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가 초콜렛과 사탕을 앞에 둔 소녀 같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시음을 시작하자 프로의 자세가 절로 나온다. 일단 눈으로 술을 검토하고, 코로 여러 번 향을 음미하고, 입에 넣어 굴려보고, 또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노우징부터 반복. 이렇게 여섯 잔을 마시는 동안 다들 조용히,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 이 의식 같은 절차가 모두 끝났다. 치에는 두 사람의 눈길도, 침묵도 모두 느끼지 못하는 듯, 진공 속에서 그만의 감각과 정신을 모두어 오직 술과 자신과의 교감만을 이루는 모습이다.

“그래 어때요?”

여섯 번째 잔이 탁자에 놓이고, 또 어느 정도의 침묵이 흐르고, 진공에서 현실로 치에가 귀환했다는 듯이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자 미담 선생이 침묵을 깼다.

“아, 좋아요. 술들이, 물러나지 않네요. 다들 힘차게 움직이고 있어요. 뭐든지 다 보여줄게 하는 느낌이랄까요? 한주는 많이 마셔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니혼슈와는 확실히 다른 활력이 있어요. 향으로만 따지면 와인이 훨씬 풍부하고 깊다고 할 수 있지만 곡주에는 특유의 감칠맛이 있어서 혀에 느껴지는 맛은 오히려 더 입체적이고 화려해요.”

“하하, 그럴 거야. 나는 술을 만들 때 오미가 다 갖춰지고 화려한 술을 만들려고 해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균형 맞추느라 눈치 보지도 않는 그런 술을.”

“네, 솔직하고 화려하고, 꼭 선생님 같은 느낌이에요.”

“응, 술이 빚는 사람을 닮더라구. 나야 평생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고, 기운차게 살아가려고 하니까 아마 내 술들도 그런 기운을 받나 봐.”

치에는 기뻐서

“저 이거 한 병 사갈 수 있을까요? 다 사가고 싶지만 그렇게 많이 일본에 가져갈 수는 없으니까 한 병만요.”

치에가 가리킨 것은 송화주의 청주다.  
“선생님 저는 생강주요. 청주로요.”

한주도 한 병을 산다. 한주는 생강주의 맑은 향이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둘은 술을 각각 한 병씩 들고 양조장을 나섰다.

“선생님 또 찾아뵐게요.”
“그래요, 자주 왔으면 좋겠네. 잘 가요.”

둘이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한주가 차에 올라타서 치에에게 물었다.

“어때?”
“좋아. 참 좋아.”
“좋아좋아 말고 다른 얘긴 없고?”

“좋긴 한데, 어떤 것은 너무 컬트야. 연엽주 같은 경우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술이네.”

“응. 보통이라면 치에가 이해가 안 간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오늘의 연엽주는 어려웠던 모양이네. 규모가 작고 시설이 기본적이라 편차가 좀 크기도 하고.”

“휴~,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자. 비즈니스적으로 보자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니까, 오늘은 일단 충분히 즐기고 느끼는 데 집중할래. 걱정하며 술 마시면 술맛을 못 느껴”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래, 맞아. 일단 우리 막국수라도 먹으면서 술기운 좀 내리고 가야겠지?”

“그래, 여섯 잔을 연달아 마셨으니 다음 시음을 위해서 좀 리프래쉬를 하는 게 좋겠네. 막국수 좋아, 좋을 것 같아. 좋은 곳으로 안내해줘요 한주 사마.”  

홍천에 막국수 잘 하는 집이야 많고도 많지만 다음 동선을 고려해서 길메식당으로 향한다. 빨리 안 가면 이 시골에서도 줄 서는 꼴을 면하기 힘든 집이다.


용어설명 : 노우징(Nosing)


술을 테이스팅 할 때 후각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위스키와 같은 고도주의 경우에는 미각 이상으로 후각의 역할이 강조된다. 노우징이란 코를 이용해서 술의 향을 느끼는 방법으로, 술을 마셔보기 전에 노우징을 먼저 하고 술을 마신 다음에 더 정보가 필요하다 싶으면 노우징부터 다시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 미담양조장은 현재 남면의 신축건물로 이전해서 훨씬 좋은 환경에서 술을 빚고 체험활동도 하고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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