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jenko “Mike” Grgich (April 1, 1923 – December 13, 2023) (사진=Grgich Hills Estate)
Miljenko “Mike” Grgich (April 1, 1923 – December 13, 2023) (사진=Grgich Hills Estate)

지난 12월 13일, 크로아티아 시골 마을 소년에서 나파밸리 와인의 세계적 명성을 일군 거장이 된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가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와인전문매체 디캔터지에 따르면 그르기치는 1923년 4월 1일, 크로아티아 데스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와인을 만들었고, 가장 일찍이 기억하는 추억 중 하나는 수확 시기에 포도를 밟아 으깨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르기치가 교육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데스네에서의 학교생활이 끝난 10살 때, 그의 남매가 함께 사는 곳으로 이사 가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르기치는 가게의 주인이 되고 싶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은 후,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와인메이커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 후 공산주의가 동유럽에 도입되었고,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으며, 마이크는 자그레브 대학에서 와인학과 포도재배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독일과의 농업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유고슬라비아를 떠났고,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를 거쳐 1958년에 나파 밸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세인트헬레나에 도착한 그르기치는 샤토 수버렌(Chateau Souverain)에서 일하게 되었고, 다른 이민자이자 와인메이커인 앙드레 첼리스체프(André Tchelistcheff)를 만나 러퍼더드 지역의 보리우 빈야드(Beaulieu Vineyards)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그르기치는 금주법 이후 처음으로 나파 밸리에서 와인 시설을 건설한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라는 사람에게 고용되었고, 그의 첫 번째 빈티지인 1969년에 몬다비에서 전설적인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만들었다.

로버트 몬다비에서 일한 이후. 그는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바로 ‘파리의 심판’이다.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한 화이트 와인인 샤토 몬텔레나의 샤도네이 와인은 그르기치가 몬텔레나에서 만든 두 번째 빈티지였다. 해당 순간은 미국 와인을 전설적인 높이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나파밸리 와인 업계뿐만 아니라 미국 와인 업계 전체에서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1977년에 창립한 그의 와인 브랜드 ‘그르기치 힐스(Grgich Hills)’를 탄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아메리칸드림을 완벽하게 실현시켰다. 그리고 1989년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크로아티아로 돌아와 드디어 그의 대학 학위를 받았으며, 크로아티아의 와이너리인 ‘그르기치 비나(Grgić Vina)’를 설립하며 토착 품종에 집중하였다.

그르기치는 세기 동안 쌓아온 풍부한 경험, 인간관계 그리고 꾸준한 교육과 학습에 대한 헌신을 통해 거대한 유산을 남겼으며, 나파 밸리와 크로아티아 와인 산업의 부흥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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