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자주 접할수록 와인을 특정단어로 수식하려는 욕심이 고개를 든다. 이 욕구가 욕심으로 멈춰야 하는 이유는 포도 성장 환경이 제각각이고 동질의 땅에서 거두었더라도 만든 이의 손맛이 기본 값(테루아)을 희석시킬 가능성이 다분한 데 있다. 무조건 잘 만든다고 해도 와인의 충분조건을 채우지 못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자란 해의 특성도 반영해야 진정성이 있다.

지난 11월 16일 벤베누토 부르넬로의 2부 행사로 열린 ‘몬탈치노는 테루아 콜라주’란 마스터 클래스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이하 부르넬로)가 특정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10개 빈티지를 등장시켜 부르넬로 20년을 묵힌 횟수가 높은 순서로 훑어보았다. 작황, 타닌과 산도, 자연조건을 기반으로 설정한 몬탈치노 4대 지역 중 밭이 어디에 속하느냐 같은 몇 개의 후보 단어가 제시되었다. 마스터 클래스 진행은 감베로 로쏘의 창립멤버이며 와인 평론가, 와인비평지 닥터 와인 대표와 편집장을 맡고 있는 다니엘레 체르닐리 Daniele Cernilli가 맡았다.

그가 제안한 부르넬로 문장에 끼워 넣을 첫 단어들은 타닌과 산미다. 두 출발 어는 부르넬로가 셀러에 놔두고 잊는 와인임을 방증한다. 이들의 함량은 작황과 밭 고도에 따라 편차가 심하며 감각 세포가 느끼는 감응도 또한 겨울밤의 별처럼 많다.

몬탈치노 지도에 포도 출처인 12군데 밭 위치를 표시하면 진행자의 의도 파악이 쉬울 것 같아 첨부했다. 번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부르넬로에 들어맞는 수식어 범위를 좁힐 수 있을거란 바램을 담았다. 좀 더 지도의 세부 내용을 둘러보려면 칼럼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241

원 안의 숫자는 와인 번호와 일치하며 포도 출처를 나타낸다
원 안의 숫자는 와인 번호와 일치하며 포도 출처를 나타낸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1999 – 티에찌 Tiezzi 와이너리. 북서부. 4성 빈티지*

티에찌 와이너리는 콜 도르차, 아르자노, 반피의 전신 포조 알레 무라에서 양조 책임자를 지낸 엔조 티에찌옹이 1980년대 설립했다. 밭은 몬탈치노 산허리를 둘러싼 북서쪽 성곽 외벽과 맞닿아 있는 내리막 길 끝에 있다.

1999년 날씨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상적인 해였다. 초창기 티에찌의 부르넬로는 1990년대 트렌드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바디를 강조하고 묵직한 맛과 짙은 색 등 외향적이며 적극적으로 감각에 호소한다. 산도는 실제로 묵힌 연도보다 어리다 싶을 정도로 신선미가 뛰어나다.

타닌은 침 분비를 억제하나 산도는 침분비를 촉진하는 보완 관계다. 타닌이 일으킨 입 근육 경직과 말리는 듯한 건조함은 산도로 활발해진 침 분비가 진정시켜 준다. 즉 우리 미각은 타닌이 수분을 머금고 있다고 인식한다. 타닌과 산미가 제대로 결합하면 건조함과 쓴맛이 나지 않는다. 타닌이 산화화면 퀴논(quinone) 물질을 형성하는데 이 성분이 쓴 맛의 주범이다.

티에찌 와인은 타닌이 변질되거나 과도한 산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타닌 제어에 세심한 정성이 들어간 걸 혀가 말해준다. 타닌 조직의 단단한 결속과 산미의 균형, 거기다 오크 흔적은 입맛을 관통하는 중후함으로 살아있다.

시음노트-붉은색에 명멸하는 오렌지 빛 섬광이 힘과 젊음을 보여준다. 한약 다린 내, 말린 버섯, 젖은 흙, 타르, 시나몬, 타바코, 체리 시럽, 빈티지 가죽 향이 강렬하게 코 속을 파고든다.

*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협회가 작성한 빈티지 평가( Vintage Quality Evaluation https://www.consorziobrunellodimontalcino.it/en/583/vini)를 참고했다.

②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 2001- 라 마지아 와이너리. 남동부. 4성 빈티지

2001년은 겨울과 봄에 비가 자주 내려 지하수 저장량이 충분했다. 여름은 맑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됐고 가을문턱에 접어들어 소량의 비가 간간이 내렸다. 과숙의 조짐이 현저해지자 수확기를 앞당겼다.

라 마지아의 부르넬로 밭은 완숙이 비교적 빠른 남동쪽에 위치한다. 반경 50km 내에 있는 지중해가 쏟아 내는 해풍의 영향으로 가장 지중해다운 부르넬로로 각인된 곳이다.

덥고 건조한 여름은 타닌의 단단함이 산미의 신선도를 이긴다. 맛의 주도권이 타닌에게 주워지고 건조함과 무거운 맛이 신속하게 입안 깊숙이 내려앉았다가 잇몸까지 치고 올라온다.

시음노트 - 농밀한 체리, 블랙베리, 감초, 민트, 진저, 버섯, 비 온 뒤 숲에 서려있는 쏴 함과 낙엽향이 섞여 나온다. 더운 여름의 자취는 농후한 과일로 남아있고 타닌은 유순하지만 완강함이 버티고 있다. 완강한 타닌은 날이 선 촉각으로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다 벨벳 결로 형태를 바꾸어 혀를 부드럽게 달랜다.

③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04- 테누테 실비오 나르디 와이너리. 북서부. 5성 빈티지

2024년은 한마디로 비와 태양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적재적소에 등장했다. 봄에 충분한 비가 내렸고 여름이 뜨거웠고 대다수의 날들이 태양이 찬란하게 비췄다. 간간이 비가 내려 땡볕 더위를 식혀줬다.

테누테 실비오 나르디의 밭은 추운 부르넬로로 알려진 몬탈치노 북서에 자리 잡고 있다. 작황이 좋은 해가 기온이 서늘한 밭에 미치는 영향은 산도와 와인 색에서도 분명하다. 루비색을 띠며 시선을 잔 아래로 뒀을 때 잔 밑의 스템과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홍차에 레몬즙 몇 방울을 떨어뜨려보자. 밤 같이 어둡던 잔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맑아진다.

시음노트- 카르다몸, 희미한 진저향, 견과류, 타바코, 후추, 육두구를 조화롭게 피운다. 산미는 각을 세운 듯 날카롭고 입안은 타액 배출에 집중하여 타닌 표면에 수분 막을 덮는다. 산미가 향기롭고 생동감 있는 붉은 과일향이 가득하다. 타닌이 밀리듯 지나가고 난 입안은 향기롭기까지 하다. 산미 몸 크기에 자신의 몸 크기를 맞춘 듯한 타닌, 상반된 맛이 서로 밀착된 듯 조화로운 맛을 낸다.

④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06- 카프릴리 와이너리. 남서부. 5성 빈티지

2006년은 2000년에 시작된 일련의 슈퍼 빈티지 중 하나다. 4월에서 6월까지 충분한 일조시간, 물 저장력에 힘입어 포도는 성장 속도와 영양 균형을 수확 전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8월 들어 더위가 잠시 주춤했다가 9월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폴리페놀이 천천히 고르게 완숙하여 유래없는 고품질의 타닌을 달성했다.

더운 여름과 더운 지역 부르넬로가 공조한 볼륨과 균형, 매끄런 음용감까지 갖춘 완벽한 빈티지다. 더운해의 리스크인 알코올 과다 기미가 다분했으나 카프릴리는 산도로 제압했다.

시음노트- 짙은 붉은빛이 마치 석양에 작열하는 노을과 같다. 스파이스, 송진, 노간주, 정향, 블랙베리, 낙엽, 타바코, 부싯돌 내음을 터트린다. 타닌과 알코올이 밀착한 듯 매끈한 감촉이 현란하다. 산도는 원을 그리듯 입안을 포옹하다가 알코올의 열기를 몰고 간다.

⑤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0- 포싸콜레 와이너리. 남서부. 5성 빈티지

봄에 여러 번 충분히 비가 내렸고 여름은 덥고 건조했으나 평년 기온보다는 낮았다. 9월에 접어들어 일교차가 크게 벌어져 수확당시 성분검사 결과는 합격기준을 충족했다.

더운 남서지역과 서늘한 여름의 조합은 산미를 도드라지게 한다. 곧고 날이 선 산도는 서늘함이 배어있고 타닌은 산미와 보조를 맞춘 듯 치밀하고 섬세한 질감을 보여준다.

시음노트- 타닌 밀도가 조밀하고 타닌의 힘이 중앙으로 몰리는 팽팽한 집중감이 있다. 또렷하며 신선한 산미, 밑에서 끌어당기는 듯한 타닌의 묵직함이 빚어내는 조화 역시 몰입도를 높인다. 블러드 오렌지, 캐러멜, 버섯, 타바코, 말린 바이올렛 꽃다발의 지중해의 녹진함과 빈티지 가죽 내음이 스며있다.

⑥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2- 콜 디 라모 와이너리. 북동부. 5성 빈티지

추위와 풍족한 적설량을 보인 겨울에 이어 포근한 봄, 무덥고 건조한 여름, 거기다 수확기를 앞둔 9월 초에 대지를 적신 비는 와인에 복합미, 숙성력 자질을 부여했다. 여름이 덥고 건조하면 포도는 반사적으로 과육팽창을 억제하고 과피를 두껍게 한다. 공기에 습도가 희박하면 포도는 수분을 잃고 묵직한 맛이 또렷해진다. 결국 뇌는 산미가 낮다는 신호를 보낸다. 콜 디 라모 부르넬로는 더운 빈티지의 서늘한 밭의 조합을 보여준다.

시음노트 - 블랙베리, 계피, 자두, 레드 커런트, 라벤더, 견과류, 오크향이 어우러진다. 보통 북동부 타닌이 제자리를 찾고 매끄러워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나 더운 여름은 12년 된 와인에 친화력을 선사했다. 산미는 연신 침샘을 자극해 타닌의 말림 정도를 완화시킨다. 가는 선들로 촘촘하게 짜인 타닌 그물이 입안에 융단을 펼쳐놓은 듯하다.

⑦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5- 카르피네토 와이너리. 북서부. 5성 빈티지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기간은 예년의 포근한 날씨와 함께 소량의 비를 뿌렸다. 7월 내내 맑고 더운 날씨가 이어져 착색기가 예년보다 빨랐다. 8월에 기온차가 벌어지면서 과피에 아로마 농축과 불휘발분 축적이 활발했다.

더운해와 서늘한 지역의 대비가 명징했던 빈티지다. 5백 미터를 넘는 언덕에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노출된 공기는 늘 시원하고 쾌적하다. 고도는 산미가 주도권을 갖게 해 청량감과 신선도를 부각시켜 무거운 타닌감을 걷어낸다.

시음노트- 체리, 딸기, 라즈베리 등 막 딴 과일의 푸릇함과 커피빈, 바이올렛, 케이퍼, 타임을 품고 있다. 타닌의 질감이 살아있으며 미각을 빠르게 스치는 산미는 상큼한 잔향을 남긴다. 풍미, 타닌, 산미가 원을 그리는 듯 조화를 이루며 이를 탄탄한 구조가 받쳐주는 완성도 높은 와인이다.

⑧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5- 세스티 와이너리. 남서부. 5성 빈티지

앞의 카르피네토 밭과 위치상 남북으로 대칭된다. 더운해와 더운 지역이란 불리한 조건이 겹쳤을 때 결과는 이에 대처하는 이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2015년= 5성 빈티지란 등식은 결코 자연이 내린 우연한 축복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시음노트 - 더운 여름의 흔적은 농후한 과일과 겉은 매끄럽고 속이 치밀한 타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산미는 둥그런 선을 그리다가 바디를 가볍게 띄워준다. 체리쨈, 흑자두, 블랙베리 같은 농밀함과 라즈베리, 재스민, 유칼립투스 같은 서늘한 기운이 서려있다.

⑨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6- 파토이 와이너리. 남서부. 5성 빈티지

2016년은 완벽한 빈티지다. 비슷한 빈티지가 나오려면 70~76년을 기다려야 한다. 2016년은 겨울과 봄이 평년보다 서늘했고 1916년 다음으로 비가 많이 내렸다. 착색은 7월 20일경 개시했고 8~9월에 접어들자 고온 건조한 날씨를 보여 과숙의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과숙 속도에 제동이 걸렸고 폴리페놀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익어 모든 완숙 기준을 통과했다.

파토이의 포도밭이 위치한 산타 레스티투타(Santa Restituta)는 사시카이아의 창시자 자코모 타키스가 ‘로쏘 델 루오고(레드 와인에 이상적인 곳)’란 별명을 부여했던 곳이다. 파토이 밭에서 안젤로 가야가 1994년에 매입한 피에베 산타 레스티투타 밭이 지척이다.

시음노트- 정향, 타임, 시트론 , 에스프레소, 라즈베리, 로즈마린, 송진 같은 지중해적 풍미가 배어있다. 속이 치밀한 타닌 구조를 매끄러운 타닌이 감싸고 있다. 알코올의 묵직함을 산미가 걷어 내자 입안에서 산뜻함과 세련미가 하나가 된다. 뒷 맛에 쌉쌀한 바다내음이 묻어있다.

⑩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6- 산 로렌조 와이너리. 북서부. 5성 빈티지

더운해의 서늘한 북서 부르넬로다. 파토이 와이너리로부터 북서방향으로 5 km 거리에 있다.

시음노트- 장미, 체리, 블러드 오렌지의 농후한 과일과 라벤더, 은은한 숲 향기가 향연을 벌인다. 엄격한 타닌에 이어 산도가 까칠한 미각을 보듬는 강함과 유연함이 밀고 당기는 묘미를 보여준다. 첫 모금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풍만하지만 이어지는 뒷 맛은 섬세하고 예리한 맛을 내비친다.

⑪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8- 포조 디 소토. 남동부. 4성 빈티지

초 봄의 잦은 비에 이어 성장과 완숙에 중요한 7월, 8월에도 비가 멈추지 않았다. 빈번한 비로 인한 과습도와 저온 현상은 병충해나 곰팡이 감염 우려를 낳았다. 9월 중순에 날씨가 반전하여 몬탈치노의 전형적인 청명한 날씨를 회복했다. 수확 시 실시한 성분 분석 결과는 아로마, 폴리페놀, 산도 수치의 균형을 보여준다.

시음노트- 서늘한 빈티지와 더운 지역을 한 잔에 담은 호사스러운 와인이다. 블랙베리, 로즈마린, 사워체리, 오크 향, 젖은 흙, 케이퍼 , 달콤한 딸기 향은 밝고 화사하다. 또렷하며 절제된 산도, 타닌은 진중하며 섬세한 결을 품고 있다.

⑫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9- 산 폴리노 와이너리. 북동과 남동 중간. 5성 빈티지(구 평가제를 적용했음. 잠정적 평가)

1월 중순경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만 빼고 날씨는 평년기온을 웃돌았다. 발아, 개화, 성장, 착색기와 겹치는 4월~ 7월은 적당한 기온을 유지했고 비도 적당히 뿌렸다. 8월 평균 기온은 30~35도를 유지했다. 과피 대비 과육 크기도 적당했으며 폴리페놀과 산도 수치가 모두 합격 레인지에 들었다. 2016년에 필적하는 솔드 아웃 빈티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음 노트- 핵과일, 블러드 오렌지, 건과일, 주니퍼베리 향을 터트린다. 알코올의 열기, 각을 세운 산미와 결합하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 타닌이 힘차며 섬세함보다는 힘과 볼륨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마치 비상 전 체내에 힘을 집중하는 용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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