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정원. 저 멀리 알프스 연봉이 보인다
수도원 정원. 저 멀리 알프스 연봉이 보인다

콜리 오리엔탈리 세계는 로사쪼 수도원(Abbazia di Rosazzo)을 축으로 돈다

로사쪼 수도원은 콜리 오리엔탈리 와인의 발생지이자 상징적 존재다. 로사쪼는 장미인 로자( rosa)에서 유래하며 장미가 만발하는 봄에 열리는 장미 축제로 유명하다. 수도원 내부는 성 피에트로 성당, 회랑식 정원, 발코니를 갖추고 있다. 회랑식 정원을 통해 발코니에 이르면 허리춤에 운무를 감고 있는 알프스가 성큼 다가선다.

수도원의 시초는 9세기경 알레만노란 은둔자가 지은 예배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70년에 성아구스티노 수도회가 정착하자 예배당은 증축을 거쳐 수도원 풍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베네딕트 수도사가 와인용 포도를 들여왔고 도미니크 수도회에 이르러 포도농사가 번창한다. 또한 이 시기에 수도원은 활발하게 피뇰로, 리볼라 발라, 피콜릿 품종의 육성 및 개발에 앞장섰다.

1341년 1월 20일 자 기록은 포도농사와 민생이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알려준다. 기록에 따르면 베르트란도(Bertrando) 총주교는 수도원 관할 영지에 살면서도 포도를 심지 않는 무리들에게 파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1420년경 수도원은 베네치아 공화국 수중에 넘어갔고 이후 수도원에서 생산된 와인의 전량은 베네치아 도제(공화국의 수장)궁으로 보내졌다. 특히 수도원의 리볼라 잘라 와인은 도제들로부터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리비오 펠루가의 수도원 와인 . 프리울라노, 소비뇽블랑, 피노 비앙코, 말바시아, 리볼라 잘라의 블랜딩 화이트다
리비오 펠루가의 수도원 와인 . 프리울라노, 소비뇽블랑, 피노 비앙코, 말바시아, 리볼라 잘라의 블랜딩 화이트다

20세기 초 여러 차례 전란을 겪은 후 수도원은 방치되었다. 1990년에 접어들어 수도원은 복원 사업을 착수했는 데 이를 도운 협력자 중에 리비오 펠루가(Livio Felluga)가 있었다. 리비오 펠루가는 동명 와이너리의 소유자이며 소년기부터 수도원 밭을 가꾼 포도로 와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녔다. 그의 나이 83세 때 수도원으로부터 경작권 및 숙성실 사용권을 따냈고 이어 92세가 되던 2006년에 그가 오매불망하던 ‘아바찌아 디 로사쪼(Abbazia di Rosazzo)’ 수도원 와인을 출시했다.

라벨디자인은 그가 1956년부터 와인 장식에 줄곧 사용한 고지도 라벨(Vini Della Carta Geografica)로 결정했다. 이 라벨은 지역성을 함축한 라벨을 물색하던 그가 우연히 친구가 운영하는 골돌품 가게에 들렀다가 발견한 주*(州) 지형도가 원본이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주

수도원 숙성실은 13세기에 지어졌으며 주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리비오 펠루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방문이 가능하다.

수도원 인근에서 나온 와인은 다 수의 등급에도 이름을 올려놨다. 주요 화이트(프리울라노, 소비뇽, 피노 비앙코, 샤르도네, 리볼라 잘라)를 블랜딩 한 와인은 로싸조 DOCG로 선정되었고, 리볼라 잘라와 피뇰로 품종은 원산지의 역사 밸류와 순도와 고품격이 결합된 가치를 인정받아 소지역(sub zone)에 발탁됐다.

고대 바다의 자취를 더듬다-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코무네(Cividale del Friuli Comune)

콜리 오리엔탈리의 다채로운 폰카ponca 토양
콜리 오리엔탈리의 다채로운 폰카ponca 토양

대다 수의 와이너리가 몰려있어 선택폭이 넓다. 레스토랑 오너, 작가, 음악가, TV프로그램 진행자, 와인메이커등 다중 탤런트의 소유자, 조 바스티아니치가 운영하는 바스티아니치 와이너리는 버킷 리스트 1위다. 바스티니아치의 수출담당자는 콜리 오리엔탈리는 양조법, 품종, 스타일이 혼재해도 결국 폰카(ponca) 토양에 귀결된다며 토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폰카는 2천만 년 전 바다에 잠겨있다가 해저가 밀고 당기는 초월적 힘에 의해 해수면으로 치솟은 바다 이력서다. 이의 단면을 잘라보면 석회석과 점토, 화석, 사암 퇴적층이 겹으로 포개져 있다. 평상시는 암석처럼 단단하나 풍화를 겪거나 비를 맞으면 잘게 부스러진다. 원래 회색빛을 내다가 칼슘이 빠져나오면 노란색, 회색, 하늘색으로 색조 변화를 거친 후 점토로 고정된다.

2022년 산 바스티아니치 프리울라노는 효모앙금과 오래 숙성해 아몬드, 배, 복숭아, 리치, 라임의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기를 낸다. 헤이즐넛과 미네랄은 잘 다듬어진 담백한 풍미를 선사하며 산미가 깔끔한 미각을 돋운다.

1846년에 시작된 로다로 가문의 와인 전통은 파올로와 사라 부부가 이어가고 있다. 120년이 넘는 가문의 손맛이 빚어낸 풍미도 뛰어나지만 와이너리에 이르는 풍경은 동화에서나 나올법하다. 와이너리로 사용하는 건물은 1830년에 지은 로마노 백작의 빌라다. 2002년 로다로 가족이 매입한 후 리모델링을 거쳐 셀러로 변모시켰다.

로다로 와이너리. 로마노 빌라 내부의 야쿤 피토 방
로다로 와이너리. 로마노 빌라 내부의 야쿤 피토 방

여러 방을 이어놓은 듯한 건물의 중앙 칸은 야쿤 피토( Jacun Pitor) 방이 차지하고 있다. 야쿤 피토는 생전에 보헤미안적 삶을 영위해 방랑 화가(1851~1953)란 별명을 얻었다. 떠돌이 화가인 그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한 주인에게 그림으로 보답했다고 한다. 로다로의 야쿤 피토 방은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인디고 블루 캔버스 안에서 살아 꿈틀대고 있다. 마치 아이가 그린 그림 마냥 순수한 아우라를 지닌다.

로다로 와인은 맛의 복합성과 숙성방식에 따라 세 개의 라인으로 구분해 놨다. 편안한 ‘일 피오레 라인’은 토착품종 위주로 품종특성을 살려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복합미가 돋보이는 ‘에티케타 레보루토 라인 ’은 60개월간 효모앙금 숙성 해 깊은 풍미가 우러난다. 투명하고 밝은 레몬 빛이 상큼한 느낌을 준다. 골든 사과, 시트론, 마가릿, 들꽃, 후추향기의 산뜻함이 마치 날아갈 듯하다 . 미각은 순수함과 깔끔함에 매혹당하고 뒤늦게 피어난 라임향에 몰입된다.

복합미가 돋보이는 레보루토 소비뇽블랑 2013 빈티지
복합미가 돋보이는 레보루토 소비뇽블랑 2013 빈티지

스키오페티노 (Schioppettino)도 앞의 타제렌게처럼 현지에서 조차 만나기 힘든 와인이다. 악마의 다리에서 남쪽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프레포토 마을이 자생지다. 프레포토와 인근 마을은 하나로 묶어 스키오페티노 소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어원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는 데 둘 다 ‘터지다’란 스코피에타레( scoppiettare)에서 유래한다. 하나는 완성한 와인을 병에 넣으면 자연적으로 발생한 버블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잘 익은 열매를 씹으면 터지는 식감에서 유래한다. 실제로는 무탄산의 드라이 와인이다. 2022년 산 코자롤로 스키오페티노는 후추의 스파이시함과 라즈베리, 흑자두, 체리가 농익은 향을 풍긴다. 타닌이 유려하며 마치 잘 익은 메를롯의 결과 흡사하다. 산도가 꼿꼿하며 미네랄의 쌉쌀한 맛이 밸런스를 이룬다.

코자롤로 스키오페티노 와인
코자롤로 스키오페티노 와인

정열로 짧은 연륜을 채워가는 와이너리를 만나다- 토레아노 코무네(Torreano Comune )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에서 북동쪽으로 5km 가면 직업이 각기 다르지만 취미가 와인인 6명의 친구가 이뤄 낸 발끼아로 와이너리가 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기 힘들다는 뻔한 속담이 진리임을 보여주는 와인덕후들이다. 초창기에는 단출한 건물을 빌려 와인을 만들었으나 2006년에 버젓한 현대식 와이너리를 지었다. 거기다 포도밭도 12헥타르로 불었다. 가파른 성공의 비밀은 30~50년 수령의 포도와 시모닛 & 시르히( Simonit & sirch) 전정법으로 일일이 나무를 보살 핀 것. 이 전정으로 가지치기를 하면 평균 수명을 50살까지 연장하고 병충해 면역 작용이 있는 꽃눈만 싹을 틔울 수 있다. 넥수스 푸리울라노 2018 년 산은 시트론, 레몬, 샐비어, 파인애플, 청사과, 리치, 망고등 열대과일의 생생함이 느껴진다. 반듯한 산도, 미네랄 맛의 균형이 잘 잡혀있어 몰입도가 뛰어나다.

발끼아로의 넥수스 프리울라노 2018
발끼아로의 넥수스 프리울라노 2018

트랄치 디 비타(Tralci di Vita) 와이너리는 이름을 포도나무 가지에서 빌렸다. 나뭇가지는 싹, 잎, 열매, 와인의 토대가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2018년에 4헥타르로 출발한 신참이지만 밭 경작과 양조의 핵심 부분은 같은 대학 출신 연인이 관리한다. 양조학을 전공한 마씨모와 영농학을 전공한 마리아 끼아라의 와인 사랑이 짧은 연륜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콜리 오리엔탈리 피뇰로 2018 은 올해 안에 선보일 신상이다. 병숙성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아 숙성실에서 부족한 기간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스파이시, 흑자두, 체리 쨈, 바이올렛, 석류의 농후한 풍미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타닌은 임팩트나 힘은 부족하지만 얇은 선들이 서로 단단히 결합한 매끄런 질감이 느껴진다. 빽빽하게 채워진 구조는 응집력은 물론 숙성력도 감지된다.

트랄치 디 비타의 레드 와인. 좌로부터 피뇰로, 피노 누아
트랄치 디 비타의 레드 와인. 좌로부터 피뇰로, 피노 누아

피뇰로 품종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소출이 적다는 이유로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다 1970년에 로사쪼 수도원 밭에 버려진 고목이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묘목을 얻어내는 쾌거를 올렸다. 지역 내 재배 면적은 80헥타르에 불과하나 피뇰로를 출시한 와이너리가 76 군데나 된다. 소출량이 적어 수익성은 낮지만 생산자가 많은 것을 보면 소생한 품종에 대한 애착감이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피뇰로는 솔방울이란 뜻으로 송이 모양이 솔방울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