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에 바리크나 톤노(5백 리터)오크통이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어요”. 카발로토 와이너리의 오너 이자 양조가인 주제페 카발로토가 둔중한 셀러 문을 밀면서 던진 말이다. 언덕 정상으로 부터 15미터 지점 밑바닥을 굴착해 만든 셀러에 들어가자 눅눅함이 배인 서늘한 공기가 온몸에 끼얹혔다. 복도를 따라 마주 보고 있는 슬라보니아 오크통(이하 보테) 열이 끝나는 곳에 출구가 나 있고 이 문을 열자 남쪽 비탈면에서 햇빛을 쪼이고 있는 브리코 보스키스 포도밭 정경이 펼쳐졌다.

주제페는 이어 ” 프랑스산, 오스트리아산 보테도 이 문 턱을 넘어본 적이 없어요. 정품 보테는 오직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산 참나무로 만들죠. 무미무취에다 결이 단단해 제격이죠. 조부모 세대는 바롤로 숙성을 보테에서 했고 우리도 그게 정석인 줄 알고 컸습니다 ”.

바롤로 전망대 -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 마을

어릴 적 낯선 도시에 여행 가면 우리 가족의 첫 번째 목적지는 무조건 타워나 전망대였다. 도시 정상에 올라가면 도시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오고 명소의 위치 파악도 수월해 여행동선을 짜기가 쉬웠다. 머리가 다 큰 지금도 여행첫날은 우리 가족의 ‘무조건 꼭대기’ 전략을 우려먹는다. 바롤로 와이너리 투어처럼 목적지가 흩어져 있는 경우도 약발이 잘 듣는다. 다만 11개 마을이 한 무리를 이루는 바롤로 투어는 전체를 한 번에 보여주는 도심의 타워역할을 하는 장소가 없다. 다만, 바롤로 중앙에 놓여있고 주변에 낮은 구릉지가 깔려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 몇 군데 마을이 제2안이다.

바롤로 지도
바롤로 지도

필자는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마을을 강추하고 싶다. 마을 정상에 서면 봉긋 솟아있는 언덕 마을들과 산자락을 포도밭이 치마폭처럼 감싸고 있는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맨눈으로 봐도 명품와인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 영빈티지 한 병에 수백 유로 호가하는 바롤로가 나오는 크뤼밭들이다.

카스틸리오네 팔레토는 마을 자체와 인근 촌락 그리고 여기에 속한 농경지가 행정단위를 이루는 자치도시다. 총면적이 250헥타르며 이중 바롤로 요건을 충족하는 밭은 148헥타르 정도다. 2010년 포도밭 세분화 규정(MGA, 크뤼)이 도입된 이후 20개 밭으로 쪼개졌다. 다시 말해 크뤼(MGA) 당 평균면적이 7헥타르로 밭 밀집도가 높은 편이다. 밭의 세분화는 특정한 가문의 밸류로 상징되는 모노폴과도 연관된다. 카발로토 가문은 1세기 넘게 브리코 보스키스(17.65 헥타르)와 비뇰로(3.57 헥타르) 밭을 직영했다. 물론 가문 이미지와 크뤼를 묶는 상징성은 세대를 잇는 꾸준한 바롤로 품질관리와 크뤼의 가치를 키워 온 각고의 노력에 의해 사람들 뇌리에 각인될 수 있다.

브리코 보스키스가 바로 카발로토의 역량

브리코 보스키스 Bricco Boschis 크뤼
브리코 보스키스 Bricco Boschis 크뤼

카발로토와 와인 인연은 브리코 보스키스 밭이 맺어줬다. 브리코 보스키스는 원래 바롤로의 대지주이자 금융가인 팔레티 후작가문이 점유하던 광활한 영지에 속했다. 팔레티 가문은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와인에 불과했으나 숙성을 거듭할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바롤로로 극상시킨 몇 안 되는 공헌자들 중 하나다. 후작은 영지의 일부를 주제페 보스키스란 충직한 농부한테 하사한다. 땅 주인이 된 농부는 자신의 소유임을 알리기 위해 자기의 성을 따 브리코 보스키스로 변경했다. 브리코는 언덕 꼭대기를 뜻하는 피에몬테 방언으로 보통 양지바른 언덕에 비유된다.

한편, 이탈리아 왕국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왕실 영지를 총괄하던 자코모 카발로토는 1928년에 이 밭을 인수한다. 1940년 이전까지는 경작만 하고 수확한 포도는 양조장한테 넘겼다. 그러다 3세대인 오리비오와 질도 형제에 이르러 와이너리 체제가 잡히면서 오너 성으로 와인을 시판하기에 이른다. 현재는 창업주의 4세대인 주제페, 알피오, 라우라 삼 남매가 공동으로 오너를 맡고 있다.

크뤼 안에 극소 크뤼

카발로토가 모노폴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17헥타르의 브리코 보스키스는 두 개의 토양이 만나는 교차로다. 1천6백만 년에서 1천 3백만 년 전 사이에 해저에서 융기한 레퀴오 토양(엘베지아노라고도 함)과 이보다 7백만 년 후에 솟은 토르토니아노 토양(산타가타라고도 함)이 조우한다.

레퀴오 토는 점토와 석회석 기반에 얇은 모래 층이 섞여있다. 단단한 구조가 버티고 있어 힘이 폭발하며 숙성기간이 짧으면 타닌은 떫은 맛이 난다. 시음적기는 천천히 오지만 일단 시음 절정기에 달하면 깊은 맛과 어우러진 실크 타닌이 감탄을 자아낸다. 반면 토르토니아노는 새 빈티지라도 과일, 꽃 아로마가 도드라지며 떫은맛이 순하며 어린 타닌의 섬세한 결이 느껴진다.

브리코 보스키스 Bricco Boschis 크뤼
브리코 보스키스 Bricco Boschis 크뤼

브리코 보스키스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경사면을 세 군데로 분리했다. 남동과 정남향은 비냐 뿐다 마르첼로(Vigna Punta Marcello) 밭, 남서향의 비냐 콜레 수도베스트(Vigna Colle Sudovest) 밭, 남서향의 상층부는 비냐 산 주제페(Vigna San Giuseppe) 밭이다. 남동, 정남, 남서향의 밭은 혼합해서 브리코 보스키스 바롤로를 만들고 , 비냐 산 주제페는 리제르바 바롤로에 배정했다. 연 생산량이 총 10만 병이며 50% 가 바롤로일 정도로 바롤로에 올인하고 있다.

그늘 진 곳에서 자라야 산미와 고유 아로마가 제대로 발현되는 바르베라와 돌체토 품종은 동향과 서향을 차지하고 있다. 동향의 비냐 스코트 밭은 돌체토 달바가 나오고 서향인 비냐 쿠쿠로 밭은 바르바레 달바 수페리오가 생산된다.

카발로토 와이너리가 남보다 앞선 것들

1. 1967년부터 브리코 보스키스 밭을 라벨에 명시했다. 이는 MGA 표시를 도입한 2010년보다 43년이나 앞선다. 이렇게 부르고뉴식 크뤼 밸류를 일찌감치 인식하고 도입한 생산자는 카발로토, 비에티, 체레토 , 프루노토, 레나토 라티가 있다.

2. 리제르바는 작황이 뛰어난 연도에 한 해 언덕정상이나 수령이 오래된 밭의 열매만 골라 담은 한정판 바롤로다. 카발로토는 리제르바 에도 밭 명칭을 적용했다. 1970년 분리된 비냐 산 주제페 밭과 1989년 인수한 비뇰로 밭은 꾸준히 리제르바를 배출하고 있다.

3. 친환경 와이너리 추진을 위해 일련의 지속가능 농법을 적용했다. 유기농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1970년대부터 농약, 화학 제초제를 퇴출시켰다. 대신 노균병, 흰 가루병, 귀부균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구리, 유황을 사용했고 2010년에는 식물오일, 허브 농축액 같은 자연살충제로 바꿨다. 포도밭 고랑에 피복 작물을 심어 토양 침식과 양분 유실, 잡초의 발생을 억제했고 무엇보다 흙의 습도를 보존했다. 또한 피에몬테 최초로 천적농법을 도입했다. 수액을 빨아들여 나무를 고사시키는 적거미를 퇴치하는데 천적곤충을 방사했다. 천적벌레는 농약살포로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고 이는 살충제 투여량을 배가 시키는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었다.

바롤로의 전통을 지킨것 뿐

알피오 카발로토. 카발로토 오너 일가의 실세로 동생 주제페와 같이 양조를 맡고 있다
알피오 카발로토. 카발로토 오너 일가의 실세로 동생 주제페와 같이 양조를 맡고 있다

카발로토가 슬라보니아산 보테를 고집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의 알코올 발효와 폴리페놀 침출기간이 긴 데 있다. 카발로토는 장기침용에 대비해 특수 제작된 수평형 스테인리스 스틸탱크를 설치했다. 탱크 양쪽 끝에 달린 날개 축이 회전하면서 껍질과 과즙을 혼합하는데 이 속도를 느리게 조절해 놨다. 작황에 따라 최소 18일에서 최대 38일 까지 늘어난다.

침용이 길면 와인은 보디가 무거워지고 고형물질이 상당량 녹아들어 소형 오크(5백 리터이하)로는 부피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즉 와인마다 어울리는 오크 사이즈와 두께가 있다. 바롤로가 오크에서 머무는 기간이 최소 2년 이므로 적어도 2천 리터 용량은 되어야 한다는 게 (20 hl, 30 hl, 50 hl, 80hl, 100hl) 알피오 공동 오너의 주장이다. 이어 ‘우리가 유별난 게 아닙니다. 요즘 추세가 소형오크통과 짧은 침용을 선호하므로 상대적으로 우리의 침용이 길게 보일 뿐이죠 ’라 덧붙였다.

시멘트 탱크- 침용을 마친 와인은 보테로 옮겨 침전물을 가라앉힌다. 이듬해 날씨가 따뜻해지면 시멘트 탱크로 옮겨 젖산발효를 한다. 시멘트 탱크는 온도조절기가 부착돼있지 않아 실온이 덮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한 오크숙성을 마친 와인도 여기서 잠시 안정화한 후 병입한다
시멘트 탱크- 침용을 마친 와인은 보테로 옮겨 침전물을 가라앉힌다. 이듬해 날씨가 따뜻해지면 시멘트 탱크로 옮겨 젖산발효를 한다. 시멘트 탱크는 온도조절기가 부착돼있지 않아 실온이 덮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한 오크숙성을 마친 와인도 여기서 잠시 안정화한 후 병입한다

바르베라 달바 Doc 수페리오레 비냐 쿠쿠로 Barbera d’Alba DOC Superiore Vigna Cuculo 2020 빈티지

수평형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에서 15일 침용한 와인을 여러 크기의 (1천 리터~5천 리터) 슬라보니아 보테에 나누어 12개월 숙성한 후 블랜딩했다. 수령이 55년인 바르베라의 내공이 딸기, 체리, 자두, 블랙베리 같은 농익은 향기로 표출된다. 장미, 바이올렛, 정향의 네비올로 개성은 우아함을 보탠다. 보테 숙성은 긴장감 있는 타닌을 선사하며 예리한 산미는 정갈한 맛을 낸다.

랑게 네비올로 Doc Langhe Nebbiolo Doc 2020 빈티지

랑게 네비올로 생산을 위한 밭을 따로 두지 않고 바롤로 밭에서 선별한 포도로 만든다. 카발로토 형제는 숙성개시일로 부터 15 개월쯤 경과하면 바롤로가 담긴 보테를 찾아다니며 개별 시음한다. 이중 와인 상태에 따라 오크에 더 놔둘지 아니면 숙성을 중단할지를 결정한다. 이렇게 선별한 보테는 등급을 한 단계 낮추고 새로 조정된 기준에 맞게 양조를 마친다. 바롤로는 최소 38개월을 기다려야 하나 보테시음을 통해 선별된 와인은 26개월로 줄어든다. 거기다 비냐 산 주제페와 비뇰로의 작황이 리제르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등급조정 대상에 오른다. 결국, 여러 개의 밭이 한데 어우러진 오묘한 맛은 바롤로 정장을 입은 랑게 네비올로 신체로 비유해야 옳지 않을까!

감각적인 루비 빛깔. 감초, 바이올렛, 흑연, 커피 빈, 체리, 바닐라 향이 우아하다. 향기는 직선적이고 또렷해서 젊은 네비올로의 발랄함을 만끽할 수 있다. 치밀한 타닌의 구조가 입안을 꽉 채우며 젊은 타닌의 힘이 충만하다.

바롤로 DOCG 브리코 보스키스 Barolo DOCG Bricco Boschis 2019 빈티지. 14.5도

2019년은 2016년에 비할 만큼 뛰어난 빈티지라고 카발로토 형제는 확신하고 있다. 특히 숙성력에서 기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자두, 시나몬 , 스파이시, 숲, 부싯돌, 다크 초콜릿, 철, 장미, 감초, 민트의 복합미가 두드러진다. 30일이 넘는 침용에서 오는 폴리페놀이 중후함으로 표현된다. 산미는 완벽하게 보디와 결합해 밸런스가 출중하다. 연 생산량은 1만 8천~ 2만 8천 병선

바롤로 DOCG 리제르바 비뇰로 Barolo DOCG Riserva Vignolo 2017 빈티지. 15도

1989년에 카발로토가 인수한 후로 리제르바로 정착했다. 비뇰로는 밭의 전주인이며 과학자, 영농학자, 지리학자, 식물학자인 페르디난도 비뇰로의 성이다. 라즈베리, 감초, 블랙베리, 블랙체리, 오렌지 필, 장미, 라벤더 향기가 심금을 울린다. 금속, 오리엔탈 허브 향기는 다른 바롤로와 구별되는 차별성을 띤다. 밀도감 있는 타닌은 힘과 긴장감으로 미각을 감싼다. 예리한 산미는 아로마에 생기를 돌게 하며 타닌의 균형감이 도드라진다. 연 생산량은 3천 3백~6천 6 백병선

바롤로 DOCG 리제르바 브리코 보스키스, 비냐 산 주제페 Barolo DOCG Bricco Boschis Vigna San Giuseppe. 2017 빈티지. 14.5도

민트, 바이올렛, 라즈베리, 정향, 삼나무, 체리향에 이어 감초, 유칼립투스로 이어지는 향기의 롤러코스터가 인상적이다 . 타닌의 떫은맛이 주의를 집중시키다가 차츰 유연해지면서 잔향에 기품이 돈다. 드라이한 맛과 경쾌한 산미가 어우러져 강렬한 집중도를 보인다. 구조에 걸맞은 무난한 보디, 여기에 경쾌한 산미가 어우러져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생산량 5천~ 9천병선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
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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