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트라 토스카나 협회 회장 프란체스코 마쩨이(좌), 이탈리아 1호 마스터 오브 와인 가브리엘레 고렐리(우)
랄트라 토스카나 협회 회장 프란체스코 마쩨이(좌), 이탈리아 1호 마스터 오브 와인 가브리엘레 고렐리(우)

슈퍼 투스칸이 탄생한 지 벌써 55주년을 맞는다. 슈퍼 투스칸의 효시로 꼽히는 사시까이아와 비고렐로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이 와인들을 배출한 지점을 연결하면 일직선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쪽 끝은 사시까이아로 상징되는 마렘마 해안이, 반대편은 비고렐로로 대표되는 끼안티 클라시코 언덕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슈퍼 투스칸 용어는 1986년에 고안되었다고 보는 게 정설인데 디캔터(Decanter)지 기고가로 활동하던 니콜라스 벨프라지(Nicolas Belfrage)가 쓴 칼럼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 세계 와인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본산지 이탈리아는 테이블 와인으로 폄하되고 있는 극도의 호불호 현상을 압축한 신조어였다. 후에 슈퍼 투스칸의 족적을 뒤늦게 깨달은 이탈리아 정부가 1992년 TOSCANA IGT규정을 제정해 제도권 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급한 불은 껐다. 그러니 토스카나 IGT로 불러야 마땅하나 융통성 없는 규정에 대한 저항 정신이 퇴색하므로 그냥 슈퍼 투스칸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마렘마 해 슈퍼 투스칸

사시까이아는 마리오 인치사 후작이 추앙하던 보르도 와인의 이탈리아 현시다. 정해진 규격을 벗어난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현실은 이에 맞서려는 투지를 고양시키기 마련이다. 후작이 그의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첫 어려움은 보르도에서 가져온 묘목을 심을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후작의 고향인 피에몬테는 프랑스 품종을 받아들이기에는 보수적이었다. 그러다 후작은 토스카나 대지주의 상속녀와 결혼했는데 상속받은 재산 목록에 마렘마도 포함돼 있었다. 마렘마 땅은 고급 보르도 밭이 지닌 자갈토와 인근에 마렘마 해안이 넘실대고 있었다. 후작은 이곳을 모국어로 자갈을 뜻하는 사시까이아라고 불렀고 와인 라벨에도 밭 이름을 명시했다.

자갈밭과 바다의 조합은 그 당시 포도밭 실격사항이었으나 보르도 품종한테는 이상향이었다. 1968년 데뷔한 이래 로버트 파커로 부터 100점을 얻은 1985년까지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사시까이아는 레전드로 등극한다. 이어 카스타녜토 카르두치, 볼게리, 수베레토등 마렘마 해안 마을을 따라 보드로 블랜딩 인기가 열병처럼 번진다. 오르넬라이아, 그라타마코, 투아 리타, 과도 알 타쏘 같은 보르도 블랜딩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이는 마렘마 해 슈퍼 투스칸 흐름을 주도하면서 주류를 이룬다.

끼안티 클라시코 슈퍼 투스칸

반면 비고렐로는 기존 규정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대손손 산조베제 농사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산조베제 농경문화가 내면화된 끼안티 클라시코 지역이 진앙지다. 여기는 1960년대 중부 토스카나, 산 펠리체 와이너리의 엔조 모르간티 양조가는 기존 양조법에 의문을 품는다. 끼안티 클라시코가 Doc규정의 적용을 받던 시절에 규정을 통과하려면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같은 화이트 품종을 혼합해야 했다 (2005년에 화이트 품종 의무사용 조항 폐지).

법대로 하면 품질 미달이 불 보듯 뻔했고 규정을 어기고 산조베제만 넣자니 등급 강등을 감수해야 했다. 양조가는 후자에 손을 든다. 자진해서 등급을 반납하고 테이블 와인(Vino Da Tavola)으로 남기로 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테누타 티냐넬로의 피에로 안티노리도 같은 이유로 티냐넬로(1971년)를 고안했고 이어, 이 소디 디 산니콜로(카스텔로 디 몬산토 와이너리, 1974년), 체파렐로(이졸레 와 오레나 와이너리, 1980년), 폰탈로로(펠시나 와이너리, 1983)가 합류했다.

산조베제의 핵, 끼안티 클라시코가 촉발시킨 이러한 전위적인 움직임은 끼안티 클라시코 슈퍼 투스칸 줄기를 이루었고 마렘마 해 슈퍼 투스칸과 양대 산맥을 이룬다. 산조베제 흐름은 보수적인 몬탈치노, 몬테풀차노로 확산되어 산조베제 슈퍼 투스칸 망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만드는 이의 창작성이 더해지면 향미의 변주를 펼치지만 슈퍼 투스칸의 본질은 변함없다. 바리크 숙성, 블랙베리, 다크 초콜릿, 농밀한 레드 과일, 오크의 영향을 받은 강직한 타닌과 풀보디의 매끈함을 지닌다.

‘슈퍼 투스칸의 축’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던 토스카나 상공회의소 외관
‘슈퍼 투스칸의 축’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던 토스카나 상공회의소 외관

지난 2월 17일, 토스카나 상공회의소에서 슈퍼 투스칸의 축(The Pillars Of Supertuscan)이란 제목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여기서 축(Pillars)은 슈퍼 투스칸의 축을 이루는 산조베제,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말한다. 행사 진행자는 이탈리아 1호 마스터 오브 와인(이하 MW) ‘가브리엘레 고렐리’가 맡아 이목을 끌었다. 그는 몬탈치노 출신으로 2021년 시험에 합격해 418번째 MW합격자가 되었다. 이탈리아 1호 MW탄생 소식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탈리아가 와인 생산과 소비면에서 세계 상위 5위에 드는 와인강국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야 MW배출국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산조베제는 이탈리아 레드 품종을 면적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1위를 차지할 만큼 대중적이다. 이탈리아에만 6만 헥타르, 국외에서는 1만 5천 헥타르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롯은 2019년 국제 와인기구( OIV) 통계에 따르면 면적기준 세계 5대 품종 안에 든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전 세계 포도밭의 4%인 341,000 헥타르, 메를로는 3%인 266,000 헥타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 이탈리아 1호 MW 가브리엘레와 함께 슈퍼 투스칸 여행을 가보자.

첫 번째 축 - 산조베제 비중이 높은 슈퍼 투스칸

폰탈로로 Fontalloro Toscana IGT . 펠시나 와이너리. 산조베제 100%. 2018 빈티지

라즈베리, 사워 체리, 장미, 이리스 같은 산조베제의 화사함과 블랙베리, 블러드 오렌지의 검붉은 과일이 만발하다. 강렬한 산도와 함께 타닌의 묵직함이 입안을 파고든다. 타닌이 다소 뻑뻑하지만 잔향에 기품이 돈다.

티냐넬로 Tignanello Toscana IGT . 마르케시 안티노리 와이너리. 산조베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블랜딩(혼합 비율 무표기). 2018 빈티지

바이올렛, 후추, 파프리카, 흑자두, 블랙베리, 스파이시의 세련미와 숲의 눅눅함, 다크 초콜릿, 짭짤한 내음, 오크향, 정향의 풍만함이 완성도를 높인다. 타닌의 빈틈없는 결이 돋보이는 가운데 충만감이 드높고 풀보디의 매끈함과 결합해 절묘한 밸런스를 이룬다.

카브레오 일 보르고 Cabreo il Borgo Toscana IGT. 암브로조 & 조반니 포로나리 와이너리 . 산조베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블랜딩(혼합 비율 무표기). 2018 빈티지

염분향, 페퍼, 바닐라, 정향, 바이올렛, 블랙 체리, 민트, 감초의 풍성한 향을 만끽할 수 있다. 타닌이 빠르게 입안을 말리지만 곧 미네랄 풍미가 드러나면서 타는 느낌이 걷힌다. 풀보디의 유연한 질감은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며 음용성이 꽤 좋다.

두 번째 축- 메를로 비중이 높은 슈퍼 투스칸

지라몬테 Giramonte Toscana IGT . 프레스코발디 와이너리. 메를로 85%, 산조베제 15%. 2020 빈티지

검붉은 색은 풍만함을 예고한다. 에스프레소, 바닐라, 다크 초콜릿, 허브, 페퍼, 흙, 버섯, 블러드 오렌지, 블랙베리, 후추향이 풍성하다. 파워풀한 보디와 강렬한 산미는 미각을 빠르게 점령한다. 견고한 구조가 중심에 버티고 있으면서도 경쾌한 산미를 유지하고 있어 밸런스의 묘미를 보여준다.

오레노 Oreno Toscana IGT . 테누타 셋테 폰티 와이너리. 메를롯 50%, 카베르넷 소비뇽 40%, 쁘띠 베르도 10%. 2018 빈티지

파프리카, 민트, 다크 초콜릿, 블랙베리, 정향, 젖은 흙, 말린 과일의 매력적인 향기는 분필향으로 끝맺음한다. 타는 듯한 타닌이 밀도감 있게 미각을 점령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동시에 매끈한 질감과 농후한 과일향이 빚어내는 조화가 만족도를 끌어올린다.

엑셀수스 Excelsus Toscana IGT. 반피 와이너리. 메를롯 47% , 카베르네 소비뇽53%. 2018 빈티지

블랙체리, 블랙베리, 샐비어, 흑자두, 타바코, 월계수잎 등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타닌은 혀 끝에서 귀 밑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입안에 풀보디의 우아함과 꽉 짜인 밀도감을 선사한다.

세 번째 축- 카베르네 소비뇽 비중이 높은 슈퍼투스칸

귀달베르토 Guidalberto Toscana IGT . 테누타 산 귀도 와이너리. 카베르네 소비뇽 60%, 메를로 40%. 2020 빈티지

블랙베리, 흑자두, 스파이시, 민트, 해조류, 파프리카, 월계수 잎등 지중해풍 개성이 짙다. 보디는 중후하면서도 깊은 맛을 선사한다. 중후함은 미네랄의 쌉쌀함과 신선한 산미를 품고 있어 와인에 생기가 넘친다.

아차이오로 Acciaiolo Toscana IGT . 카스텔로 디 알보라 와이너리. 카베르네 소비뇽 100%. 2018 빈티지

블러드 오렌지 껍질, 시트러스, 커피 빈, 흑자두, 사워 체리, 베르가못, 삼나무, 파프리카 등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 모아놨다. 치밀한 타닌감은 중후한 볼륨감으로 발전되며 미각 신경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시트러스 여운이 만족감을 고조시킨다.

피에트라 오니체 Pietra Onice Toscana IGT. 카사노바 디 네리 와이너리. 카베르네 소비뇽 100%. 2019 빈티지

흑자두, 체리, 말린 오렌지 필, 말린 토마토, 시가 박스, 스파이시,다크 초콜릿 향이 코를 감싼다. 타닌의 카리스마적인 집중도와 극도의 선별로 인한 농축미를 한 껏 펼친다. 높은 청량감은 입안에 붉은빛 과일 풍미를 선사하며 잔향에서도 지속적으로 느껴진다.

슈퍼 투스칸 팬들이 반가워할 만한 소식으로 글을 마치겠다. 끼안티 클라시코 슈퍼 투스칸의 흐름을 주도했던 16명의 원조 멤버들이 지난 2021년 12월에 단체를 결성했다. 역사적인 슈퍼 투스칸 위원회(Comitato Historical Super Tuscans)란 이름의 본 단체 명예 회장은 티냐넬로의 창안자 피에로 안티노리가 맡았다. 본부는 비고렐로의 탄생지, 산펠리체 마을에 두고 있다. 위원회의 설립목적은 슈퍼 투스칸의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이어가는 데 있다고 안티노리 회장이 밝혔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
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