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나슈'라는 품종을 아시나요?

그르나슈 와인 협회(Wines of Grenacha)와 유럽연합의 초청으로 2019년 10월13일부터 29일까지 그르나슈(Grenache/Garnacha) 와인산지인 스페인과 남 프랑스 산지와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습니다.

8명의 아시아지역 와인관련 언론인들이 동행한 이번 방문에서 블렌딩의 보조적인 품종으로만 알았던 그르나슈(Grenache)의 인식을 완전히 바뀌놓은 기간이었습니다.

▲ Grenache협회에서 선정한 와이너리 스케쥴

프랑스에서는 그르나슈, 스페인에서는 가르나차라고 불립니다. 세계에가 가장 넓은 분포도를 보이는 품종으로 스페인 아라곤(Aragon)에서 출발하여 리오하(Rioja)와 나바라(Navarra) 근교로 그리고 프랑스 루시용(Roussilon)을 거쳐 이탈리아 해안지방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와인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그르나슈가 프랑스 남부에서 많이 생산되고, GSM이라는 종류의 와인의 G가 바로 이 그르나슈를 나타낸다는 것까지 아는 분들도 있지요.

중간정도의 루비색, 연한 산딸기향, 레드체리, 미네랄 풍미, 나중에는 푸릇푸릇한 향신료향과 달콤한 레드커렌트향도 보여주는 품종입니다. 얼핏 피노누아를 연상시키는 그르나슈를 더운지방에서 구현된 피노누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그르나슈가 이탈리아로 가면 사르데나 섬에서는 칸노나우(Cannonau) 또는 알리간테(Alicante) 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1,400년대 사르데나영토가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을때 유입된것으로 보입니다.

그르나슈 품종의 고향이 프랑스인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스페인이 고향이랍니다. '그르나슈' 품종 단일로만 생산하는 와인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블랜딩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만 있지요.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가르나차 100%의 와인을 많이 만듭니다. 프랑스에서는 조연으로, 스페인에서는 당당하게 주연으로 자리잡고 있는 품종이지요.

유럽에서는 피레네산맥 아래는 유럽이 아니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지형과 토양이 확 달라지는것을 눈으로 확인할수 있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는 장엄한 피레네산맥을 넘으면, 루시용(Roussillon)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루시용은 달콤한 주정 강화 와인 뱅 두 나투렐(Vins Doux Naturels)로 잘 알려졌으나 이제는 드라이한 와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뱅 두 나투렐(Vins Doux Naturels)은 알코올 발효 중인 와인에 포도로 만든 알코올을 넣어 발효를 중단 시켜 만드는 와인입니다.

루시용은 동쪽으로는 지중해, 북쪽으로는 코르비에르 산맥, 서쪽으로는 피레네 몽 카니구(Mont Canigou), 남쪽으로는 알베르(Albères)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루시용에는 아글리(Agly), 테(Têt) 그리고 테크(Tech)라는 3개의 강이 교차합니다.

20,656헥타르 포도밭 면적, 2,535포도 재배 농가가 있으며, 29개 와인 생산자 협동조합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75%를, 421개 가족 소유 와인 생산자가 나머지 와인을 생산합니다.

루시용에서는 2018년 기준, 전체 생산량의 60%가 드라이한 와인, 40%가 달콤한 와인으로 생산됩니다.

루시용은 15~20종 토양을 지니며, 이중 대표 토양으로는 둥근 자갈 토양인 갈레 룰레(Galets roulés), 검은 점판암, 회색 혹은 적색 편암, 산화철이 풍부한 붉은 점토, 언덕에 많은 석회질 점토, 풍화된 화강암이 있습니다. 아글리 강 석회와 검은 편암이 그르나슈의 부드러운 질감과 산도, 미네랄을 잉태하게 해 줍니다.

▲ 아시아 지역 와인기자,칼럼리스트
▲ 진행자 루시옹 와인 협회 수출 책임자 겸 부국장인 에릭 아라실(Eric Aracil)

이번 방문중 가장 인상적이였던 와이너리입니다. 프랑스 루시옹 지방의 도메인 부도(Domaine BOUDAU).

일행들이 한창 설명에 집중하고 있을때 저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벽면 한쪽에 세워진 와인들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너인 베로니카의 할아버지, 아버지, 돌아간 남편, 그리고 베로니카가 만든 와인들이였습니다.

베로니카에게 청해서 하나씩, 아주 조금씩을 시음할수 있었습니다. 제가 마셨던 그 어떤 와인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특별하고 신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난하기 짝은없는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 이었습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氣(기)를 이야기 합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 집중력을 가지고 그것들을 기를 호흡하면 그것들의 존재체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고 합니다.

테루아의 존재를 먼저 확인한 프랑스의 양조자들은 땅과 햇빛과 물, 바람의 존재들을 포도송이에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somewhereness, 또는 Typicity로 표현되는 지리적인 특성은 와인의 영혼을 느끼기 위한 통로입니다. 그곳의 양조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와인병의 구석진 곳에 아주 작게 남깁니다.

그들이 자연과 테루아의 존재뒤에 겸손하게 숨어있는 의미를 알아채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보다는 외형과 형식에 가치를 둡니다. 포화상태의 짙은 칼러, 걸쭉한 농도, 강한 타닌의 골격, 프랑스 오크통에 기대고 쉽게 반응하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RP 100점은 루비통 명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졌습니다.
책을 읽기보다는 TV를 보는것이 휠씬 편합니다. 책이주는 무한대의 감동과 영속성은 유년시대의 유물로 밀려나 있습니다. 우리가 테루아를 느끼고 와인의 영혼을 느끼는 일은 TV보다는 책을 읽는 일 입니다.

제가 그날 마신 와인의 성분 어디에도 영혼이라는 성분은 없습니다.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영혼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영역이었습니다.

와인의 영혼은 그 와인의 생산자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할것 입니다.

베로니카의 와인들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 베로니카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와인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대가 연결되는 것이 영원입니다.

와인이 가진 영혼을 느끼려는 시도가
당신의 영혼을
고결하게 할 것 입니다.
그것이 실패하든,
또는 성공하든.

▲ 베로니카
▲ 다양한 토양들의 표본인 와이너리 담장

남 프랑스와 스페인 루시옹 지방의 Grenache 산지들과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내내 저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스페인과 남 프랑스.
문화와 역사가 혼재된 이곳에서 경계 (境界)라는 단어를 떠올려 냈습니다.
바로 저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그 경계가 무너지는곳에는 근면한 농부들이 있었고,
Grenache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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