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길매식당. 홍천에 막국수 유명한 곳도 많고 유명 안 하더라도 막국수 잘 하는 곳은 수두룩빽빽 많지만 동선으로 볼 때 여기가 딱 좋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점심시간이 아직 덜 되었는데도, 벌써 좁지 않은 식당 주차장에 차 세울 곳이 없다. 한주는 도리 없이 뒤편 교회 주차장으로 향한다. 평일이라 차가 거의 없고, 있는 차들도 대개는 한주와 같이 식당에 온 차들일 것이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이런 거지.” 

한주가 농담 치고는 시니컬하게 내뱉았다. 

“존재 자체를 믿지도 않으면서 감사는 어떻게 드려?” 

치에가 ‘쿡’하고 웃긴 했지만 같은 시니컬 계열로 맞받았다. 기분이 시니컬한 게 아니라 꼭 경우 따지고 논리 깐깐한 한주의 빈 틈을 본 것 같아서 질러본 것이다. 

“일본에서는 가는 데마다 신사라서 모르는 신에게도 절도 하고 빌기도 하고 하더만 뭐. 신이 팔만이라며 그 신을 다 알아서 그러나?” 

“…..” 

치에가 말문이 막혔다. 치에도 사람 만나서 관계를 맺고 설득하는 게 직업이고 타고난데다가 단련까지 된 달변이지만 한주에게는 꼭 이렇게 말꼬리도 못 잡게 당한다. 식당 문에 들어서자 어지러운 신발들 속에서 신발을 벗어 챙기면서도 뭐라고 반격을 해야 할까,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자 치에의 얼굴 혈관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한주는 그런 치에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발이야 누가 집어가든 어쩌든이라는 듯이 휙 벗어 놓고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치에로서는 그런 감정의 상태를 한주에게 들키기 싫기도 해서 신발을 벗어서 한주 것까지 조용히 신발장에 올려놓으며  잠시 시간을 갖는다. 

길매식당의 메뉴는 단순한 편이다. 막국수와 잣두부요리 몇 가지, 그리고 감자전. 그 흔한 편육(수육)도 없다. 막국수 두 그릇에 잣두부구이를 하나 시켰다. 바쁘지만 메뉴가 단순하니 나오기는 금방이다. 

“확실히 한주는 야성이 있어. 얌전하고 정확한 일본술과는 달라.” 
“그 야성을 길들이겠다는 게 현대의 식문화지. 선진국 일본이 일찌감치 적응해간 길이고.” 

“그 뭔가 일본 비하 같은 말투를 좀 그만 두면 훨씬 생산적인 얘기를 하겠는데 말이지이…” 

치에가 말을 길게 늘이며 짜증 섞어 말을 하니 한주도 정신이 좀 든다. 사실 오겠다고 한 것은 치에지만, 일이 잘 진행되어서 치에가 한주 유통을 하겠다고 하면, 아니 그렇게 되도록 못해서 아쉬운 것은 한주 자신이고 한주 업계 전체이다. 습관적으로 빈정대는 한주의 버릇은 이제까지도 두고두고 여러 가지로 손해를 봐 왔다. 남 빈정대고 비꼬는 말재주는 천성이라기엔 난이도도 높은 스킬인데 어떻게 이렇게 패시브로 시전이 되는지 한주 자신도 모르겠다. 이럴 땐 닥치고 꼬리를 내리는 게 그나마 수습책이다. 

“아, 그래. 생산적인 얘기… 그래 어떤 생산적인 얘기?” 

“일단 발견한 것은, 한주의 유통기한이야. 일본도 청주든 탁주든 생주를 만들고 유통하지만 법적으로 유통기한 같은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아. 술이란 원래 저장성이 나쁘지 않은데 특히나 현대와 같이 냉장유통이 발달된 사회에서 유통기한이란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품질이 떨어지기 전에 소비를 못하면 술을 판매하는 사람의 손해니까 그런 건 굳이 법으로 정해두지 않아도 알아서들 관리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무도 생선회의 유통기한 같은 것을 법으로 정하지는 않잖아? 생선회도 숙성회라는 것도 있고 말야.” 

“휴, 그러게 말이야. 30일이라느니 90일이라느니, 선심 쓰듯이 반년이라느니, 그걸 또 무슨 실험을 해서 국세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데, 사실 프리미엄급의 한주가 유통기한이 30일이라니, 그건 영아살해라고. 게다가 병입 후의 날짜만 따지지 그 이전에 숙성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사실 체크할 방법도 없지. 그러니까 자체로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법인 거야.” 

치에의 표정이 어딘가 단호해졌다.

“한주를 취급한다면 그게 가장 큰 문제야. 콜드체인 유통은 고급 와인이나 식품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도 없고 생각만큼 비용도 많이 들진 않아. 우리 월드 니혼슈도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에 나마자케(生酒)를 납품하고 있어. 방법은 이미 있다는 말이지. 와인이나 사케 같은 경우는 일단 소매업장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알아서들 관리를 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고 가치가 생기는데, 한주의 경우는 스스로 그런 가능성을 막아버리니까 그게 문제군. 일본이나 중국이라면 모르겠지만 북미의 경우 컨테이너선으로 실어가고 거기서 내륙운송까지 하면 빨라도 보름, 길면 한 달 이상 소요될 수도 있거든. 유럽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리고 통관도 더 까다롭지. 특송을 하지 않는다면 선박 운송 기간만 한 달 정도가 걸려. 그런데 유통기한이 1개월이라느니 3개월이라느니, 이래서는 유통업자의 입장에서는 다룰 수가 없어, 절대로.” 

“주세법 문제를 따지자면 그것만이 아니지. 어휴, 날도 더운데 그냥 앉아서 열불이 날 지경이다. 어쨌든 그게 가장 눈에 들어오는 단점이라 이거지.” 

“응. 그런데 정말로 몇 달이 지나면 한주는 그렇게 변질되고 맛이 없어지는 거야?” 

“거기에 대한 대답은 있다가 숙소에 돌아가서 해줄게. 일단 우리 밥을 먹자.” 

면을 직접 누르고, 회전율 좋고, 적은 메뉴에 집중하고. 길매식당 같은 곳은 막국수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잣두부구이는 두툼한 두부를 잣을 올려 들기름에 부친 것인데, 일반 두부와 비교해서 기름이 베어든 두부의 고소함이 남다르다. 새송이 버섯을 동전같이 썰어주는데, 이것도 들기름을 흠뻑 머금으면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고소함이 삼겹살 기름에 구워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엄청 좋다. 나도 소바를 좋아하지만 이 막국수도 매력이 있네. 특히 동치미가 들어간 이 육수, 정말 매력 있어.” 

“강원도는 막국수의 메카라고 할 수 있지. 가기 전에 한 군데쯤 더 들러보도록 할까?” 

“아, 막국수란 건 매일 먹어도 좋을 것 같아. 아 행복해지는 음식이야. 아, 그리고 이 두부, 이 고소한 맛도 잊지 못할 것 같아.” 

“매일 막국수를 먹는 건 내가 질려버릴 것 같긴 하지만, 원한다면 치에가 머무는 동안은 그렇게 해줄게. 자 이제 다음 행선지는 두루라는 양조장이야.” 

“그래 가자!” 


용어설명 : 영아살해


고급 와인의 경우 가장 좋은 시점은 최고 수십 년 정도 지나야 온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시점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직 덜 숙성된 미숙한 와인을 개봉하는 경우를 와인동호인들끼리 일컫는 용어이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어감만큼 끔찍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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