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만 아니면 좋으련만… 어쨌든 일본에도 이런 수준의 막걸리가 또 더 있겠지?” 

“네, 이 술이 일본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중 최고 수준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술이 몇 가지나 더 있습니다.” 

“참 좋군. 이렇게 맑고 깨끗한 막걸리는 상상도 못 해봤어. 어딘가 맑은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들게 하는 막걸리네.” 

“일본 막걸리는 여러 종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깨끗한 스타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 보니 금방 또 술이 비었다. 

“다음 술은 보리소주입니다. 아주 좋은 것은 아닌데 우리 협회에서 기획해서 판매하는 것입니다.” 

“도로가메(泥龜) 말하는 건가? 오랜만이군. 한 잔 마셔볼까?” 

도로가메, ‘진흙 속의 거북이’라는 이름의 이 술은 언젠가 영규와 같이 서울에서 했던 시음회에서 마셔본 적이 있다. 무척 뛰어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성비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리와 고구마 버전이 있는데 한주는 단연 보리소주가 좋았다. 일본소주는 고구마 소주가 흔하고 보리나 쌀소주는 드문 편인데, 이 도로가메도 한국에서 팔아도 좋겠다 싶었다. 한 병의 가격은 1리터 한 병에 1000엔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우선 스트레이트로 한 모금을 마시고 미즈와리로 마셨다. 

역시 보리의 향이 느껴진다. 그 향은 별도로 한다면 이것도 역시, 소주 치고는 깨끗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술 자체가 아주 클라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성비라면 한주가 아는 어느 술에도 못지않다. 일본 쇼추 중에서도 그렇고 한국 소주를 봐도 그렇다.

‘이것이라면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화요나 대장부 같은 술들과 비교해서 가성비는 결코 떨어지지 않겠군. 소주란 마케팅을 무시할 수 없긴 하지만.’ 

한주의 머릿속은 어느덧 일본 술들을 한국 시장에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여러 가지 상상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술자리는 자연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과 더불어 퇴근후 술자리를 갖는 손님들이 주변을 채우기 시작하자 영규가 그 침묵을 깼다. 

“형님, 이제 드디어 비교시음을 해보실까요?” 

“아, 그래. 이제 그럴 때가 되었군.”  

한주가 정신이 들어서 주섬주섬 들고 온 보온백을 뒤적였다. 

비교시음을 할 술들은 어제 니가타에서 마시다 가져온 오늘, 그리고 니가타의 유명 양조장인 요시노가와(吉乃川)의 최고급품 극상나마겐슈(極上生原酒), 거기에 또 한국에서 가져온 남양주의 십칠주(十七酒)다. 한국을 자주 오가지만 영규도 ‘오늘’은 처음이다. 

오늘 시음회의 멤버들은 이 가게의 손님들이다. 대부분 일본인인 손님들에게 갑자기 한 잔 하시라고 불쑥 청하는 것, 그것이 한주의 작전이랄까. 마케팅 전략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날 것의 검증이 필요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낯 모르는 사람, 그것도 외국인이 불쑥 술잔을 권한다. 일종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한주가 궁금한 점이었다. 물론 예의 바른 일본인들이니 우선은 좋은 말을 하겠지만, 일본어가 짧은, 하지만 사람들을 상대한 업력은 충분한 한주 입장에서는 그들의 표정과 반응에 집중해서 보면 진짜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술과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인정할 그런 정도의 차이가 아니면 생주유통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무릅쓰고 외국에 수출할 정도 수준은 안 된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한주의 신념이고 자신이었으며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대중들을 상대로 부딪치자는 발상이 나온 것이다. 한주가 일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오늘 밤, 이렇게 기습적인 시음을 하는 것으로 윤곽이 충분히 드러난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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