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치에는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인지, 계속 한영의 손을 만지작 거리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음. 오늘 마셔본 한주들은 품질만 가지고 말하자면 어디 가서도 충분히 통할 술들이야. 솔직히 말할게요. 일본 사케들이 긴장해야 할 정도예요. 그런데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술이 유통되려면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한주가 뭔가 불편한 기색은 어디로 갔는지, 의자를 당겨 앉는다. 한영도 어색한 기색은 그대로지만 궁금증이 일어나서 묻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어려운가요?”

치에가 술을 한 모금 들어 입술을 적시며 말한다.

“일단 생주라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운송비가 무섭게 많이 들거든요. 한국은 나라도 크지 않아서 24시간 내에 택배가 되는 데다가 택배비도 싸요. 일본의 3분의 1도 안 되는 택배비로 전국 유통이 가능하지요. 하지만 냉장유통으로 한다면, 한다면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요. 그렇다면 한국에선 큰 부담 없이 마시는 술이라도 가까운 일본만 가도 지금의 두 배 이상이 될 거에요. 일본 내에서의 유통마진은 따지지 않고 운송비와 통관비 같은 것들만 가지고 하는 얘기예요. 음, 그래도 일본 나마슈와 비교하면 가격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유통기한은 정말 대책이 없네요. 일본이라면 업체 자율로 정했겠지만, 한국은 법적으로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지요?”

“네, 생주의 경우 최대 6개월까지로 제한하고 있지요. 역시 유통기한이 문제군요. 그것 외엔 또 어떤 점이 있지요?”

한영도 의자를 당겨앉으며 여러가지를 묻는다.

“음, 디자인이라든가 상품의 스토리 같은 것들도, 고객을 의식하고 있진 않은 것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일본 사케의 경우는 디자인이든 스토리든 전통이 있는 곳들이 많아서 비교적 쉽긴 해요. 사실 이 전통이 꼭 좋은 것이 아닌게 젊은 사람들과 취향이 달라서 '할아버지 술' 같은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요. 한주는 역사가 오래된 것도 아니어서 어쩌면 그런 점은 더 좋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오늘 본 술들에선 젊은 감각이 딱히 느껴지진 않더군요."

전통주라지만 개별 양조장으로선 전통이 깊은 곳은 거의 없는 한주의 딜레마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또 이 병, 유리병이지만 아마 흔들리면 조금씩 세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주니까 탄산의 배출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면...,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장거리 유통에선 문제가 되긴 하겠지요? 유리병이 아닌 페트병을 사용하는 곳들도 많은데 소비자의 신뢰 문제도 있어요. 탄산음료라면 모를까 고급술을 페트병에 넣어 유통하는 예는 전세계적으로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품질의 편차를 세심하게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있는 곳은 없는 듯 보였어요. 말하자면 끝도 없는데....,"

치에가 길고 빠른 한국어 문장을 연달아 말하곤 숨이 달리는 듯 어깨를 한 번 들썩 하곤 말했다.

"진짜 큰 문제가 뭔지 알아요?”

“지금 말한 것들보다 더 큰 문제가 뭘까요?”

치에가 한영의 손을 만지작 거리던 손을 놓고 팔짱을 끼고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잠시 치에에게 시선이, 에너지가 확 집중되었다. 바로 그런 힘을 받아모아서 튕겨낸다는 듯이, 치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형의 확정을 엄숙히 선고하는 판사와도 같이.

“바로 교육받은 서비스 프로페셔널이 없다는 거에요. 전반적으로 술의 문화적 가치를 만드는 부분이 거의 발달하지 않았어요. 이건 일본 사케도 와인이나 위스키에 비하면 많이 약한 부분이지만 한국은 그 이상이네요.”

치에는 명쾌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와인이라면 소믈리에가 있고 사케라면 기키자케시(利き酒師)라는 전문가 제도가 있지요. 위스키도 프로페셔널 교육과정이 있고 맥주도 시서론이라든가 하는 제도를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다들 한주보다 잘 알려지고 저변도 넓은 상품인데도 그래요. 왜일 것 같아요?”

치에가 질문인지 힐난인지 모를 말투로, 이번엔 앙칼진 고양이 같은 표정이 되어 쏘아붙이듯 말했다. 한주와 한영은 곤란한 듯이 눈을 맞춘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치에의 공격적인 분위기 전환이 당황스러워서다.

“음, 역시 고급상품이란 건 냉장고나 매대에 늘어놓는 것 만으로는 안 되는 거겠죠?”

한영이 주섬주섬 하는 느낌으로 답을 내본다.

“맞아요. 매일매일 마시는 와인이라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현지 소매점에서 몇 유로에서 비싸도 2~30유로 정도겠지요. 이 정도의 지출이라면 적당한 품질의 와인을 어느 것이나 골라도 상관이 없을 거에요. 프랑스나 이태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인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고, 혹시 모르는 와인을 골랐다가 실망을 하더라도 크게 타격을 받을 지출은 아니에요. 하지만 한 병에 오십이나 백 유로, 혹은 그 이상의 와인이라면, 이건 일상적으로 마시는 와인이 아니에요. 보통 사람에게는 큰 지출인 거죠. 그만큼 자기가 지출하는 것에 대해서 확실한 가치를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람일 거에요.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오히려 소믈리에가 더 많고 존중받는 직업인 이유는 그런 지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에요.”

치에가 여기까지 길게 열변을 토하고 술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맛있게 한 모금을 들이키고 입술을 핥는 모습이 꼭 아기고양이 같이 얄밉게 귀엽다.

“소믈리에나 기키자케시로 충분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술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판매하는 장소의 음식과의 페어링도 기본소양이지요. 그에 더해서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소개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대화가 될 정도의 화술도 갖추고 있어야 해요. 말하자면 손님을 접대하는 그 과정이 퍼포먼스의 경지에 오른 전문가들인 거죠. 그래서 마스터 소믈리에쯤 되면 몸값이 그렇게 높은 거에요. 구인공고 올려 두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인력이 아니거든요.”

“그런 거라면 한주형 정도 돼야 할까요? 평소엔 저래도 앞치마 두르고 손님 받을 때는 사람이 제법 사근사근 하거든요. 아는 것 많은 거야 뭐 어디 그냥 놔둬도 티가 날 정도고요.”

한영이 치에가 이야기에 열중한 틈을 타서 슬그머니 손을 빼며 말했다. 싫다기 보단 어색한 것일 게다.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한주 씨 같은 정도면 전문지식이라는 면에서는 어디가도 손색이 없겠지요. 그렇긴 한데….”

치에가 말을 흐리는 것은 눈치도 없고 붙임성도 없는 한주가 손님접대를 하는 것이 좀처럼 상상이 안 가서이다.

“아, 생각보다 잘 해요. 사람이 달라진다니까요.”

“그야 뭐, 반복하다 보면 다 늘게 되어있어. 바보는 아니니까. 뭐랄까, 제2의 자아, 페르소나 같은 것이 생겨나지. 처음에야 뭐 손님 멱살 잡고 싸우기도 했지만…”

이런 얘길 하면서 멋쩍은 듯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뭐가 즐거운지 되려 배시시 웃는 한주다. 

“그래서, 역시 한주는 어렵다인가? 월드 니혼슈에서는 한국으로 생주 수출도 하고 있잖아?”

“그건 말이지, 한국에만도 기키자케시가 수백 명이고, 그런 정식 자격증이 없더라도 수입사의 경영진이나 핵심사원 정도 되면 최소 자기가 다루는 사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사케에 대해서 전문가에 준하는 소양이 있는 고객층도 두텁고. 하지만 한주의 경우에는 전문점에 가도 전문성이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 고객들도 한주를 잘 아는 사람보단 와인이나 사케를 잘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고.”

한주는 치에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느꼈다. 자기 자신, 세발자전거를 운영하면서 나름 직원들 교육도 시키고 했지만, 스스로 교육을 시키기에 부족한 것도 있었고 직원들의 동기부여가 충분치 않았던 것도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만 교육을 시킬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업계에서는 교육 잘 시킨다는 소릴 들었지만 사실 정식 교육과정도 아니었고 그 정도로는 마니아 손님들을 만나면 밑천이 드러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전문가 수준에서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런 교훈도 있어서 한주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있다.

“맞아. 그래서 내가 요즘 책을 쓰고 있지. 한주 서비스 프로페셔널들을 위한 교재. 내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말야.”

“그래, 한주 씨. 지금 댁이 해야 할 가장 급한 일이 그거라고 나는 생각해. 당신 같은 전문가들이 없으면 한주는 해외는커녕 한국에서도 자리 잡기에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야. 한주 씨 같은 사람을 키우는 게 지금 가장 급선무라고.”

“응. 안 그래도 올해 내로는 책을 끝내보려고 하고 있지.”

“책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강좌를 하나 만들어. 소믈리에가 책 보고 되는 게 아니잖아. 붙들고 도제식으로 가르쳐야지.”

그건 한주도 생각하는 바긴 했다. 책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같이 부딪치며 배울 수 이는 시간과 공간. 다만 낯설은 사람들과 계속 부딪혀야 한다는 게 마음속에 큰 부담이라 필요는 느껴도 하고 싶지는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

“잘생긴 인물값을 좀 하라고 한주 씨. 하다못해 인터넷 강좌라도 찍어보던가.”

치에가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이 검지를 세워 자리를 당겨 앉은 한주의 이마에 갔다 댔다. 한주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신체접촉, 뭐 신체접촉이라기엔 검지손가락 끝부분 정도의 작은 부분이지만, 그래도 역시 깜짝 놀랐다. 

“무조건 해야 해. 책만 나오면 일단 나부터 잡고 가르쳐. 나는 그럴 실력이 안 되지만 누구라도 붙잡아와서 일본어 번역도 하고. 나 하나만 똘똘하게 잘 가르쳐 두면 내가 잘 배워서 일본 현지에서 사람도 가르치고 할께. 한주를 상업적인 규모로 팔려면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시의 각 구마다 한주 씨 같은 사람이 열두 명씩은 필요한 거라고.”

치에가 잔을 들어 한주의 눈높이에다가 들어올렸다. 잔과 잔 사이에 두 쌍의 눈이 마주치고 정적이 흘렀다. 마치 드잡이질 하는 사람들이 눈싸움이라도 하듯. 이때 한영이 잔을 들어 정적을 깬다.

“치에 누나 말이 맞네. 티비 광고할 것도 아니면 전문가가 직접 팔아야지, 안 그래요? 한주형 같은 사람이 구는 커녕 나라마다 열둘만 있어도 한주가 세계화 되는 것도 시간 문제겠네 정말!”

한영의 목소리가 들떠 날린다. 희망을 보았다는 열기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기분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한주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런 건 생각하고 있어. 내일은 아침부터 또 일찍 나가야 하니까 술은 적당히 해. 원하면 싸주도록 할 테니까 일본에 가져가서 마시던 하고.”


용어설명 : 기키자케시(利き酒師), 씨서론(Cicerone)


기키자케시(利き酒師) - 사케 소믈리에라고도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주로 업장에서 활동하는 소믈리에의 역할인 술의 선별과 판매, 음식과의 궁합, 개별 술에 대한 소개 등을 하는 능력을 배양한다. ‘일본술 서비스 연구회’에서 교육과 인증을 담당한다.

씨서론(Cicerone) - 맥주 소믈리에라고도 한다. 와인 소믈리에와 비슷하게 맥주를 시음하고 음식과의 페어링을 연구하며 맥주마다 상품의 특징과 역사 등을 배우고 서브하는 방법을 익힌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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