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엔비로 잡은 신주쿠의 숙소.

번화한 거리의 소음이 하얀 빛과 함께 창문을 넘어온다.  

눈을 떠보니 열 시가 넘었다. 어젠 어떻게 집에 들어왔던가. 술집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가 영규가 깨워서 택시를 타고 들어온 것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통일막걸리. 영규는 분명히 ‘통일막걸리’라고 말했다. 통일막걸리, 자이니치 3세의 진정이 담긴 술이다. 북한에서 생산해서 남한과 일본에 판매한다, 그런 얘기였다. 북한이라면 소주가 어떠냐, 아니 왜 러시아와 중국은 빼고, 북한 자체는 또 왜 빼고 한국과 일본 만이냐는 둥 이야기가 이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술자리에서 술이 취해 한 이야기지만 그 생각은 영규의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우발적으로 나온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귀국일, 게다가 이 숙소는 무려 10시가 퇴실시간이다. 이미 늦었다. 이런 류의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싫어하는 한주는 삼일 연속 과음으로 아직 숙취가 배어있는 몸을 튕겨 일어나 재빨리 욕실로 달려갔다. 수체 구멍에 물 빨려들어가는 것과 거의 정확히 같은 속도로 몸을 씻고는 재빨리 짐을 챙겨 나왔다. 올 때 술을 가져오느라 수트케이스를 가져오긴 했지만 술을 다 마셔버리고 난 지금은 이 수트케이스 안에는 며칠 간의 빨랫거리 외에는 거의 든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짐만 되는 수트케이스와 어깨에 매는 가방, 그리고 손에 드는 에코백으로 제법 번잡한 차림을 하고 길에 나섰다.  

행선지는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 한류거리. 여기서 한주를 팔 수 있을지 어떨지, 분위기를 보고 싶은 것이다. 신주쿠에서 신오쿠보는 지척이다. 지상의 전철역에서 내려다보는 신오쿠보는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의 한류 중심. 한류스타들의 사진과 한글 간판만으로도 확실히 분위기가 산다. 하지만 음식은 별로 볼 것이 없겠다 싶다. 올드한 스타일의 음식점, 이름도 남대문이나 일송정 같은, 한류스타들의 사진과 거리에서 배경음악으로 들리는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올드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어떤 전형적인 스타일이 자리 잡고 발전이 없어서 한주는 외국의 한국음식점은 굳이 찾아가지는 않는 편이다. 한국의 식품대기업들이 한류를 타고 각종 가공식품을 다양하게 공급하면서 외국의 한국식당이라도 '서울의 맛'을 그대로 내는 곳이 많아진 이유도 있다. 물론 근래에는 새로운 감각으로 한식을 넘어서는 음식을 추구하는 집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야 어쨌든, 한주는 길에서 스치는 간판과 사람들만 피부로 느끼듯 정보를 흡수하며 한국슈퍼마켓으로 향했다. 한국 슈퍼에 들어가니 확실히 사람도 버글거리고 한국 식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도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한쪽에는 막걸리 코너도 있다. 막걸리로는 다들 페트병에 든 막걸리인데 유독 이쪽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막걸리 사가는 사람은 못 보았다. 뭐 이렇게 바쁜 곳에서 그래도 팔리니까 진열하겠지만, 이 막걸리들로는 일본 자체 생산의 막걸리와는 품질로도 비교가 안되고 심지어 가격의 강점도 별로 없다. 막걸리 종주국인 한국의 상품이라면 호기심에 마셔볼 수는 있겠지만 술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가격에 계속 사 마실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다.

‘별로 볼 게 없군’

프리미엄이라고 할만한 것은 단 한 종도 없었고, 이런 환경에서는 있어도 아마 팔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기 전부터 그렇게 예상했지만 현장을 와보니 역시 결론은 ‘에노테카’ 같은 전문점에서 훈련된 판매자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다. 요는 와인이나 위스키 같이, 전문적인 판매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판매가 힘들다는 것이다. 가격도 가격이고, 유통기한 문제도 있고.  

‘하긴, 마트나 편의점에서 받아줄 만큼 생산도 못하지.’

프리미엄 한주 양조장들의 생산량은 적게는 월 수백 병에서 많아도 수천 병 정도. 마트나 편의점에서 요구하는 최소 재고량도 못 맞추는 생산량들이다.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수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주류의 인터넷 판매라면 규제가 거의 없으니 그것을 해볼까, 라고 생각해도 역시 인터넷 사이트 운영을 할 만한 전문역량이 있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그건 술에 대한 역량에 더하여 필요한 능력이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지만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시간도 애매하고 해서 공항 라운지에 앉아서 글을 좀 끄적이며 생각을 정리해야겠어서이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 시간은 두 시간 남짓 남았지만, 뭐야, 여기는 라운지가 없다. 항공사 라운지는 있지만 이럴 때 쓰려고 비싼 연회비 내고 쓰는 카드가 통하는 라운지가 없다. 젠장, 지금 떠오른 이 생각을 발전시키려면 당장 글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용어설명 : 에노테카


일본 최대의 와인숖으로 직수입이 원칙이며 고급 와인의 경우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냉장유통과 보관을 원칙으로 한다. 세계 와인업계의 큰 손이며 에노테카에서는 어지간한 희귀 와인도 거의 다 구할 수 있다.

한국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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