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믈리에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자신만의 시그니처 페어링이 있다. 무오키에서 근무하던 당시 시그니처 메뉴였던 무오키 에그와 도멘 마르셀 다이스 알텐베르그 2016의 페어링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부드러운 치킨 무스와 푸아그라, 그리고 트러플 크림소스에 알텐베르그 한 잔을 곁들이면 입안 가득 풍미가 배가 되어 행복한 미소를 짓는 손님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에게 마르셀 다이스의 와인은 늘 어려운 존재였다. 포도 품종보다는 떼루아를 우선시하는 와인, 그리고 그것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랑크뤼 '알텐베르그 드 베르그하임(Altenberg de Bergheim)'의 정확한 품종은 어느 책이나 웹사이트에도 나와있지 않아 늘 신비로운 와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가장 흥미롭고 궁금한 이야기를 듣고자 도멘 마르셀 다이스에 방문했다.
마르셀 다이스는 알자스 히보빌레 인근 베르그하임 그랑 크뤼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1947년에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판매할 와인이 필요해 2ha의 포도밭을 구입해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는 장-미셸(Jean-Michel)과 그의 아들 마티외 데이스(Mathieu Deiss)가 함께 도멘을 이끌고 있으며 그랑크뤼 Altenberg de Bergheim, Mambourg, Schoenenbourg를 포함해 약 45ha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Complantation의 철학
마르셀 다이스는 하나의 포도밭 안에 여러 포도 품종을 함께 심는 방식을 예술이라 생각한다. 오래전 그랑 크뤼 쇠넨부르크(Schoenenbourg)를 인수했을 때 서류상에는 리슬링이 심어져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품종들이 심겨 있었고 그중에는 일부 정체를 알 수 없는 품종들도 있었다고 한다. 언덕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올림픽 오륜기처럼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필드 블렌딩(Field Blending)은 가장 오래된 포도 재배 방식이다. 과거에는 농업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포도 품종을 정밀하게 선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포도밭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품종이 함께 자라곤 했다.
그리고 꽃이 제대로 수정되지 않는 ‘쿨뢰르(coulure)'로 인한 수확 손실이 컸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은 서로 다른 품종을 섞어 심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해의 어떤 품종이 실패해도 다른 품종들이 보완을 해주었고 해마다 균형이 유지되었다.
대표적으로, 2005년 INAO가 역사상 처음으로 Altenberg de Bergheim Grand Cru에 특별 규정을 승인하게 된다. 덕분에 알자스 13개 허용 품종을 블렌딩해 양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라벨에는 품종 대신 Altenberg de Bergheim Grand Cru만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포도 품종의 특징보다 떼루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떼루아는 지휘자이고, 포도들은 각각의 악기들이 되어 최고의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비로소 마르셀 다이스가 추구하는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와인이 숙성 중인 지하 꺄브로 향했다. 오크통 사이에서 ‘똑똑’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발효 중인 와인이 내는 소리라고 했다. 알자스 와이너리의 꺄브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장엄함처럼 마르셀 다이스 역시 푸드흐(foudre)에서 와인이 천천히 오랜 시간 숙성되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테이스팅 룸으로 향했다. 프랑스의 수많은 와이너리를 방문했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은 단연 가장 인상 깊었다. 와인을 설명할 때마다 테이블 위에 실제 토양을 올려두고 눈을 감은 채 손으로 토양을 느끼며 테이스팅 해보라고 권했다. 그 순간 포도밭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서로 다른 토양들의 차이점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Schoenenbourg 2018
알자스의 여러 포도 품종들이 함께 어우러진 필드 블렌딩 와인. 그랑 크뤼 쇠넨부르크(Schoenenbourg)는 품종의 특징 보다 토양의 개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남향의 가파른 경사면에 위치해 점토 기반의 비옥한 토양이 특징이다. 특히 다른 지역보다 기후가 서늘해 포도가 천천히 익어가며 귀부병(Noble Rot)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토양에서 비롯된 듯한 부싯돌, 성냥불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훈연 풍미가 느껴졌다. 지금 마셔도 좋지만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의 숙석 잠재력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었다.

Altenberg de Bergheim 2018
도멘 마르셀 다이스의 상징적인 와인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와인이다.
알자스의 13가지 품종들을 필드 블렌딩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향에서는 설탕에 절인 레몬, 꿀, 생강, 후추가 느껴졌고, 입안에서는 침샘을 자극하며 농익은 단맛과 함께 복합적인 풍미가 긴 여운을 남겼다.
무엇보다 음식과 함께할 때 진가가 드러나는데 버섯, 푸아그라, 트러플처럼 진한 풍미의 식재료와 같이 페어링 하기를 추천한다.
테이스팅을 마치고, 특별한 추억이 깃든 Altenberg de Bergheim 2016을 구매했다. 언젠가 이 와인을 열었을 때, 오늘의 기억이 그대로 되살아나길 바란다.

다가오는 추석, 도멘 마르셀 다이스의 와인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시길 바란다.
마현수 소믈리에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과정 WSET Level 3 취득
Court of Master Sommelier, Certified Sommelier 취득
현) 스와니예 헤드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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