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을 순찰하는 칠레 블루 이글 (사진=Rathfinny Wine Estate)
포도밭을 순찰하는 칠레 블루 이글 (사진=Rathfinny Wine Estate)

영국 서식스(Sussex)에 위치한 라스피니 와인 에스테이트(Rathfinny Wine Estate)가 포도 숙성의 마지막 한 달 동안 열매를 지키기 위해 매사냥 전문가 팀을 도입했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훈련된 매(Falcon), 호크(Hawk), 그리고 칠레 블루 이글(Chilean Blue Eagle)이 에스테이트 상공을 순찰하며 비둘기, 까마귀, 갈매기 등 해충성 조류를 쫓아낸다.

작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로 시속 320km 이상을 기록하는 송골매(Peregrine Falcon)가 하늘을 선점하며 다른 새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해리스 호크(Harris’s Hawk)와 블루 이글이 계곡을 가로질러 날며 새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영국 토종 소형 매인 머린(Merlin)은 포도나무 줄 사이를 날며 작은 새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번 방식은 기존의 플라스틱 그물망을 대체한다. 그물은 평균 3~5년마다 교체해야 하고 수많은 플라스틱 클립이 필요했으며, 이는 B Corp 인증을 받은 라스피니의 지속가능성 철학과도 맞지 않았다. 공동 창업주 사라 드라이버(Sarah Driver)는 “우리는 환경 영향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며 “올해 처음 매사냥을 도입했는데, 소중한 포도를 지키는 데 더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 다행히 에스테이트 주변 생울타리에는 새들이 즐길 수 있는 먹이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2025년 수확 보호를 위해 투입된 송골매와 자이르팔콘의 교배종 (사진=Rathfinny Wine Estate)
2025년 수확 보호를 위해 투입된 송골매와 자이르팔콘의 교배종 (사진=Rathfinny Wine Estate)

라스피니가 투입한 맹금류는 모두 전문적으로 번식·훈련된 개체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에 의해 관리된다. 송골매와 북극권 토종 자이르팔콘(Gyrfalcon)을 교배한 하이브리드는 갈매기처럼 자신보다 두 배 큰 새도 몰아낼 수 있을 만큼 빠르고 강력하다. 남미 아프로마도 매(Aplomado Falcon)와의 교배종은 크기와 민첩성이 적당해 비둘기를 쫓기에 최적이며, 포도밭 줄 사이를 오가며 기동할 수 있다. 머린은 영국에서 가장 작은 맹금으로, 민첩하게 방향을 바꿔가며 작은 새들을 추격하는 데 뛰어나고, 해리스 호크는 느리지만 체력이 좋아 포도밭 가장자리를 오래 순찰할 수 있다. 블루 이글은 덩치와 위용만으로도 까마귀와 비둘기를 쫓아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포도밭 위로 맹금류가 비상하는 광경은 라스피니의 역사적 배경도 환기시킨다. 서식스의 하늘은 과거 ‘브리튼 전투(Battle of Britain)’가 벌어졌던 현장이며, 에스테이트에는 지금도 독일 폭격기 추락지와 폭탄 흔적이 남아 있다.

수확철에 라스피니를 찾는 방문객들은 테이스팅룸, 더 헛(The Hut), 셀러 도어(Cellar Door) 숍에서 서식스 스파클링(Sussex Sparkling)을 즐기며 이 장엄한 맹금류의 비행을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라스피니 리저브드 클럽(Rathfinny Reserved Club)’ 회원들은 오는 10월 15일 특별 매사냥 시연회를 감상할 수 있다.

매사냥은 4,0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전통으로, 영국에서는 7~8세기 귀족과 왕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북극권의 자이르팔콘은 귀한 외교 선물로 사용되었으며, 헨리 8세 역시 열성적인 매사냥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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