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주(美人酒)

세조 8년(1462)에 유구국(현재의 오키나와)에서 온 사신이 자기 나라에서는 십오 세 처녀가 쌀을 씹어서 뱉어낸 것으로 술을 빚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위나라 역사책 『위서(魏書)』에서는 “물길국(勿吉國: 숙신, 읍루)에서는 곡물을 씹어서 술을 빚는데 이것을 마시면 능히 취한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고대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술이 있었다고 짐작된다. 밥을 씹으면 밥의 녹말이 침 속의 녹말 분해효소에 의해 당분이 되어 단맛이 입에 감돌게 된다. 그러면 이것을 항아리 속에 뱉어내면 주변에 있는 이스트의 힘을 얻어 술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술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는 ‘미인주(美人酒)’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십오 세의 아리따운 처녀들이 달빛 아래서 항아리를 둘러싸고 춤을 추면서 쌀을 씹어서 뱉어낸 것으로 술을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미인주는 가장 원시적인 당화에 의한 곡주이다. 옛날부터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 술을 조상을 위한 제사에 쓰기 위하여 지금도 일부 부족들이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용하는 원료도 태평양 여러 나라는 뿌리줄기, 중남미는 옥수수, 동남아시아는 쌀 등 여러 가지이며, 씹는 사람도 부인이나 처녀가 많지만 남자만 하는 곳 그리고 남녀 가리지 않는 곳도 있다. 원료 처리는 날 것 그대로 하거나 대만처럼 가루 내어 삶아서 씹는 곳도 있다. 이렇게 곡식을 입으로 씹어서 만든 술이라고 해서 일명 ‘구작주(口嚼酒)’라고도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옛날 사람들도 당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술이 된다는 기본 지식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밥을 씹어서 뱉고 이것을 모아서 술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귀한 술이었을 것이다.

치차(Chicha)

치차 (사진=Wikimedia)
치차 (사진=Wikimedia)

멀리 중남미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를 ‘치차(Chicha)’라고 한다. 현재는 치자라고 하면 여러 가지 원료로 만든 음료를 일컫지만, 주로 옥수수로 만든 음료(Chicha de jora)를 말한다. 이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잉카제국에서 옥수수를 씹어서 뱉어낸 것으로 만든 술이다. 잉카 신에게 봉사하기 위해 잉카 전역에서 선발되어 쿠스코(Cuzco)로 모인 젊은 여성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양조와 직물 등의 종사하였는데, 이들이 옥수수를 씹어서 침으로 당화시킨 것을 뱉어낸 다음에 발효시킨 술을 현재는 ‘치차 데 무코(Chicha de Muko)’라고 한다. 요즈음은 옥수수를 물에 적신 후에 수일 간 멍석으로 덮어 발아시켜, 그것을 햇볕에 건조시킨 후에 분쇄하여 솥에서 찐 후, 수일 간 항아리에 넣어서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든다. 그 외 페루 원주민들이 카사바(페루에서는 유카(Yuca)라고 함)의 뿌리를 씹어서 발효시킨 것을 ‘마사토(Masato)’라고 한다.

알코올발효의 기본 원리

이렇게 옛날 사람들도 모든 술의 원료는 당분을 함유하고 있어야 하고, 당분이 변해서 알코올이 된다는 과학적인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코올발효란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면서 탄산가스를 내놓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원리만 알면, 스위트와인은 발효가 덜 된 것이고, 스파클링와인은 탄산가스를 못 나가게 잡아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집에서 포도를 사다가 와인을 담그면 단맛이 나는 와인이 되기 쉽다. 이는 기술이 부족하여 완벽한 발효를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분이 알코올이 되니까 발효가 끝나면 단맛이 없어야 정상이다. 스위트 와인을 만들려면 발효를 중지시키거나, 포도를 늦게 따거나 말려서 처음부터 당도가 높은 포도를 사용하면, 높은 당도 때문에 이스트가 완벽한 발효를 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발효를 하다가 멈추기 마련이다.

포도를 으깨어 그대로 두면 포도껍질에 묻어있는 이스트 즉 이스트에 의해서 발효가 일어나 와인이 된다.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며, 그리고 이 기본적인 방법은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다만 오늘날 우리는 그 원리를 알고 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점이 옛날 방법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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