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롤로 마을 동편에는 마을 형태가 달팽이 껍질과 흡사한 세라룬가 달바 마을이 있다. 가옥과 길이 한 데로 안으로 말려들어간 형상이 달팽이 집에 파인 나선 홈을 떠올리게 한다. 나선이 끝나는 소실점에 자리한 고성은 하늘로 치솟는 성체가 마치 막 빚어낸 바롤로 타닌의 기세와 같다. 고성이 있던 자리는 요새였으나 14세기경 바롤로의 영주인 팔레티 후작이 세라룬가 달바의 지배를 확고히 할 목적으로 성으로 개조했다. 성 꼭대기에 오르면 후작이 이곳을 탐낸 이유가 납득이 갈 만큼 일대의 산세, 산줄기가 품고 있는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달팽이 집 나선이 넓게 벌어지는 끝자락에 마리아 카펠라노 광장이 있다. 이 광장에는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지는 바롤로 생산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옹기종기란 표현에 빗댄 것은 건물 크기 기준을 명성의 대소에 두지 않고 이웃집 규모에 맞추려 한 것 같아 그랬다. 광장에 면한 건물 중에는 한때 바롤로 끼나토란 가향와인 양조장으로 사용하던 수도원이 있다. 바롤로 끼나토는 약효과가 탁월한 식물과 뿌리를 담가 우려낸 액기스를 바롤로에 섞어 만들었는데 전시 중에는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 수도원을 1974년에 피에로 팔라디노가 사들였다. 피에로는 바롤로 끼나토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원액으로 사용한 바롤로에 끌렸다. 곧 포도재배와 양조 경험이 풍부한 사촌 마우릴리오가 합류하면서 가족 오너 체제로 기틀이 잡혔다. 1970년대는 다작 농업이 대세이던 시절이라 포도농사는 돌체토나 바르베라같은 다산 품종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러나 피에로와 마우릴리오는 쏟아부은 노력에 비해 생산성과 수익성이 낮더라도 장기적으로 네비올로가 우세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오르나토, 파라파다, 산베르나르도 밭들을 차례로 사들였다. 이들의 밭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지 여기서 거둬들인 네비올로는 숙성력과 복합미가 출중했다. 이 밭들은 2010년에 바롤로 MGA (크뤼)규정이 실효되자 모두 MGA에 지정되었다.

베로니카 산테로. 팔라디노 가족의 일원으로 그녀는 사무, 환대 및 시음, 마케팅 업무를 도맡아하고 있다. 그녀의 설명은 바롤로 전체를 아우르며 세세하다. 바롤로 전체가 파악되야 팔라디노 바롤로 접근이 쉽다고 주장한다
베로니카 산테로. 팔라디노 가족의 일원으로 그녀는 사무, 환대 및 시음, 마케팅 업무를 도맡아하고 있다. 그녀의 설명은 바롤로 전체를 아우르며 세세하다. 바롤로 전체가 파악되야 팔라디노 바롤로 접근이 쉽다고 주장한다

2천 년 초반 밀레니얼 2세대가 합류하였고 레드 와인에 집중하던 라인도 가비, 로에로 아르네이스, 모스카토 다스티로 다변화했다. 현재는 11헥타르에 연 18만 병 규모의 중견 와이너리로 성장했으나 초심은 그대로다. 모든 와인은 철두철미하게 전통방식대로 만들며, 밀식재배, 면적 당 수확량, 오크통 선정 같은 품질과 직결되는 결정은 가족회의로 결정한다.

남다른 바롤로의 비밀은 숙성용기

건물은 3층으로 외관은 아담하다. 그러나 통로만 남겨놓고 지하실에 빼곡히 들어찬 양조설비와 숙성용기는 와인생산 초반부터 엄격한 선별과정을 예고 한다. 먼저 발효 탱크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는 완숙시기가 제각각인 포도가 입고되는 대로 지체 없이 알코올 발효를 하기 위함이다. 밭 별로 발효탱크를 배정해 놔야 고도에 따라 세분한 밭이 섞이는 걸 방지할 수 있다. 탱크에 착즙 한 액이 부어진지 이틀이 지나면 효모가 활동을 개시한다. 이때 과피에 농축된 성분 침출을 촉진하기 위해 손으로 스틱을 휘저어가며 표면에 부유하는 껍질과 즙을 휘저어준다. 발효가 끝날 때까지 이 작업을 하루에 2~3번씩 반복한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콘크리트 탱크 안에 채워진다. 이 안에서 젖산 발효가 일어나고 발효가 끝났더라도 6개월 더 놔둔다. 와인 침전물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콘크리트 재질은 중력의 법칙을 적용해 침전물을 자연적으로 제거하는데 효과적이다. 청징제나 여과장치로 거르면 손쉽고 빠르게 침전물을 제거할 수 있으나 아로마 성분도 여과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부유물이 떠다니는 와인을 오크통에 넣으면 불쾌한 향기의 원인이 되고 오크통 자체의 수명도 줄어든다.

또한 콘크리트 탱크는 와인에 신선함과 짙고 풍부한 과일향을 머금게 한다. 표면에 산재한 기공을 통해 활발한 산소가 유입되고 이는 거친 타닌 결을 다듬고 둥글게 한다. 벽이 두꺼워 안에 보관된 와인은 항상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면서 진화한다.

오크 셀러는 마치 오크통 전시회장 같다. 슬라보니아산, 프랑스산 참나무가 등장하고 가공 및 조립한 공방도 이탈리아의 가르벨로토, 감바, 스위스의 스피겔 등 국경을 넘나 든다. 크기는 대형 사이즈로 일관하지만 원산지에 변화를 주어 바롤로에 오묘한 개성을 입힌다. 리제르바 숙성에 사용되는 보테는 오크 제작의 궁극이다. 둥그런 테두리의 측면 판자는 프랑스산, 앞과 뒷 면에 장착한 오크는 슬라보니아산이다. 프랑스산 오크의 부드러움과 우아함 슬라보니아 오크의 구조와 치밀함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게 한 오크 예술이다.

오크통의 나이도 다름에 기여한다. 45년 된 보테는 중성이라 무향에다가 나무 자체의 타닌도 소진되어 여기에 와인을 담더라도 타닌이 순하고 포도 천연향이 유지된다. 새 보테는 처음부터 바롤로를 담지 않는다. 첫 두 해는 바르베라 달바나 네비올로 달바로 채워 잔여 오크향을 흡수하거나 새 오크를 길들이는 데 사용한다.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오레 DOC브리코 델레 올리베 2021- 브리코 델레 올리베는 바르베라 밭이다. 밭두렁을 사이에 두고 바롤로 밭과 맞닿아 있어 네비올로의 특징도 지니며 수령이 45년이라 절정기에 이른 원숙미도 갖는다. 보테 숙성을 15개월 하여 바르베라 매력을 한 껏 끌어올렸다. 석류, 크랜베리, 바이올렛의 산뜻함과 사워 체리, 흑자두의 농밀함이 스며 나온다. 생기발랄한 산미, 오크 숙성에서 단련된 타닌의 중후함도 겸비한 고품격 바르베라다.

네비올로 달바 DOC 2022 – 네비올로 달바 와인 생산 허용 범위를 표시한 지도를 펼치면 무색의 바롤로를 적색의 로에로와 랑게지역이 둘러싸고 있다. 무색은 생산불가, 적색은 생산허용을 뜻한다. 마치 주변마을들이 연합해서 작정하고 정중앙의 바롤로를 소외시킨 것 같다. 팔라디노의 네비올로 달바 밭은 세라룬가 달바 최남단 경계와 맞닿은 시니오 마을에 있다. 토양과 기후가 바롤로와 일치하는데도 불구하고 바롤로 내에 편입되지 못한 데는 시니오 주민들이 이를 원치 않은데 있다. 등급상승에 따르는 각종 규제와 기존의 옥밭을 네비올로에 내줘야 하는 등 이들 정서와 맞지 않아서다.

등급은 한 단계 아래지만 데일리 바롤로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수준급이다. 슬라보니아산 보테, 프랑스산 보테를 교묘히 연결해 네비올로의 정수를 뽑아냈다. 바롤로보다 여운이 좀 짧다는 게 옥의 티라 할까. 블러드 오렌지, 바이올렛, 장미, 유칼립투스와 방금 딴 과일이 풍기는 풋풋한 아로마가 사랑스럽다. 신선한 산미만이 줄 수 있는 아삭함, 미끄러지 듯 넘어간 질감에 이어 공들여 다듬은 타닌 결이 혀를 보듬는다.

세라룬가 달바 바롤로를 구별 짓는 레퀴오 토양 Lequio Formation

바롤로 MGA 지도와 세라룬가 달바 MGA 세부 지도. 팔라디노의 바롤로 밭은 다섯 군데 MGA에 흩어져 있다(별표 참조). 밭 고유성이 두드러지면 MGA, 모두 섞어 조화로운 경지에 이르면 코무네 바롤로로 출시한다
바롤로 MGA 지도와 세라룬가 달바 MGA 세부 지도. 팔라디노의 바롤로 밭은 다섯 군데 MGA에 흩어져 있다(별표 참조). 밭 고유성이 두드러지면 MGA, 모두 섞어 조화로운 경지에 이르면 코무네 바롤로로 출시한다

세라룬가 달바 바롤로를 입에 머금으면 수분이 일시에 사라지는 듯하다가 곧 타닌의 충만감이 썰물처럼 밀려온다. 강한 산도와 복합적인 맛은 중후함과 장기숙성 자질을 부여하는데 토질 형성시기와 성분이 자질의 핵심축을 이룬다.

세라룬가 달바 마을과 여기서 남북으로 뻗어 나간 산등성이에 자리한 촌락을 합쳐 세라룬가 달바 코무네라 한다. 그러니 세라룬가 달바 바롤로는 코무네 내부에서만 만들어진다는 조건이 붙는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코무네는 38군데 밭( MGA)으로 나뉘고 이들은 토질에 따라 산타가타 토양과 레퀴오 토양으로 이분된다. 전자는 바롤로 최북단에 자리 잡은 폰타나프레다 MGA부터 체레타 MGA까지고 후자는 그 남쪽이다. 토양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는 없지만 세라룬가 달바 마을로부터 북방향으로 1km 지점이다. 앞서 말한 미각특징들은 레퀴오 토양에서 두드러진다.

레퀴오 토양은 태곳적 바롤로가 심해에 잠겨있다가 약 1천 2백만 년 전에 해면 위로 솟아오른 육지에서 발견된다. 융기한 시기가 가장 오래돼 산세가 완만하며 석회석과 점토성 혼합토가 주된 성분을 이룬다.

팔라디노의 바롤로 밭은 레퀴오 토양층에 점점이 흩어져있다. 파라파다, 오르나토, 산 베르나르도, 가부티, 세라밭으로 모두 MGA에 지정된 밭이다. 파라파다, 오르나토, 산 베르나르도 처럼 고유성이 분명한 밭은 MGA로 출시한다. 여러 밭의 묘미가 화합하면 바롤로 델 코무네 디 세라룬가 달바( Barolo Docg del Comune di Serralunga d’Alba. 이하 코무네 바롤로)로 내놓는다.

코무네 바롤로는 여러 밭을 블랜딩 했다는 점에서 클래식 바롤로에 속하지만 밭의 범위가 코무네로 한정된다. 바롤로 내에 11군데 코무네가 위치하므로 원칙적으로 11종류의 코무네 바롤로가 있다고 보면 된다.

바롤로 Docg 델 코무네 디 셀라룬가 달바 2020- Barolo Docg Del Comune di Serralung d’Alba 2020

팔라디노 밭은 토질별로 구분한 다음 이를 해발 고도로 재 분리해 차별화된 바롤로를 만든다. 우선 파라파다와 오르나토 밭의 하부, 가부티와 세라 밭, 여기에 2년 숙성한 산 베르나르도 바롤로가 블랜딩 된다. 산 베르나르도는 원래 리제르바로 선보일 예정이나 오크숙성 2년 후에 갖는 사내 시음결과 품질에는 문제없으나 최소 숙성 잠재력이 30년 미만으로 분류된 바롤로다.

45년 사용한 보테에서 2년 숙성했다. 바이올렛, 라즈베리, 체리, 장미가 은은하게 퍼진다. 와인모든 향의 선이 또렷하며 직관적이다. 미디엄 바디에 타닌은 부드럽게 혀를 감싸며 중심이 하나로 모이는 집중감이 있다. 산미의 쾌감과 순한 맛은 가볍고 흥겨운 술자리에 어울린다.

바롤로 Docg 파라파다 2020- Barolo Docg Parafada 2020

파라파다 상층부 정남향 밭에 내리쬐는 햇빛을 담았다. 점토, 석회석에 섞인 소량의 모래가 산뜻함을 준다. 장미 꽃다발, 말린 라벤더, 체리, 블러드 오렌지, 자두, 스파이스 등 젊은 바롤로의 싱그러움이 폭발한다. 코무네 바롤로보다 좀 더 입안이 묵직하며 미네랄과 산미가 어우러져 맛깔스럽다. 빈틈없이 채워진 타닌의 질감이 돋보이며 후각을 매혹시킨 향들이 미각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바롤로 Docg 오르나토 2020-Barolo Docg Ornato 2020

파라파다와 오르나토 밭 간격은 2km로 근접하나 감지되는 향기종류와 맛의 깊이는 전혀 다르다. 다름의 원인은 파라파다에 향기로움과 산뜻함에 기여한 모래가 오르나토 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르나토 MGA는 면적이 6.70헥타르인데 오직 피오 체사레와 팔라디노가 점유하고 있다. 첫 느낌은 풀보디에 치밀한 조직이 미각을 압박한다. 혈액, 철, 버섯, 바닐라, 후추, 타르 향이 묵직하며 오랫동안 후각을 떠날 줄 모른다. 레퀴오 토양의 석회석과 점토의 흔적은 꼿꼿한 골격과 중심을 향해 차오르는 집중미로 드러난다 .

바롤로 Docg 리제르바 산베르나르도 2016- Barolo Docg Riserva San Bernardo 2016

오르나토와 파라파다밭이 정남의 태양이 충만하다면 남동향의 산 베르나르도 밭은 일조량이 줄어든 데 따른 서늘함이 느껴진다. 팔라디노 가족은 산 베르나르도가 창업주인 피에로의 성격을 빼닮았다는데 입을 모은다. 심각하고 중후하며 바로 그런 점들이 리제르바에 적격이라고. 산 베르나르도는 오직 팔라디노만 내놓는 모노폴 바롤로다. 또한 밭 조건이 뛰어나더라도 작황이 월등하지 못하면 리제르바에 실격된다. 이런 이중 선별을 통과해 출시한 빈티지는 2012년, 2013년, 2015년, 2016년이고 후속 빈티지는 2020년으로 2027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산 베르나르도 바롤로가 숙성한 지 두 해가 될 무렵이면 가족은 보테 주위에 모인다. 배럴 시음하여 출하시기를 정하기 위해서다. 가볍고 이미 마시기 좋게 맛이 조화로우면 숙성을 중단하고 1년 더 병숙성해 코무네 바롤로로 내보낸다. 만일, 묵직하고 힘, 강건한 타닌, 최소 숙성기간이 30년, 와인의 무게에 견딜만한 구조를 지녔다고 판단되면 리제르바 절차를 따른다. 1년 더 숙성을 연장하고 병숙성 기간 3년을 더 해 출시준비를 마친다.

3년의 오크 숙성은 매끄러운 질감을 선사한다. 트러플, 타바코, 철, 유칼립투스, 카르다몸, 후추, 주니퍼베리, 진저, 흑자두의 농익은 향들이 그윽하게 퍼진다. 입안에 유영하는 산미의 경쾌함, 놀라울 정도로 바디는 품격을 보여주며 밀도 있는 타닌이 입안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아몬드 향이 입안을 산뜻하게 정리해 줘 상쾌한 여운을 남긴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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