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 수입된 스페인의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와인을 시음하면서 2023년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고, 명품 와인의 정의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됐다. 명품 와인하면 오랜 역사 속에서 인정받은 프랑스 보르도 메독(Medoc) 지방의 5대 샤토, 부르고뉴의 로마네 콩티(Romanee-Conti), 이탈리아의 안토노리(Antinori), 가이야(Gaia), 헝가리 토가이(Tokaj) 등이 전통적인 명가이다. 그러나 와인의 역사는 짧지만, 최근에 혜성(彗星)처럼 떠오른 명품 와인으로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의 사시카이아, 솔라이아, 미국의 스크리밍 이글, 할란 에스테이트 와인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프리오랏(Priorat)의 클로 드 로박 와인이 있다.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와이너리 전경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와이너리 전경

2023년 무더운 여름, 베를린 와인 트로피에 참석하기 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다. 바르셀로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소믈리에는 스페인에 오면 꼭 방문해야 절대로 후회하지 않은 와인 산지가 카탈루냐 남서부 타라고나(Tarragona) 지방의 프리오랏(Priorat)이라면서 프리오랏 클로 드 로박 와인을 추천했다.  스페인 와인 규정(11개 DOQ)의 최고 등급 DOCa를 받은 와인 산지는 오직 2개 지역으로 리오하, 프리오랏이다. 특히 1990년대부터 가르나차(Grenache), 카리냥(Carignan) 품종 외에 메를로, 시라, 카베르네 소비뇽 등으로 양조한 진하고 풍부한 맛의 레드 와인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프리오랏 지역은 레드 와인이 약 93% 생산되고, 화이트 와인이 약 7% 정도 생산된다. 

바르셀로나 여행 일정을 변경하고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려서 프리오랏에 도착하니 험준한 석산의 산세가 마을을 둘러쌓고 있으며, 가파른 언덕에 테라스 형태로 포도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산억에 외롭게 클로 드 로박 와이너리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근처의 포도밭을 가보니 리코레야(Llicorella)로 알려진 특이한 검은 점판암과 석영의 배수가 잘되는 척박한 토양에 작열하는 태양, 아침저녁의 일교차가 큰 기후 등으로 풍부한 미네랄 풍미와 산미의 명품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떼루아를 갖고 있었다.

 12세기에 포볼레다(Poboleda) 수도원 마을의 양치기 소년이 몽상 산(Montsant Mt.)기슭의 계단 모습을 한 바위에서 천사의 발현을 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프리오랏 와인 산지는 예로부터 하늘에서 천사가 오르내린다는 진실을 믿었다. 얼마 후 1194년 카르투지오(Cartusiensis) 수도원이 에스칼라데이(Escaladei: 신의 계단) 위에 세워졌고, 수도사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 프리오랏 와인 산지의 포도 재배 역사와 와인 생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다. 12세기에 에스칼라데이 위에 건축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직접 포도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여 가톨릭교회에 헌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에스칼라데이의 책임자는 7개 마을을 봉건 영주로 이 지역을 통치했으며, 이에 따라 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프리오랏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수도사들은 수 세기 동안 포도밭을 관리하다가 1835년에 스페인 정부는 포도밭을 모두 몰수하여 소작농에게 분배해 주었다. 그러나 1863년에 발생하여 30년간 유럽을 강타한 필록세라, 영국의 산업혁명이 가져온 바르셀로나의 섬유 산업 발전으로 소작농들은 경제적인 부를 찾아서 마을을 떠나가거나 와인 생산에 관심이 없었다. 

오너 양조가인 칼레스 파스트라네(Carles Pastrane)
오너 양조가인 칼레스 파스트라네(Carles Pastrane)

1979년 스페인에서 프리오랏 와인 산지의 이름조차 사라져 갈 위기가 봉착했다. 27세였던 와인 칼럼니스트인 칼레스 파스트라네(Carles Pastrane)와 대학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던 19세 마리오나 자큐(Mariona Jarque)는 우연히 이곳에 취재를 왔다가 과거의 명품 와인이 생산된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미래의 잠재력 하나만을 믿고 와인 양조에 도전했다. 두 사람은 연인관계 발전하였고, 주변에 와인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설득하여 그라탈로프스(Gratallops) 마을로 내려왔다. 칼레스 파스트라네와 친구들은 농부들이 포도 농사로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방치했던 수령이 오래된 포도 품종인 가르나차와 카리냥 포도나무를 찾아 매입했고, 국제 포도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등의 포도 품종도 과감하게 재배했다.

그 후에 그라탈로프스 마을에 코스터스 델 시우라네 와이너리(Costers del Siurana Winery)를 설립하면서 터전을 잡았고, 소위 프리오랏 와인의 재탄생인 프리오랏 르네상스(Priorat Renaissance)를 주도하는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칼레스 파스트라네와 마리오나 자큐는 결혼 후에 부부로서 와인 산업에 영향력을 크게 발휘했다. 1987년에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와이너리로 상호를 바꾸고 본격적으로 와인 생산에 몰입했다. 클로 드 로박 와이너리의 첫 번째 빈티지인 1989년은 1991년에 선보였는데, 와인 평론가들은‘스페인 와인의 폭탄’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스페인에서 어느 양조가도 이런 와인을 만든 적이 없었던 특별한 와인이라는 명성으로 유명세를 탔다. 1993년 클로 드 로박 와인은 월드 와인 가이드(World Wine Guide)가 선정한‘세계 최고의 와인 150선’상위에 랭크됐다. 와인 양조 5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기에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혜성처럼 떠오른 클로 드 로박 와인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칼레스 파스트라네는 와인마케팅도 차별화했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만 소량 공급했고, 특히 미국 고급 레스토랑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고가로 판매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와인 애호가들이 와이너리를 방문하는데, 그중에 50% 이상이 미국인 와인 애호가인 것을 보면 미국 내에서 와인의 명성과 인지도를 알 수 있다.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와이너리의 VIP 전용 테이스팅 룸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와이너리의 VIP 전용 테이스팅 룸

클로 드 로박의 포도밭은 지중해식 내륙성 기후에 년 평균 강수량은 약 400~600mm, 해발 250~500m의 점판암·석영 토양으로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포도나무는 주변 식물과 공존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며, 각 포도 품종은 태양 노출과 고도 측면을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방향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재배한다. 스페인 토착 흑포도 품종(Garnacha, Tempranillo, Cariñena), 프랑스 국제 포도 품종(Cabernet Sauvignon, Syrah, Merlot), 토착 청포도 품종(Macabeo, Xarel·lo, Garnacha Blanca, Muscat)을 자가 재배하고 있다. 50헥타르에 포도나무 수령 60~80년 이상된 엄선된 포도만을 양조에 사용한다. 양조는 5단 설비구조로 무중력 이동 방법, 자연적인 온도에서 양조하며, 매년 달걀흰자로 정제하고, 황토로 만든 지하실에 프렌치 오크통에서 12~15개월간 숙성하고, 동일하게 블렌딩한 후에 10년 동안 지하 저장실에서 숙성이 끝나면 출고하는데, 연간 60,000병 정도가 생산된다. 즉, 클로 드 로박(Clos de l'Obac: 그르나슈 35%, 까베르네 소비뇽 35%, 시라 10%, 카리냥 10%, 메를로 10%), 미세레르(Miserere: 그르나슈 27%, 카베르네 소비뇽 27%, 템프라니요 26%, 카리냥 10%, 메를로 10%), 키리(Kyrie: 그르나슈 블랑 35%, 마카베 30%, 자렐로 30%, 머스캣 5%), 돌크 드 로박(Dolç de l'Obac: 그르나슈 80%, 시라 10%, 카베르네 소비뇽 10%)이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클로 드 로박 와이너리는 산언덕에 우뚝 서 있는 매력적인 건물이다. 운 좋게 오너인 칼레스 파스트라네를 만나서 1시간 동안 와이너리의 이곳, 저곳에서 스토리를 들으면서 위대한 와인 양조가의 철학과 열정에 감동하곤 했다. 와인 투어를 끝내고 특별히 준비된 와인 시음실로 갔는데 칼레스 파스트라네와 함께 5개의 와인을 시음했다. 강한 바디감과 부드러운 목 넘김, 포근하고 매끈한 타닌이 매우 매력적이며,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은 와인으로 프랑스 보르도, 미국의 나파밸리,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 대체할 수 있는 와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에 수입되었으면 하고 기대했던 소망이 최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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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 우사제스 2024(Blanc Usatges 2024)는 마카베우(60%), 자렐로(20%), 모스카텔 데 알레한드리아(15%), 가르나차 블랑카(5%)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밝은 아이보리 색상을 띠며, 아로마는 은은한 아몬드, 체리, 벚꽃, 흰 꽃의 향이 나고, 마셔보면 약간의 단맛과 함께 상쾌한 산미, 미네랄의 균형이 탁월하며, 1,200병의 한정된 생산량으로 매우 인기가 높다. 음식과 조화는 생선회, 스시, 파스타, 피자 등을 추천한다. 

클로 드 로박 2014(Clos de l'Obac 2014)는 카베르네 소비뇽(35%), 가르나차(35%), 카리냥 (10%), 메를로(10%), 시라(10%)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밝고 맑은 우아한 짙은 자주색의 자태가 아름답고, 아로마는 검은 과일, 달콤한 블랙베리, 체리, 약간의 미네랄, 향신료, 담배, 가죽, 감초 향이 나며, 마셔보면 매우 우아하고 스파이시한 풍미와 함께 섬세한 균형감이 매력적이다. 음식과 조화는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 양고기구이, 사슴고기, 가금류 등을 추천한다.


고재윤박사는 현재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고황명예교수이다. 2010년 프랑스 보르도 쥐라드 드 생떼밀리옹 기사작위, 2012년 프랑스 부르고뉴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 기사작위, 2014년 포르투칼 형제애 기사작위를 수상하였고, 저서로는 와인 커뮤니케이션(2010), 워터 커뮤니케이션(2013), 티 커뮤니케이션(2015), 보이차 커뮤니케이션(2015), 내가사랑하는 와인(2014) 외 다수가 있으며, 논문 210여편을 발표하였다. 2001년 한국의 워터 소믈리에를 처음 도입하여 워터 소믈리에를 양성하여 '워터 소믈리에의 대부'고 부른다. 2000년부터 보이차에 빠져 운남성 보이차산을 구석구석 20회 이상 다니면서 보이차의 진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와인, 한국의 먹는 샘물, 한국 차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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