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도착하니 해가 지려는 시간이었다.

장기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육중한 레인지로버는 덩치답지 않게 조용히 빗길을 미끄러져 올림픽대로로 들어섰다. 퇴근 시간이 지났어도 강남 어름에서 차가 좀 막혔다. 한주는 블루투스를 통해서 핸드폰의 음악 앱을 차의 스피커에 연결시켰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이글스의 ‘Take it easy.’ 길이 막히는 것 좋아할 사람도 없지만 차 안에 앉아서 길에다가 시간 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한주에게 마침 어울리는 노래랄까. 

‘그래, 천천히 가자. 어차피 오늘은 씻고 자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으니까.’ 

그날도 비가 내렸다. 한주는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하려고 마감 정리를 하는 중이었고, 밤 두 시가 넘어서 걸려온 전화를 받을까 말까 잠깐 망설였다. 이 시간에 걸려온 전화는 대개 아직도 가게가 열었느냐, 뭐 그런 전화이기 십상인데 가게문은 이제 닫혔으니까. 그래도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끝이었다. 자초지종은 묻지도 못하고 아직 정리가 덜 끝난 가게문을 서둘러 걸어 잠그고 한주는 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달려간 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부모님의 사망선고와 싸늘한 주검뿐.   

그 후로는 악몽의 시간을 살 듯이, 서류에 서명을 하고 부고를 여기저기 돌리고 장례식 준비를 하고, 두 분의 세상 단 하나의 혈육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주는 외아들이었고, 아버지도 그랬다. 누군가의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오롯이 혼자 지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은 일이어서, 슬픔의 눈물은 조문객이 있는 낮에는 흐를 틈이 없었다. 밤이 되면 눈물보다 사무치게 가슴이 아파왔다.  

‘이런 식은 아닌 거잖아.’ 

평생 부모님 뜻을 거스르며 살면서도 언젠가는 인정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한주는 이제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될 기회는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아빠, 엄마…” 

가끔 저도 모르게 나직이 불러보게 된다. 강남을 벗어나 차량의 정체가 풀리고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동안 한주는 또 한 번 그 비 오는 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아빠, 엄마를 부르면서야 다시 지금의 현실로 돌아온 느낌의 한주는 차의 속도를 줄였다. 빗길 운전은 조심해야 한다.  

‘한 집안 이대가 똑같이 빗길에 교통사고로 간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겠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사람 상대하는 것도 싫고 왠지 죄인 된 것 같은 마음에 한주는 서울의 가게를 정리하고 홍천으로 거처를 옮겼다. 갑작스런 현실에 한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부모님은 성공한 인생을 사셨던 분들이고 한주에게 상당한 유산을 물려주셨다. 한주는 그 유산으로 홍천에서 한주산업 발전이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장소를 마련했다. 우선은 그리 크지 않은 집 한 채지만 앞으론 땅도 더 넓히고 사람들이 와서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아니 그보다 문화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밤의 산에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것도 인공적인 소리는 더욱. 한주가 차를 세우자 곧 불이 켜지고 한 사람이 나와서 한주를 맞았다. 

“형, 다녀오셨어요?” 
조한영, 25세. 양조가 지망생이다. 한주의 유일한 동거인이다. 

“응, 다녀왔어. 별일은 없고?” 
“네. 형 저녁은요?” 

“기내식이라고 주는 걸 먹었는데, 좀 섭섭하네.” 
“그럴 줄 알고 좀 준비했어요. 일단 씻고 나오세요.” 

한주는 아침에도 씻긴 했지만 어제의 숙취와 오늘의 여독을 한꺼번에 씻어내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잠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오기로 했고 그 사이에 한영은 상을 차리기로 했다. 

한주가 갑자기 짐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두 병의 사케였다. 

“자, 이거 선물이야. 어차피 못 참고 오늘 마셔야겠지? 냉장고에 넣어둬. 상온보다 좀 차게 마시는 게 좋은 술이야.” 

“앗 형 고맙습니다. 니혼슈… 인가요?” 

“곧 열어보면 알 테니 일단 씻고 나와서 마시면서 얘기해 보자고.” 

“흐흐, 넵.” 

한주의 씻는 물소리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경쟁하듯이 울리는 집안. 꿈 많은 두 청년의 스위트홈은 홍천 산골짜기 깊은 곳에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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