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와인을 위해 재배하는 포도는 꿀벌이 필요하지 않다.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를 비롯한 대부분의 포도나무는 자웅 동체이며, 개화할 때 꽃부리(花冠)가 떨어져 수술이 암술에서 멀어질 때 신속하게 꽃밥이 터져 다량의 꽃가루가 날아서 화기를 덮게 된다. 즉 자동으로 제 꽃의 가루받이(自家受精)가 일어난다.

그런데도 포도재배 농민들이나 와인메이커들은 꿀벌을 끌어들이는 포도원을 설계하는 데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꿀벌 개체 수가 감소함에 따라 포도재배 농민들은 꿀벌을 포도밭으로 데려오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피복작물의 성공 여부가 전적으로 꿀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꿀벌이 많아야 피복작물이 잘 자라고, 따라서 포도밭이 더욱 건강하고 수분을 보유할 수 있는 토양을 유지시킨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꿀벌이 꽃부리(花冠)를 제거함으로써 자가수정을 효율을 높여 포도 열매가 더 많이 그리고 충실하게 달리도록 돕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피노 누아에서 효과를 보았으며, 화관이 잘 제거되지 않은 포도로 인해 기형적인 포도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꿀벌은 유익한 곤충을 끌어들이고 해로운 곤충을 제거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자가수정을 하는 포도에 꿀벌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요즈음 포도밭은 토종 피복작물을 선택하여 생물의 다양성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꿀벌과 곤충에게 영양을 제공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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