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가 핸드폰에 시선을 맞추고 한참 메신져를 하자 한영은 뭔가 무료해졌다. 어차피 술도 다 마셔가겠다,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한주의 핸드폰이 메신져 알림소리로 계속 징징 울리고 있다. 

치에가 속사포 같이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스토리다.

“나 다음주에 한국에 가.” 

“무슨 일로?” 

“그야 비지니스지. 서울에서 니혼슈 신제품 시음회가 있어. 수출업체니까, 가서 도와드려야지. 그것도 그렇지만 저번에 마셔본 한주들도 그렇고, 궁금해졌어. 시간 돼?” 

“당분간 서울 나갈 일이 없는데. 홍천에 온다면야.” 

“홍천에 갈께. 좋은 술들 좀 소개해 줘. 자세한 건 다음주 초에 얘기해.” 

“그래, 홍천에 오면 잘 모시도록 하지. 다시 연락해.” 

한주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한영이 식탁을 깔끔하게 치워 둔 후였다. 

“누구에요?” 

“내가 말했던 치에. 월드니혼슈라는 사케수출회사 하는 친구. 한국에 오겠데. 홍천으로 오라고 했어. 우리나라는 수출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해외에 거래처가 있는 수출업체가 없으니, 치에의 회사와 합작을 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해.” 

“아, 그러네요. 사케 회사의 인프라를 이용하는 것도 어쩌면 방법일지도 모르겠어요.” 

한주가 자기 돈을 써가면서 해외에서 시음회를 하고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한주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 다시 말해 시장성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마셔보는 생주의 매력은 분명 강력한 매력이 되었다. 문제는 그 생주라는 특성상 유통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해외까지 냉장해서 유통한다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난이도가 높은 유통 방식이기도 하다. 한주의 출고가는 와인이나 사케에 비해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이렇게 냉장유통을 하게 되면 비용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고급 사케나 와인은 전세계적으로 냉장유통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 이 어려움은 극복 못 할 것은 아니다. 치에와 월드니혼슈사의 노하우를 빌리고 싶은 부분인 것이다. 이번에 니가타에서도 느낀 거지만 술은 한주가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유통이나 마케팅, 그 외에 수 많은 부분의 역량의 합은 니혼슈에 훨씬 못 미친다. 바로 그 역량의 합이 인프라의 차이라는 것이다. 

“아 글쿤요. 궁금하네요, 그 분. 근데 형 좋아하는 거 아녜요? 홍천까지 직접 찾아온다니.” 

“……” 

한주는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치에가 한주를 좋아하긴 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한주도 물론 치에에게 호감을 갖고 있긴 한데, 그게 같은 술덕후이자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가지는 존중과 연대의 감정인지 이성간의 감정인지는 한주도 잘 모르겠다.

남녀관계는 불편하고 위험해서, 그런 것이 아니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주지만, 그렇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간단치는 않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한영이 물어본 것은 한주가 아니라 치에의 감정이고, 한주로서야 치에의 마음속을 알 수 없으니 대답이 궁할 밖에.  

“이제 자자.” 

뜬금 없이, 혹은 시와 때에 맞게 한주가 툭 던졌다. 딱 잘 시간이고 잘 상황이긴 하다. 그렇게 뭔가 뜬금 없는 듯 해도 본질을 확 뚫어 상황을 정리하는 게 한주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내일은 또 아침부터 농업기술센터에 약속이 잡혀 있다. 한주가 하는 일은 한주 산업의 인프라를 만드는 일. 좋은 술은 탄탄한 인프라가 갖춰져야 나오는 것이다. 


용어설명 : 냉장유통


살균주가 대부분인 와인과 사케의 경우는 상온에서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지만 일부의 고급 제품은 전세계에 냉장유통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격이 많이 비싸지지만 고급주는 이런 유통비용을 감당할 만큼 고가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일본 사케의 생주가 유통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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