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롤랑 (사진=www.rollandcollection.com)
미셸 롤랑 (사진=www.rollandcollection.com)

프랑스 보르도의 양조학자로 그가 전 세계 와인업계에 미친 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3개국 이상에서 수백 명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독특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면서 전 세계 와인양조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미셸 롤랑은 프랑스 생테밀리옹과 포므롤이 있는 리부른(Libourne)의 와인 양조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포므롤에 있는 가족 소유의 ‘샤토 르 봉 파스퇴르(Ch. Le Bon Pasteur)’에서 자라며 포도 재배와 양조에 깊이 빠져들었고, 가족의 영향 속에서 와인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 롤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아버지의 권유로 보르도에 있는 투르 블랑쉬(Tour Blanche) 포도재배 및 양조학교에 들어갔고, 여기서 뛰어난 학업 성적을 거두어 보르도 양조연구소 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이 보르도 양조연구소에서 '피에르 쉬드로(Pierre Sudraud)', '파스칼 리베로-가용(Pascal Ribéreau-Gayon)', '장 리베로-가용(Jean Ribéreau-Gayon)', 에밀 페이노(Émile Peynaud) 등 저명한 양조학자들의 지도를 받았다. 이 멘토들은 롤랑의 양조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에게 “현대 양조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1972년, 미셸 롤랑은 보르도 양조연구소를 졸업하고, 1973년에는 그의 아내 다니 롤랑(Dany Rolland)과 함께 리부른에 있는 양조연구소를 인수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연구소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들은 테이스팅 룸을 비롯한 연구소를 확장시켰다. 2006년까지 롤랑의 연구소는 매년 프랑스 내 약 800개 와이너리의 샘플을 분석하는 8명의 정규 기술자를 두었다. 이 연구소는 롤랑의 딸인 스테파니(Stéphanie)와 마리(Marie)와 함께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전문기술의 허브로 남아있다.

롤랑의 컨설팅은 트롤롱 몽도(Ch. Troplong Mondot), 앙젤뤼스(Ch. Angélus), 보세주르베코(Ch. Beau-Séjour-Bécot) 등 보르도의 권위 있는 샤토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로랑은 ‘샤토 카농(Château Canon)’과 ‘샤토 라 가플리에르(Château La Gaffelière)’의 오너와 와인 스타일 문제로 다투면서 이들을 잃기도 했다. 20년 후에 이들은 다시 고객으로 돌아오지만, 이러한 경험은 롤랑의 접근 방식을 더욱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약 80개의 와인 생산지에서 셀러 마스터, 양조학자 또는 컨설턴트 직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윽고 미셸 롤랑의 영향력은 보르도를 훨씬 넘어 전 세계 와인업계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현대 와인양조 기술을 전 세계 와인업계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롤랑의 전문성은 국경을 넘어, 캘리포니아와 전 세계의 와인양조 방식을 형성해왔다. 롤랑 스타일의 와인은 과일 풍미가 강하고 오크 향이 진한 것으로, 이는 로버트 파커의 취향과도 일치한다. 그는 영 와인을 구매하여 잘 숙성시켜,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와인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여, 사람들에게 영 와인을 저렴하게 구입하여 기다렸다가 마시기를 권하기도 한다. 미셸 롤랑은 2004년 다큐멘터리 ‘몬도비노(Mondovino)’를 통해 와인업계에서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롤랑은 와인의 세계화에 주인공으로 묘사되며 고객에게 와인양조 방법을 조언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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