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란 어렵다. 영화나 소설 속 상황이 아닌 이상 대부분 그렇다. 간편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라면, 빵 등의 간편식은 혼자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좋다. 하지만 건강한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간편식은 식품 첨가물이 많이 들어갔거나, 영양상 균형이 맞지 않다. 보관과 조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어떤 음식이 먹기 간편하면서도 건강하기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만큼 쉽지 않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음식이 있다. 바로 김밥이다. 김밥을 사면 둘둘 말아놓은 포장만 벗기면 걸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다. 거의 빵만큼 먹기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도 김밥 한 줄 안에는 밥, 야채, 단백질 등 여러 가지 영양소가 조화롭게 들어있다. 물론 직접 만들려면 어렵겠지만, 그건 라면과 빵도 마찬가지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자.

이런 특별한 매력 덕에, 김밥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나들이 갈 때, 시간이 없어 간단히 식사를 때워야 할 때 곧잘 김밥이 떠오른다. 이렇게 익숙한 김밥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김밥은 여러 가지로 아리송한 존재다. 외국에선 간혹 일식의 롤이나 마끼로 오인받는데, 그렇다고 우리 음식이라고 주장하기엔 전통 한식은 아니다.

오늘날 김밥의 이미지도 계속 바뀌어 왔다. 엄마가 정성스레 싸주던 음식이기도, 분식집에서 저렴하게 사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대체 김밥의 정체가 뭘까? 이번 기회에 알아보고자 한다. 

▲ 위의 매콤제육김밥

김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즐겨 먹었던 식재료다. 최초로 양식이 이루어진 식재료도 김이다. 늦어도 조선 중기 때부터는 양식을 했다. (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솜대리의 한식탐험 시즌2 '식품업계의 반도체, 김'편 참조) 대개는 말린 김 그대로 반찬으로 먹었지만, 김을 밥에 싼 음식도 있었다. 바로 정월대보름에 먹었던 김쌈이다. 복쌈, 복과 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오곡밥을 김이나 나물 잎사귀에 싸 먹던 음식으로, 전통 음식 중 김밥과 가장 비슷한 음식이다. 하지만 대개 속재료가 쓰이지 않았고, 한 번에 만 후 자르는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김밥과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  

속재료를 함께 넣고 김에 싸 먹게 된 것은 일본 마끼의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 초밥의 일종인 마끼는 회나 박고지(말린 박나물) 등을 밥에 넣고 김에 말아 싼 것이다. 밥과 재료를 함께 김에 말았다는 점, 밥에 따로 간을 했다는 점이 김밥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마끼가 김밥의 원조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차이점도 많다. 각종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김밥과 달리 마끼는 주로 회를 사용하며, 여러 가지 속재료보다는 한 가지 속재료를 쓰는 경우가 많으며, 참기름이 아닌 식초로 밥의 조미를 한다. 일제시대 직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밥에 식초로 조미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일부에서만 사용된 방법으로 보인다.

▲ 마끼 중에도 드물게 여러 재료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속재료나 밥은 조미 방법은 다르다.

김밥의 원조가 김쌈이냐 마끼냐를 두고 논란도 있지만 김쌈도 마끼도 지금의 김밥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 음식이 김밥의 원조라기보단 원래 있던 김쌈이 마끼의 영향을 받아 김밥이라는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김밥은 소풍 음식의 대명사였다. 소풍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김밥을 싸던 기억이 난다. 그럼 나는 얼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옆구리 터진 김밥이나 김밥 꼬다리를 집어 먹곤 했다. 그렇게 먹다가 모자라면 예쁜 김밥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그즈음이면 아빠와 동생도 가세해서, 엄마가 김밥은 아무리 많이 싸도 모자라겠다며 걱정하곤 했다. 아침에 김밥을 실컷 먹고도 소풍에 가면 친구들과 서로의 도시락을 들춰봤다. 같은 김밥이라도 집마다 맛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비교하며 먹는 재미가 있었다. 김밥은 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재료를 일일이 양념하고 볶고 터지지 않게 마는데 정성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풍 때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다.

이러한 김밥의 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90년대 후반, 김밥천국을 필두로 한 저가 김밥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부터다. 김밥은 집에서 하기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많이 만들면 많이 만들수록 효율이 높아지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음식이다.  재료를 미리 준비해놓기만 하면 손님이 왔을 때는 말아서 썰기만 하면 완성이다. 1995년 생긴 김밥천국은 이러한 효율화를 통해 1,000원짜리 김밥을 내놓았고, IMF를 전후로 전국적으로 체인을 늘려나갔다. 자연히 비슷한 김밥 프랜차이즈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싼 가격에 쉽게 김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특별한 날 먹던 정성 가득한 음식이었던 김밥의 위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풍날 조차 집에서 김밥을 싸기보단 김밥천국에서, 대신 1,000원 보단 좀 더 비싼 참치김밥 등을 사가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2000년대 IMF를 이겨내고 음식업계에선 웰빙 열풍이 불면서 김밥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바로 프리미엄 김밥의 등장이다. 다양한 영양소를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김밥은 웰빙 열풍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기존의 저렴한 김밥에 비해 속재료를 푸짐하게 넣거나, 아예 고급 재료를 쓰는 프리미엄 김밥집들이 속속 생겨났다. 이러한 김밥집들이 차례로 인기를 끌면서 한 때 저렴한 음식이 되었던 김밥은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등 다시 한번 이미지 전환을 하게 되었다.

▲ 프리미엄 김밥은 크림치즈, 랍스터 같은 기존에 안 쓰던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김밥의 저변도 넓혔다. (사진출처: 바르다 김선생 홈페이지)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에서 저렴한 간편식으로, 또다시 건강식으로. 최근 30년간 김밥은 극에서 극으로 수차례 이미지 변신을 했다. 동시대에 이만큼 빠르고 다양하게 이미지 변신한 음식도 드물 것이다. 이런 변화를 한눈에 보자니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김밥은 시대의 조류를 그 어떤 음식보다 잘 탔을 뿐이다. 오히려 김밥의 급격한 변화는 김밥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운 음식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도 김밥은 깜짝 놀랄 새로운 모습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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