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에서 보존되어 온 전통 와인 양조법인 ‘고대 조지아의 전통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Ancient Georgian traditional Qvevri wine-making method)’은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최근 국내에서 조지아 와인이 인기를 끌면서 크베브리(Qvevri) 와인을 경험해본 와인애호가의 숫자가 늘고 있다. 양차트의 통계에 의하면 작년 조지아 와인의 수입량은 2023년 대비 12% 증가했으며, 2년 연속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와인 수입이 코로나 이후 매년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물론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크베브리 와인이 조지아 와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낮다. 그렇지만 유럽의 국가들에서 생산되는 와인처럼 클래식한 스타일로 만든 와인과 달리 크베브리 와인은 조지아인들의 삶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조지아 와인의 얼굴 역할을 한다. 와인의 요람인 조지아의 8000년 전통의 와인 생산 역사가 크베브리 와인으로 시작하고,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이 조지아에서처럼 퍼져 있는 와인산지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점토 항아리인 암포라를 활용한 와인 생산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명백한 글로벌 트렌드인 것을 와인산지를 다녀보면 알 수 있다. 필자가 지난 5월과 6월에 칠레와 프랑스의 보르도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왔는데, 현지에서 현대식 암포라를 활용한 양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뿐 아니라 메인 스트림 와인 생산자들까지 암포라를 도입하며 전통 방식을 현대에 맞게 부활시키고 있다. 슬로베니아 사람으로 이탈리아에서 오렌지 와인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요스코 그라브너(Josko Gravner)는 크베브리를 조지아에서 들여와서 양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발렌시아와 포르투갈의 알렌테주를 중심으로 점점 퍼져가고 있는 암포라 사용은 과일 표현이 강조되고, 오크의 영향 없이 순수한 테루아 표현을 추구하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미세 산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발효와 숙성, 지속 가능성, 지역성과 정통성 등을 중요시해서 자연스러운 와인 표현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증가에 대응하는 양조 방식이다. 암포라를 활용한 와인 생산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전 세계 와인 업계의 자연주의와 지속 가능성 지향적 변화 속에 자리 잡은 중요한 흐름이다. 특히 맛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암포라는 더욱 각광받을 전망이다.
암포라 사용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흐름은 조지아의 크베브리 와인 전통이 우수하고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암포라의 뿌리가 조지아의 크베브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크베브리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암포라와 차이가 있다.
크베브리는 완전히 땅속에 매립되어 와인의 발효와 숙성이 이뤄져, 온도 안정성과 장기 숙성에 유리하다. 지상형 암포라(terra cotta jar)와는 열역학적 조건이 다르다. 크베브리는 보통 800~3,500리터급 대형 용기가 많아 대량 생산에 적합하다. 크베브리는 단순한 양조 용기가 아니라, 포도의 재배부터 양조, 저장을 거쳐 소비까지 연결된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전통이다.

세계적으로 암포라가 점점 많이 사용되는 것은, 점토 숙성이 맛, 향, 질감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실증이다. 그 뿌리가 조지아 크베브리라는 점에서, 이는 곧 조지아 전통 방식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다만 오늘날 프랑스, 칠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쓰는 암포라는 크베브리의 ‘직접 복제’라기보다, 그 철학과 원리를 차용해 현대 양조 환경에 맞게 변형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지아의 방식이 그대로 전 세계에 표준화된 건 아니지만, “원형(original)”으로서의 영향력은 확고하다. 오늘날의 암포라 트렌드는 ‘조지아 방식의 글로벌 표준화’라기보다, 조지아에서 출발한 발효·숙성 철학이 각국의 테루아와 양조 스타일에 맞게 변형·채택된 다원적 진화에 가깝다.
하지만 앞으로 암포라 트렌드가 크베브리 트렌드로 바뀔 수도 있다. 두 가지 관점이 그러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온도 조절 장치를 갖춘 암포라 대신에 땅속에 매립하는 크베브리가 경제적인 면에서, 또한 지구 온난화의 과정에서 더 유리할 수가 있다.
조지아의 크베브리 와인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장기간의 스킨 컨택이다. 크베브리 앰버 와인의 경우 보통 6개월 동안, 레드 와인의 경우 보통 1개월 동안 스킨 컨택을 한다. 이러한 와인이 오렌지 와인과 마찬가지로 클래식한 스타일의 와인보다 비중이 커질 수는 없겠지만 조지아 와인의 국제화를 위해 앞으로 조지아에서 스킨 컨택을 자제하는 크베브리 와인을 만든다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Panta rhei”라고 말했다. 직역하면 “만물은 흐른다”는 뜻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의미다.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의 변화와 전파가 기대된다.
박찬준 대표
㈜디렉스인터내셔날 대표이사
Break Events의 한국 대표
와인 강사, 와인 컨설턴트
아시아와인트로피 아시아 디렉터
아시아와인컨퍼런스 디렉터
동유럽와인연구원 원장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국제협력)
다수의 국제와인품평회 심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