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반,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은 와인이었다. 산업혁명 동안 귀족층이 몰락하고 새로운 두 그룹의 계층이 생겨나는데, 소규모 사업가, 의사, 과학자 등인 중산층과 공장 소유자와 같은 부유한 기업가인 상류층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중산층과 상류층은 유럽 와인의 새로운 소비층을 창출하게 된다. 동시에 국제적인 무역 루트는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계속 성장하는 시장과 와인을 연결해 주었다. 이들은 옷 입는 방법, 정찬 파티를 하는 방법, 사교 모임에 참석하는 방법 등에 대한 에티켓 규칙을 만들고, 여기에 와인은 중산층의 풍요로운 생활에 중심이 된다. 이로 인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전역에서 포도나무를 더 심고 많이 재배하게 된다.
산업혁명의 엄청난 변화의 시기에 철도와 증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세계 시장에 상품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반면, 필록세라를 비롯한 병충해도 신속하게 대서양을 건너와 유럽의 포도밭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맨 먼저 건너 온 것은 ‘흰가루병(Powdery Mildew)’이었다. 포도의 녹색 부분을 공격하여 흰 가루와 같이 퍼진다. 1845년 영국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프랑스에는 1847년에 들어왔다. 유럽의 포도밭을 파괴한 첫 번째 병충해이다. 이로 인해 1854년 빈티지는 가장 생산량이 적은 해로 기록되었다.
두 번째 잘 알려진 ‘필록세라’이다. 1863년 프랑스에서 발견되어 1800년대 말까지 수확량의 70% 이상을 사라지게 만든 대재앙이었다. 필록세라가 대서양을 건너오게 된 계기는 흰가루병 때문이다. 미국종 포도는 흰가루병에 저항력이 있어서 이때부터 미국종 대목이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필록세라가 묻어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이다. 이어서 세 번째로 ‘노균병(露菌病, Downy Mildew)’이 등장(1882년 이전)하는데, 필록세라에 대한 해결책(접목 등)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재앙이 닥친 것이다. 필록세라의 해결책으로 북미에서 대목을 수입할 때 노균병이 들어 온 것이다. 네 번째로 들어온 것은 '검은무늬병(Black rot)'으로 이 역시 미국종 대목에 묻어 온 것으로 1885년에야 유럽에서 인식을 하게 된다.
이들 병충해 때문에 19세기 후반 유럽의 포도밭은 완전히 파괴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보르도액(Bordeaux mixture, 1883)’을 비롯한 농약이 개발되었고, AOC를 비롯한 프랑스에서 와인 관련법이 탄생하게 된다. 고된 시련이 한 차원 높은 발전의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이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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