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주는 고려 때부터 이름이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의 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주, 전통주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술, 오랜 역사를 지닌 신비로운 그 술. 일제시대 때 이래로 한주가 잊혀졌다가 다시 부활하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화주를 빚고 싶어 했다. 

오죽하면 이제는 대기업이 된 국순당의 선대 회장님이 양조장을 처음 경영하면서 만든 막걸리에 ‘이화주’라는 이름을 지었겠나. 전업양조가든 아마츄어든 그렇게 이화주는 한 번 꼭 도전해야 할 과제로 생각되었고, 그 결과 현재는 이화주를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술이 시장에 나와있다.

이화주가 도전과제가 된 것은 술빚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통밀로 만드는 누룩이 아니라 곱게 빻은 쌀가루를 뭉쳐 만드는 이화곡은 자체에 효소와 효모 성분이 없기 때문에 누룩을 빚을 때 사용하는 초재와 주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한두 번이야 잘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화곡을 오랫동안 빚어서 안정된 생태계와 환경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빚을 때마다 복불복이다. 이건 이화곡만 그런 건 아니지만, 특히나 이화곡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누룩이다.

이화곡을 제대로 띄운 다음이라고 일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다. 물을 거의 추가하지 않고 이화주를 빚는 것은 혼화 과정에서부터 중노동이고, 술을 빚어 두고도 유동성이 적어서 한 독 안에서도 부분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과정을 통제하기 위해선 상당한 설비투자를 하거나, 혹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살펴보고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 예술의 경우엔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술이 잘 되면 그것으로 다가 아니라, 이제 술이 팔려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이화주라는 술은 일단 술이 아니라 요거트 같은 꼴이라 주당들이 은근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술 같지가 않은 것이다.

단맛이 강한 고형분은 일단 처음에는 맛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몇 스푼 뜨다 보면 역시 술이라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물을 타서 마시는 방법 등이 예로부터 발달해 있지만 역시 그런 단계를 손님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 자체가 진입장벽이다. 지금은 다년간의 시행착오와 기술 발전을 통해 제법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화곡을 사용해서 요거트 같은 상태가 아니라 마시는 이화주를 만들어내는 곳들도 있지만, 역시 이화주는 쉽지가 않은 술이다. 누룩부터 제조, 판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예술의 ‘배꽃 필 무렵’은 판매 단계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해결했는데, 바로 한 입거리 소포장이다. 한두 스푼 이상은 뭔가 술 마시는 느낌이 아니니까, 한두 티스푼 분량으로 포장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치에도 딱 한 유니트를 싹싹 긁어서 테이스팅을 했다.

“아, 이런 기분이군요. 침엽수의 향이 들어가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

치에의 눈은 순수한 감동으로 빛나고 볼은 기쁨으로 홍조를 뗬다. 

“조금 더 맛보고 싶지만 이건 잠시 아껴둬야겠어요. 아직 시음주가 남았으니까.”

긍정적이다. 아껴두었다가 또 마시고, 혹은 먹고 싶은 그 마음. 분명 관심을 끌었다. 잣잎을 넣은 것은 예술 이화주의 특징인데, 말도 안 해줬지만 치에는 그런 것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한주는 놀랍다기보단 기가 질릴 지경이 되었다.

다음으로 시음하는 술은 53도 쌀소주 ‘무작’. 이번의 노우징은 특별히 길다. 치에가 이리저리 잔을 굴려보고 입에 한 모금 머금더니 무작을 넉넉히 따르고 거기에 손끝으로 물을 적셔서 몇 방울을 뿌린다. 그리곤 다시 노우징을 하고, 입에 머금어 본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단단한 술을 열어주는 테이스팅 기법이다.

“묵직한 술이네요. 쉽게 열어 주질 않는 속이 있달까요.”

“무작은 삼양주 동몽을 기주로 해서 만든 거지요. 동몽만 해도 상당히 무게와 깊이가 있는데 그걸 증류한 거니까, 아마 그 속이 꽉 차있을 거에요.”

“음, 잠재력이 아주 큰 술인데 뭐라고 하긴 힘드네요 지금으로선. 하룻밤쯤 기다려보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올 것 같고요.”

“아, 우리 여기 펜션도 있으니 하룻밤 묵어 가요.”

정대표가 반색을 하며 제안을 하는데 한주가 뚝 끊고 들어온다.

“아뇨, 오늘은 저희집에서 같이 저녁하고 거기서 묵을 겁니다.”

누가 자기 여자친구를 가로채려 하기라도 했다는 분위기이다. 말은 안 해도 도는 묘한 분위기, ‘아, 그런 사이인데 모르고 실례를 했나?’ 하는 그런 표정들. 한주도 그걸 느끼는 순간 갑자기 거북해졌다. 그런 뜻이 아니라 이미 집에서 식사며 여러 가지 준비를 해두고 있을 한영에게 미안해서 말을 한 것인데, 이것 참 입장이 묘해졌다. 그렇다고 변명을 하기도 뭐하고, 얼굴이 술 마신 것처럼 서서히 붉어져 간다. 그 붉은 얼굴을 보고는 분위기는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고.

역시 이럴 땐 치에의 수습이 산뜻하다. 

“오늘은 한주 씨가 여러가지로 이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요. 다음번에 시간을 넉넉히 잡고 오도록 할께요. 묵어가고 싶은 곳이네요.”

그렇다. 예술 양조장은 여느 유럽의 와이너리 못지 않게 넓은 부지에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고 정원도 잘 가꿔져서 아닌 게 아니라 편하게 한 잔 하고 묵어가고 싶은 곳이다. 한주는 이 양조장이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주 양조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술은 현재는 춘천 김유정역 부근으로 이전했습니다. 홍천의 기존 양조장은 체험 및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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