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와인은 뭘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프랑스의 수많은 와인 산지와 와이너리들을 방문하고 있다.
샹파뉴, 부르고뉴, 론, 루아르, 알자스, 보르도, 사부아 등 다양한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내 안의 열정을 뜨겁게 만들어준 특별한 와이너리가 있었는데 바로 부르고뉴 생또방 (Saint-Aubin)에 위치한 도멘 위베르 라미 (Hubert Lamy)다.
도멘의 오너 올리비에 라미 (Olivier Lamy)를 처음 만났을 때 가벼운 인사 후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눴다. 그의 손은 온종일 포도밭에서 일하며 생긴 상처와 굳은살투성이였다. 바로 그 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와인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느껴졌고 내 심장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오늘 전하고 싶은 프랑스 여행 이야기는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곳 도멘 위베르 라미 (Domaine Hubert Lamy)이다.

도멘 위베르 라미 (Domaine Hubert Lamy) 소개
라미(Lamy) 가문은 1640년부터 포도를 재배해온 오랜 역사를 지닌 가문이다. 1973년 위베르 라미가 도멘 위베르 라미 (Domaine Hubert Lamy)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고, 초기에는 아버지 아버지 장 라미 (Jean Lamy)와 함께 일하며 기반을 다져나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Derrière Chez Edouard, Clos du Meix 등 뛰어난 구획의 포도밭을 매입하면서 도멘의 규모는 점차 확장되었고, 이후 1995년에 아들 올리비에 라미 (Olivier Lamy)가 합류하게 된다. 당시 도멘은 주로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비교적 빠르게 마시는 레드와인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올리비에 라미는 화이트와인 비중을 점차 늘려가며 변화를 주었고 오늘날 부르고뉴에서 가장 주목받는 생산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재 도멘은 총 18.5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샤르도네(Chardonnay) 80%, 피노 누아(Pinot Noir) 20% 비율로 포도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올리비에 라미의 소개 인사 후 와인이 숙성 중인 지하 꺄브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벽면에는 도멘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이 걸려있어 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숙성 중인 오크통 사이를 지나가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크통의 크기였다. 도멘 위베르 라미는 일반적인 부르고뉴 오크통 보다 큰 600L 용량의 드미 뮈 (demi-muid)를 사용한다. 특이한 점은 이 오크통을 최소 6년에서 최대 15년까지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뉴 오크의 풍미를 최소화하고 오랜 시간 천천히 와인을 숙성시켜 떼루아의 본질을 와인에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더 깊숙이 들어가자, 지하 꺄브 벽면에는 지반 토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수천만 년에 걸쳐 형성된 퇴적층은 마치 지질학적 기록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조개 화석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주로 석회암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중 습도는 95%로 유지되어 와인을 오랜 시간 숙성시키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올리비에 라미는 매년 일부 와인을 판매하지 않고 따로 저장을 해둔다고 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깊어져 가는 와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는 1층 테이스팅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멋지게 꾸며진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정면 너머로 위베르 라미가 소유한 생또방 (Saint-Aubin) 포도밭의 전경이 탁 트인 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왔다. 생또방은 두 개의 협곡이 펼쳐져 있는데, 밤에는 위쪽의 오트 코트 드 본(Haute Côte de Beaune)에서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고, 낮에는 아래쪽의 샤사뉴 몽라쉐(Chassagne-Montrachet)에서 따뜻한 바람이 올라온다고 한다. 독특한 기후 조건 덕분에 일부 끌리마는 그랑 크뤼에 비견될 만큼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특별한 테이스팅이 시작되었다.

Chassagne-Montrachet "Les Concis du Champs" 2022
이 포도밭은 따뜻한 토양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도멘 내에서도 가장 먼저 수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향에서는 잘 익은 과실의 풍미가 풍부하게 퍼졌고 어린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떼루아를 잘 표현한 와인이었다.
Saint-Aubin “Derrière Chez Edouard” 2022
‘에두아흐의 집 뒤편’이라는 뜻을 지닌 이 포도밭은, 실제로 본(Beaune) 시장이 거주하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역사의 의미를 기리며 포도밭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잘 익은 사과와 배의 풍성한 과실미와 흰 꽃향기가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소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해지는 와인이었다.
Chassagne-Montrachet “Les Chaumées” 2016
놀라울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우아하게 와인이 변했다. 향에서는 껍질을 벗긴 아몬드, 스카치위스키와 같은 복합적인 풍미가 올라왔으며 반면 입안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신선한 과실 풍미와 산도의 밸런스가 훌륭한 와인이었다.
Saint-Aubin “Clos de la Chatenière” 2009
올리비에 라미는 와인의 숙성에 있어,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보관해야 와인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15년 이상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선한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향에서는 잘 익은 그랑 크뤼를 연상시킬 정도로 깊고 복합적인 풍미가 느껴졌고, 견과류의 너티함과 미네랄리티가 긴 여운을 남겼다.
Saint-Aubin “Les Frionnes” 1983
특별하게도 단 4병밖에 남아 있지 않은 와인을 오픈해 주셨다. 1983년은 나비 해충이 포도송이 안으로 파고들면서 보트리스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마치 오래된 소테른이나 루아르의 숙성된 슈냉블랑을 연상시키는 꿀, 밀랍, 아몬드, 헤이즐넛 등 복합적인 풍미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입안에서 전혀 달지 않고 드라이했으며 과실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오랜 시간 와이너리 투어와 테이스팅을 마치며 느낀 점은 올리비에 라미가 보여준 진심과 열정 그리고 와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마현수 소믈리에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과정 WSET Level 3 취득
Court of Master Sommelier, Certified Sommelier 취득
(현) 레스토랑 MUOKI Head Sommelier 근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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