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수업과 아르바이트와 다시 아르바이트, 높은 주거비로 인한 단체 생활까지. 시간도 공간도 여유가 없던 도쿄(東京) 생활 간 이따금 그곳에 들러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주어진 당일의 의무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가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 그가 있었다. 20대의 한 시절을 지나던 우리는 자정이 넘도록 불을 밝히던 그곳에서 우정을 공유했다. 빠르게 휘발된 찰나의 시간. 그 반짝임에 힘입어 유학 생활을 이어갔다.

현재도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느리게 흐르던 시간 속 단지 머물던 감각을 기억한다. 그 감각과 더불어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 Saizeriya)’는 아로새겨졌다.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aizeriya.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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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로새김은 강렬했던가. 이탈리아어로 ‘치자 꽃’을 뜻하는 이국적인 이름의 그곳과 재회(再會) 하던 날, 공간에 새겨둔 기억이 밀려왔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 곳. 한 시절의 우정이 있던 곳. 생각할 겨를 없이 재생되던 기억에 이끌려 테이블을 꾸렸다. 어느덧 삶의 새 등장인물이 된 아이와 함께.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aizeriya.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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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초면인 아이와 구면인 내가 꾸린 테이블은 낯설지 않다. 정해진 것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일본이기에 가능했을까. 느긋한 시간도, 재정적 여유도, 그것을 누릴 공간도 부족했던 도쿄의 시간 우리를 품어주던 장소는 건재했다. 오렌지빛 조명에 코팅된 실내와 친숙한 경양식의 맛(味), 경제적인 가격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까지. 그곳은 본질은 간직한 채 자신의 시간 속에서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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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과 아르바이트와 다시 아르바이트로 이어지던 도쿄의 시간, 내일을 그리지 않았다. 막연한 희망으로 가끔 떠올릴 뿐, 미래는 미지의 영역에 있었다.

그 시절 훗날의 자신을 믿었던 건 아니었을까?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지만, 자신의 길 위에 서 있으리라 여겼던 미래의 자신을. 그 시간은 미래의 자신에게 믿음을 건네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단단함을 쌓아 미래의 자신에게. 차곡차곡 쌓아 쉽게 사라지지 않을 단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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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단함은 훗날에 가닿았다. 짐작도 못했던 삶의 시간을 건너. 때로는 우정에 기대고 때로는 시간이 쌓아준 단단함에 기대어 마침내. 자주 흔들리고 자주 굳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삶의 자리를 지키고 돌아온 이에게 공간은 곁을 내어준다. 이제껏 성실하게 그래왔듯.

다시 그곳에 머문다. 우정이 있던 곳. 우정이 있던 곳에는 성장이 남았다. 다시 우정을 쌓는다. 삶의 새 등장인물과 함께.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삶이 머무르는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현재 일본 후쿠오카에 거주하며, 만나는 일상의 요리에 관해 '요리의 말들'과, 개인적인 군 생활의 기록을 담은 '여자 군인의 가벼운 고백(브런치스토리: @sulove)'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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