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티스 헬레니카, 비티스 아피아나, 비눔 알붐 팔랑기니움, 아미네아 제미나, 페레 에 파룸모를 들어본 적은 있는가! 먼저 고대 상형문자 발음 표기나 동굴 벽에 남겨놓은 원시인들의 암호문자가 아님을 밝혀둔다. 3천 년 전 이탈리아에 전래된 이래로 이탈리안 밥상에 매일 오르는 와인들의 옛 라틴어들이다. 이들 언어는 오랜 변형을 겪으면서 지금의 알리아니코, 피아노, 팔랑기나, 그레코, 피에 디 로쏘로 자리 잡았다. 참고로 현지인들은 와인과 품종명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부른다.

폼페이 한 저택의 벽화를 복원한 사진. 알리아니코 포도 문양의 의상을 입은 디오니소스 신. (출처 : Wikipedia)
폼페이 한 저택의 벽화를 복원한 사진. 알리아니코 포도 문양의 의상을 입은 디오니소스 신. (출처 : Wikipedia)

앞의 와인들은 캄파니아주를 일희일비하게 하던 역사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한 폼페이 저택 벽화에 그려진 디오니소스 신의 옷을 장식한 포도는 알리아니코로 밝혀졌다. 27년째 폼페이 유적보호청 산하 연구소와 마스트로베라르디노 와이너리의 합작 프로젝트로 세상 빚을 보게 된 품종이 피에디 로쏘다. 기원전 79년 베수비오가 폭발하기 바로 직전에 폼페이 곳곳에 흩어져있던 15군데 피에디 로쏘 포도밭(약 1헥타르)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한 한 후 일반에게 개방했다. 이 밭의 관리와 와인생산은 마스트로 베라르디노 와이너리가 전담하고 있으며 ‘빌라 데이 미스테리’란 이름으로 매년 2천 병 정도 시판하고 있다. 로마황제의 연회장에 올라 축제분위기를 띄우던 팔레뭄(Falemu,현재는 팔레르노 델 마시코라 부름)은 알리아니코와 팔랑기나로 만든 발효주였다.

캄파니아는 품종 다양성 또한 엄지 척이다. 토착품종 등록을 마치고 상품화한 품종이 1백 여종에 이른다. 다양성을 지켜 낸 데는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와인산업을 뒤흔들었던 국제품종 유행에 편승을 거부한 현지주민들의 전통 보존 정서가 큰 역할을 했다.

만일 이때 국제품종을 받아들였다면 캄파니아주 와인은 훨씬 빠르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2002년 캄파니아 스토리즈 (CAMPANIA STORIES)를 유치하면서 캄파니아 토착와인은 전 세계의 미디어 망을 타게 된다. 캄파니아 스토리즈는 와인 비평가, 저널리스트, 인플루언서가 참여해 새로 출시한 와인을 시음하며 와인 생산지 방문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미디어 이벤트다. DOC와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5대 산지가 돌아가며 행사를 유치하는데 올해는 북동부 캄파니아주의 아벨리노 군(Province of Avellino)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개막식 행사가 열린 제수알도 성 (Castello di Gesualdo)은 노르망디 공국의 후손 카를로 제수알도의 은둔지로 알려진 곳이다. 어느 날 그의 부인이 정부와 내통한다는 사실이 발각 났고 카를로는 이들을 살해한다. 양쪽 가문의 보복이 두려워진 그는 제수알도로 피신했다. 전설에 따르면 보름달이 뜨면 부인의 유령이 성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제수알도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평생 이곳에 은둔하면서 종교음악 작곡에 몰입했다고 한다.

개막식이 열린 제수알도 고성. 7~9세기경에 지어진 요새로 16세기 중반에 카를로 제수알도가 성으로 개조했다
개막식이 열린 제수알도 고성. 7~9세기경에 지어진 요새로 16세기 중반에 카를로 제수알도가 성으로 개조했다

캄파니아의 3대 DOCG 와인 배출지 -이르피나아(IRPINIA)

먼저 아벨리노 군의 와인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벨리노는 행정구역상 군에 속하며 지명 개편 전에는 이르피니아로 불려졌다. 이르피니아는 2천5백 년 전 아벨리노 일대를 다스리던 고대부족 호칭이다. 이르피니아의 어원은 이리처럼 용맹해서 이리를 뜻하는 토착어 hirpus에서 유래했다. 음식, 와인, 풍습등 민간의 정서와 통하는 문화를 표현할 때는 이르피니아는 지명 역할이 퇴색되고 수식어 색채를 띄게 된다. 즉, 이르피니아 와인, 이르피니아 음식 등 그런 식이다. 면적이 2806,07 km² 로 평창군 두 개를 합친 크기이고 이중 28% 면적이 원산지 등급에 등록된 포도밭이다.

주도인 나폴리에서 이르피니아 초입까지 한 시간 거리지만 풍습과 기후는 산악문화권에 속한다. 이르피니아는 캄파니아주, 풀리아 , 바실리아타주를 삼분하는 아펜니노 산맥의 서쪽 산자락 끝에 언덕무리를 이루고 있다. 산악기후나 아드리아 해와 나폴리 만의 해풍이 불어와 지중해 낭만도 만끽할 수 있다.

아벨리노 군의 DOCG지도. 좌에서 우측방향. 피아노 디 아벨리노 -그레코 디 투포 - 타우라시
아벨리노 군의 DOCG지도. 좌에서 우측방향. 피아노 디 아벨리노 -그레코 디 투포 - 타우라시

이르피니아는 3개의 DOCG 와인과 한 개의 Doc 와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세기에 걸친 풍토 및 토양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품종별로 지역을 매칭한 노력의 결실이다. 알리아니코 품종은 아벨리노 군의 중앙 동부, 피아노는 서부지역, 그레코는 북서부의 투포 마을로 구역분할이 명확하다. 주품종 수위를 최소 85% 최대 100%로 높였고 비록 블랜딩 제한이 15%로 낮은 보조 품종이라도 토착품종만 섞을 수 있게 해 고유 풍미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진화하고 있는 화이트 와인들

피아노 디 아벨리노 DOCG(Fiano di Avellino) - 와인 규정에 따르면 서부 아벨리노군에 속하는 26군데 마을로 생산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552헥타르 포도밭에서만 해당 와인이 나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언덕 고도는 3백 미터에서 6백50미터로 제한했는데 이 간격의 토양은 점토와 석회석층에 베수비오에서 분출한 화산 쇄설물이 쌓인 퇴적층이 집중돼있다. 피아노(최소 85%)만 넣은 양조가 선호되고 있으나 블랜딩 할 시는 그레코, 코다 디 볼페, 트레비아노 품종을 최대 15%까지 혼합할 수 있다.

수확한 다음 해에 바로 시판되는 피아노 디 아벨리노(기본와인)와 12개월 이상 숙성하면 출시하는 피아노 디 아벨리노 리제르바가 있다. 대체로 향기는 진하지 않지만 여운이 길다. 살구, 자스민, 아몬드, 흰 꽃, 청사과, 진저 아로마가 은은하다. 산도의 결이 날카로우나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 순수한 산미로 인한 아로마가 도드라지며 미네랄과 어우러진 바삭한 식감이 매혹적이다. 향기 표현이 섬세하여 보디의 풍성함보다는 산뜻한 과일내음이 선사하는 잔향 음미에 적당하다.

그레코 디 투포 DOCG (Greco di Tufo) – 아벨리노 군 북서쪽을 차지하며 마치 피아노 디 아벨리노와 타우라시 꽃받침이 그레코 디 투포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투포는 그레코의 거점도시로 인근의 8군데 마을을 아우르는 748헥타르 밭에서 생산된 그레코만이 DOCG 등급을 누릴 수 있다. 1866년 투포에 매장된 유황층이 발견된 이후 투포지역은 유황 채굴장이 번성했다. 채굴한 유황을 도시로 이송하기 위해 철도가 개설되었고 이 철도를 통해 이르피니아 와인이 전 세계에 알려진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유황은 와인에 미네랄 성분과 동질의 와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성을 지닌다. 페놀성분으로 인한 짙은 노란색을 띠며 산도와 미네랄이 밸런스를 잡아준다. 커스터드, 바닐라, 리치, 흰 장미, 샤프론, 견과류의 매력적인 향이 코를 감싼다. 2~3년 숙성한 와인은 페트롤과 열대 과일향이 선명해지며 원만한 풍미가 미각을 감미롭게 감싼다.

보통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발효한 와인을 효모앙금을 저어주면서 깊은 맛을 우려낸다. 짧은 안정기간만 보낸 그레코 디 투포, 12개월 숙성한 리제르바 타입과, 2차 병숙성을 18개월 이상 해서 만든 전통방식 스푸만테도 선보이고 있다. 그레코 품종 (최소 85%)에 코다 디 볼페, 트레비아노 품종을 최대 15%까지 블랜딩 할 수 있으나 트렌드는 그레코만 선호한다.

라파엘레 트로이시의 선택과 집중 전략

가파른 산이란 뜻을 지닌 트라에르테 Traerte 와이너리의 오너 라파엘레 트로이시
가파른 산이란 뜻을 지닌 트라에르테 Traerte 와이너리의 오너 라파엘레 트로이시

트라에르테(TRAERTE ) 와이너리의 오너인 라파엘레 트로이시는 30년 간 우직하게 그레코, 피아노, 알리아니코 품종만 고수하고 있어 선택과 집중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오너 원년인 1993년도에 생산방식을 대폭 개선해 단일 품종 원칙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숙성 전략을 확립했다. 특히, 주 품종의 복합미와 산미 증가 목적으로 첨가하던 코다 디 볼페 품종을 제거했다. 결국 주품종의 순도를 100%로 극대화했고 이르피니아 최초로 코다 디 볼페 만으로 만든 와인을 출시해 동명품종의 아버지란 닉네임을 얻었다.

트로이시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DOCG라인과 셀렉션 라인으로 구분해 타깃층을 세분했다. DOCG 라인은 다수의 밭을 블랜딩해 단기간의 셀러 숙성을 통해 전통맛을 살렸다면 셀렉션 라인은 높은 해발고도, 싱글 빈야드, 고령의 수령, 2년의 셀러 숙성을 거쳐 복합미와 숙성력을 갖추었다.

트라에르테의 셀렉션 라인. 좌에서 우측 방향. 코다 디 볼페-피아노 디 아벨리노-그레코 디 투포
트라에르테의 셀렉션 라인. 좌에서 우측 방향. 코다 디 볼페-피아노 디 아벨리노-그레코 디 투포

피아노 디 아벨리노 DOCG AIPIERTI는 정남을 바라보는 해발 400미터 아이피에르티 밭에서 자란 수령 40년의 피아노를 24개월 숙성해 완성했다. 그레코 디 투포 DOCG TORNANTE는 해발 6백~7백 미터대에 조성된 토르난테 밭에서 자란 수령 40년의 그레코를 사용했다. 코다 디 볼페 DOC TORAMA 는 점토, 모래, 석영의 혼합토 에서 자란 수령 60-70년의 품종을 24개월 숙성했다. 토라마 의 모래토에 심으면 포도는 습기에 닿으려고 필사적으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데 이 과정에서 다채로운 미네랄 성분과 접촉하면서 미묘한 복합미를 얻는다.

셀렉션 라인은 화이트임에도 불과하고 최소 10년의 숙성력을 지니며 재스민, 페트롤, 서양배, 타임, 허브의 신선함에 감탄하게 된다. 꼿꼿하며 순도 높은 산도가 미각을 깨우며 미네랄 개성이 또렷하다. 과일 아로마와 어우러진 페트롤 뉘앙스는 북유럽의 서늘한 가을이 심상에 떠오른다.

과거에 갇힌 화석와인을 탈피해 현실의 밸류로 등극 - 2회로 이어집니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
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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