거든요.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어마어마한 정보가 나와요. 저도 술 빚는 데 참고가 되는 이야기들이 많더라구요.”

숙성실에서 나와 생활하는 집 겸 사무 공간으로 쓰는 건물로 들어서려니 한주가 벌써 쌈채를 뜯어다 다 씻어 소쿠리에 받쳐두었고, 참숯에 불까지 피워 놓았다. 

“자 들어가서 조금 기다려. 숯불이 잘 올라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내가 고기 구워서 들어갈께.”

한주가 호스트 역할을 자임하는 투로 말했다. 어딘가 아버지 같은,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제가 들어가서 김치말이 국수 말아올 테니 치에 누나하고 형이 고기 구우세요.”

한영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치에는 어쩔까 망설이다가 괜히 도와준다고 주변에 서 있어봐야 솔직히 걸리적거리는 역할만 맡을 것이 눈에 보여서 차라리 밖에 있기로 한다. 숯불이 올라오기까지 한주는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불어대고 있고, 특별히 기승스러운 여름해는 아직도 넘어가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다 싶은 상태다.

“자, 이거 하나씩들 하세요. 벌써 날이 많이 덥네요.”

한영이 그 사이 맥주 캔 두어 개를 들고 나와서 테라스 난간에 세워 두고는 후다닥 들어간다. 알록달록한 것이 만원에 네 캔이라던가 여섯 캔이라고도 하는 수입맥주들인 것 같다.

”센스쟁이 녀석.”

한주가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할 때와 같은 톤으로 중얼거린다.


용어설명 : 향온곡, 쿠퍼(Cooper)


향온곡: 일반적인 통밀누룩과는 다르게 거피한 녹두와 통밀로 함께 누룩을 빚는다. 재료비가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녹두는 습기가 많아서 향온곡을 제대로 띄우기는 보통 밀누룩보다 훨씬 어렵다. 반면 통밀누룩으로 빚은 술에 비해서 훨씬 깊고 다양한 향의 프로파일이 형성된다.

쿠퍼(Cooper): 유럽에서는 포도주도 맥주도 다 통에 숙성시키고 통 단위로 유통을 했다. 이 통은 참나무로 만들어지는데, 참나무를 가공해서 통을 만드는 기술자가 쿠퍼이다. 베이커나 카펜터 같이 예전에는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어서 쿠퍼라는 성도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지금은 자동화가 많이 도입되어 본고장에서도 쿠퍼를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다. 목통 숙성의 전통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쿠퍼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근래 소규모 양조장들이 성장하면서 통을 만드는 쿠퍼도 생겨나도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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