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나 데이 칠리에지 와이너리가 경작하는 해발 550에서 570 미터 구간은 원래 자갈밭이었다. 백악기에 형성된 대리석에서 기원한 것으로 베네토 현지인은 자갈을 뜻하는 방언을 빌려 페라타라라 부른다.
콜리나 데이 칠리에지 와이너리가 경작하는 해발 550에서 570 미터 구간은 원래 자갈밭이었다. 백악기에 형성된 대리석에서 기원한 것으로 베네토 현지인은 자갈을 뜻하는 방언을 빌려 페라타라라 부른다.

레드 와인에 반한 사람의 코가 맡는 방향족에 체리향이 꼭 들어있다. 코에 훅 끼치는 시큼 달큼함과 비강을 파고드는 농밀한 체리향은 감정 제어력을 해체시켜 감탄사를 연방 터트리게 만든다. 체리는 과일자체로서 삶의 환희와 풍만함에 비유된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속담의 ‘체리 바구니’를 들 수 있다. 바구니를 소복하게 채 운 체리는 카르페디엠적 삶에 충실할 것을 권유한다. 또한, 최선을 다해 얻은 성과를 체리 픽(cherry-pick)이라 한다. 하지만 체리 픽에 접미사 er를 붙이면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체리 피커는 시류에 편승해서 이익을 취하는 기회주의자를 빗댈 때 쓰인다. 아마, 이 표현을 지어 낸 사람은 체리의 매끈한 껍질이 발하는 광을 본 순간 사기꾼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가지가 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체리는 다산과 직결되며 탐스럽게 잘 익은 커피는 체리커피라 한다. 체리를 가장 빛나게 하는 찬사는 이탈리아제다. 케이크 위의 체리 즉, 화려하게 치장한 케이크 위에 놓인 한 개의 체리다. 체리 한 개로 케이크의 장식미가 완성되므로 이게 바로 마법의 체리가 아니고 뭔가!

체리는 포도와 닮았다. 사람의 손이 가는 만큼 맛과 품질로 보답한다. 우선 와인처럼 주요 산지가 북반구와 남반구에 걸친 와인벨트에 속해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북미, 칠레, 남아공, 뉴질랜드를 아우른다. 나무 모양을 처음부터 잘 잡아 줘야 좋은 열매를 맺고 묘목 선택이 미래의 맛과 풍미를 좌우한다. 건조한 기후와 물 빠짐이 좋은 사질 양토를 선호하는 기질도 타고났다. 토심이 깊어야 나무가 축축한 땅 속까지 뿌리를 뻗칠 수 있어 건기와 습기에도 초연할 수 있다. 포도와 체리는 개화시기도 비슷하다. 이 시기는 꽃샘추위가 빈번하고 만개한 꽃 봉오리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수 있어 농부의 애간장을 태운다.

아마로네의 원시 자연 - 발판테나 계곡

베네토주 베로나 출신으로 금융업계 큰 손인 자놀리Gianolli 부자는 비슷한 유년기 추억을 갖고 있다. 여름이면 발판테나 계곡에 펼쳐진 에르빈 체리 들판을 뛰어다녔다. 성년이 된 아버지가 성공을 거두었을 무렵 발판테나 계곡의 농토는 방치화가 가속되고 있었다. 1960년대에 이탈리아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던 주범, 이농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땅값은 형편없이 낮았기에 금싸라기 땅 매입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버지는 버려진 농토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곳 전통에 따라 체리나무를 심었다. 아버지와 함께 체리나무를 돌보던 아들 마씨모가 성년에 이르자 그의 눈에 체리 숲의 다른 면이 비췄다. 백악기의 바다가 쌓아놓은 석회석과 자갈 퇴적층, 해발고도가 5백 미터가 넘은 고원의 전후 사방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체리농사에나 적합하다고 알려졌던 체리 숲은 와인 테루아의 엄청난 잠재력을 뿜어내기 직전이었다. 때마침, 에르빈 언덕이 속한 발판테나 계곡 일대가 아마로네에 적합한 테루아로 판명이 나면서 생산자의 골드러시가 일었다.

마씨모는 체리밭의 포도밭 전환을 착수했고 이와 동시에 와이너리를 출범시켰다. 수종 전환 작업은 녹녹지 않았는데 2010년에 착수한 작업이 33헥타르의 크기로 늘어나는데 13년이나 걸렸다. 비록 체리밭의 자취는 모습을 감췄으나 그의 본능에 박혀있던 소년기 추억까지 지워버릴 수 없었다. 와이너리 이름을 체리 언덕이란 뜻의 ‘콜리나 데이 칠리에지Collina Dei Ciliegi’로 지었고 그의 생애 첫 아마로네는 체리나무란 뜻의 ‘칠리에조 CILIEGIO’라 불렀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부분이 발판테나 계곡이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부분이 발판테나 계곡이다.

여기서 발판테나 계곡을 잠시 둘러보기로 하자. 베로나 북쪽은 발폴리첼라 언덕이 빙 에워싸고 있고 그 언덕 너머로 몬티 레씨니 알프스 연봉이 이어진다. 발폴리첼라 언덕 동쪽 끝자락에 가르다 호수가 자리하고 반대편에 소아베 지역이 있다. 호수와 소아베 지역사이에 자리 잡은 발폴리첼라 언덕은 13개의 계곡이 남북을 관통한다. 알프스에서 발원한 강이 13개의 줄기로 갈라지면서 땅을 깊이 파 놓았기 때문인데 정중앙에 발판테나 계곡이 위치한다. 계곡 폭은 깔때기 모양처럼 비좁아 이곳을 통과한 바람은 가속을 얻게 되어 풍속의 위력이 매서운 것으로 유명하다.

베로나를 뒤로 하고 급경사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콜리나 데이 칠리에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450미터 지점으로 여기서부터 7백 미터까지 와이너리 소유다.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체리 언덕보다는 폭풍의 언덕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 누구도 개간한 적이 없는 처녀땅이기에 토질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땅을 파면 유례가 없는 토양층이 불거져 나와 포도를 가꿔봐야 재배 적합성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프랑스의 토질학자를 초청해서 토질검사를 실시했다. 5 헥타를 정밀 검사한 결과 유례가 없는 토양층이 해발 550~700미터 구간에서 다섯 군데나 발견됐다. 원시의 자연을 표출하기 위해 마씨모는 와인 규정을 배제한 수퍼 발판테나 라인을 내놓기로 했다. 발판테나 계곡의 수퍼 투스칸이라고 할까! 수퍼발판테나 라인은 장기간의 토지와 클론 매칭 작업을 마친 상태로 2년 내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페라타라 밭에 듬성듬성 섞여 있는 자갈들. 여기서 재배한 포도로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페라타라를 만든다.
페라타라 밭에 듬성듬성 섞여 있는 자갈들. 여기서 재배한 포도로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페라타라를 만든다.

콜리나 데이 칠리에지란 케이크에 얹혀진 체리

콜리나 데이 칠리에지란 케이크에 얹혀질 체리는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에 돌아간다. 원시 바다의 조개와 산호 사채가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형성된 석회암 층은 코르비나, 코르비노네, 론디넬라의 완숙을 촉진한다. 품질기준에 합격한 열매는 자연 건조실로 보내지고 이 안에서 원래 무게의 40퍼센트가 줄어들 때까지 건조(아파시멘토) 상태로 놔둔다. 보통 100일이 걸리는데 건조된 포도는 재 선별과정을 통과한 후에 알코올 발효 탱크로 보내진다. 15~20도로 맞춰진 탱크에서 하루에 한 번 주기로 30일간 주스와 부유물을 섞어주면서 침용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후 225리터 바리크와 5백 리터 오크에 나누어 36개월 숙성했고 8개월의 병 숙성을 더해 세련된 감성을 얻는다.

수석 와인메이커 파올로 포세나토는 양조가의 손길이 닿는 횟수가 적을수록 아마로네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믿는다. 토양과 품종의 케미가 잘 맞으면 포도는 스스로 건강하고 아로마가 깃든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포도는 자력으로 포도를 알코올로 변화시키는 유전정보를 갖고 태어난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Docg 칠리에조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Docg 칠리에조

아마로네 델라 발포리첼라 Docg 칠리에조 Amarone Della Valpolicella Docg Ciliegio 2018

칠리에조는 아마로네지만 아마로네 틀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와인을 무겁게 만드는 고농도의 알코올, 오크향과 결합된 페퍼, 파프리카 계열의 향기가 천연 아로마를 압도하지 않는다. 칠리에조가 벤치마킹 하는 아마로네는 향기와 맛의 일관성에 있다. 날씨변화에 춤추지 않는 향기의 강도와 폭, 세월에 변색되지 않는 우아함이다. 빈티지가 어릴수록 체리, 라즈베리, 딸기, 크랜베리, 장미, 라벤더, 페퍼, 파프리카등의 향기 표현에 충실하다. 칠리에조 2018은 품종간의 특성이 잘 안배되있다. 포도 아로마와 흑연, 감초, 계피향이 골고루 느껴진다. 산도는 청량감이 뛰어나고 입안에서 과일향이 도드라진다. 타닌은 천천히 미각 세포를 깨우면서 공간을 밀도감 있게 채운다. 그러면서도 입안을 매끄럽게 보듬는 질감을 선사한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Docg 칠리에조 Amarone Della Valpolicella Docg Ciliegio 2015

마치 향기가 터뷸런스를 만난 것 같다. 타바코, 버섯 , 정향이 향기의 주도권을 잡는 듯하나 순식간에 사라지고 밝은 느낌의 체리, 장미, 바이올렛, 자두, 레드 오렌지가 등장한다. 2015년은 더운 빈티지였으나 산도는 각을 세우고 있으며 타닌은 혀를 중심으로 조여오다가 주변으로 흩어진다. 타닌의 울림은 진중하게 적당한 몰입도를 유지하면서 맛 신경을 팽팽하게 조인다. 6그램의 잔당이 타닌에 실크 감촉을 불어넣었다. 유질감이 혀를 매끈하게 감싸주어 이제 막 숙성기에 접어든 타닌의 위력을 보여준다. 여운에 엔초비, 바다 짠내음이 배어있는데 이는 밭과 백악기 석회층과 연관된 향기로 보인다.

자갈의 섬세함이 발현된 페라타라 발폴리첼라

550에서 570 미터 구간은 핑크빛과 회색빛 자갈 천지다. 백악기에 기원하는 대리석이 부서진 자갈들이 듬성듬성 섞여있고 상층에 서늘한 공기가 머문다. 밭은 성분 분석을 거친 후에 세 개의 구획으로 나눴다. 각 구획 별로 자갈을 뜻하는 방언을 골라 호칭을 붙였다. 페라타라, 포미가, 마시온이 그러하며 밭 별로 고유성을 통합시켜 발폴리첼라 라인업을 구성했다. 이중 페라타라 발폴리첼라는 수페리오레 급으로 별명이 아파시멘토를 생략한 아마로네다. 셀러 숙성기간을 3년 지냈는데 만일 1년 더 추가하면 아마로네 자격을 얻는다.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Doc 페라타라 2019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Doc 페라타라 2019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Doc 페라타라 Valpolicella Superiore Doc Peratara 2019

열흘간 저온에서 발효와 침용을 마친 와인을 대형 보테, 5백 리터 오크, 225리터 바리크, 암포라에 나누어 2년 숙성한 후 병 숙성 1년을 더 해 완성했다. 투명한 루비색은 잔 뒤의 배경을 선명하게 비춘다. 파프리카, 라즈베리, 체리, 바이올렛, 장미, 계피 향에 이어 부싯돌, 흑연, 삼나무 향기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깔끔한 산도와 미네랄의 쌉쌀한 풍미가 혀를 부드럽게 적신다. 조밀한 타닌은 단단한 구조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매끄러운 질감과 어우러져 밸런스가 돋보인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셀러에 들여놓다

마씨모 자놀리는 와이너리 오너이자 동시에 밀라노 소재 금융업체를 다수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경력은 자연스럽게 그의 와인과 밀라노 예술을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했다. 그의 셀러를 작은 전시장으로 격상시킨 거인 조각을 말한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완성기간만 6세기가 걸린 역대급 문화재로 관리와 보수, 관리 및 유지에 막대한 자금이 든다. 이 막중한 책임은 630년 동안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 공작이 설립한 밀라노 두오모 재단(Veneranda Fabbrica Del Duomo Di Milano)이 맡아하고 있다. 재단은 내부사정상 관리가 어려운 두오모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거인 조각 96점을 분양하기로 했는데 마씨모는 29번째 조각을 입양하기로 했다. 입양된 조각은 셀러로 이송되었으며 조각 출현으로 오크실 분위기가 훨씬 고풍스러워졌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거기다 방문객들이 숙성실안에서 세기적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어 일거양득 효과를 얻고 있다.

마씨모 자놀리가 입양한 거인 조각. 원래는 밀라노 두오모 외관을 장식하던 조각 중 하나였다.
마씨모 자놀리가 입양한 거인 조각. 원래는 밀라노 두오모 외관을 장식하던 조각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성당 보수와 복원작업을 위한 기금모집에 와인을 기증하기도 했다. 중세시대 교회는 기증받은 와인을 팔아 비용을 마련하는 경우가 흔했다. 첫 물량으로 Vino Rosso Del Duomo, Spumante Brut Duomo Milano 등 1만 8천 병을 기증했다. 라벨디자인 전문가인 마리오 디 파올로가 라벨을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판매를 개시한 후 3개월 만에 완판 되어 9만 5천 유로의 수익금을 올렸다. 현재 마씨모는 2차 기증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두오모 와인은 두오모 직영 숍, 밀라노 리나센테 백화점( duomodimilano.it)및 와이너리 홈페이지 (Lacollinadeiciliegi.it) 숍을 통해 구매 가능하다.

엉 프리뫼 클럽이 안내하는 아마로네 재테크

엉 프리뫼 클럽 회원이 구입한 아마로네는 셀러 내의 전용 카브에 보관된다. 각 칸마다 회원의 성명과 구매한 아마로네를 저장하고 있다.
엉 프리뫼 클럽 회원이 구입한 아마로네는 셀러 내의 전용 카브에 보관된다. 각 칸마다 회원의 성명과 구매한 아마로네를 저장하고 있다.

와인이 재테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씨모가 도입한 엉 프리뫼 클럽을 두고 하는 말이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클럽에 가입하면 셀러 안에서 한참 오크 숙성 중인 아마로네 와인을 선 매입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일단 매입한 와인이 숙성을 마치면 자동으로 병입, 병숙성 프로세스로 넘어간다. 지금까지 클럽회원이 구매한 아마로네는 1만 4천5백 리터 즉, 225리터짜리 바리크로 전환하면 69통에 해당한다.

일반병, 매그넘 병에 담긴 아마로네는 셀러 내 엉 프리뫼 카브에 보관된다. 클럽 이용 방식은 개인 셀러처럼 자유롭다. 와인 개봉과 숙성 기간은 회원이 정하고 만일 수익을 내고 싶으면 와이너리가 구매자도 주선한다. 어찌 보면 프랑스의 네고시앙과 흡사하나 네고시앙은 도제식 생태계에서 경력을 쌓은 와인 전문 거래상이 주도하는 살벌한 세계다. 그러나 엉 프리뫼 클럽은 직업, 경력 장벽을 허문 소프트한 재테크다. 가입자수가 60명인 회원의 면모에서도 드러난다. 회사원, 기업인, 자산관리자, 저널리스트, 법조인, 와인러버가 주를 이룬다. 클럽이 출범한 이래 오크통 째로 팔린 양이 1만 4천5백 리터로 병 수로 환산하면 약 1만 9천 병에 해당한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
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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