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와인은 즐거움이다. 와인을 즐기기 위해 어떤 특별한 재능이 요구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와인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는 편견 외에 별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의 말입니다.

또 그녀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참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체험이에요. 우리 모두가 와인의 내재적 가치보다는 라벨과 명성에 의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가를 일깨워주기 때문이죠.”

우선 본질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독일 심리학자 칼 던커(Karl Duncker)는 즐거움의 본질을 연구하면서 "즐거움의 대상은 와인일까, 와인을 마시는 것일까, 와인을 마시는 감각적 경험일까?” 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감각적 경험일 것입니다.

우리는 와인을 주로 미각과 후각을 이용해 즐깁니다. 맛은 미각으로, 향은 후각을 이용합니다. 이 두 가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감각이지만 결국은 통합되어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맛' 이라고 표현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풍미(flavor)입니다. 맛을 느끼는 뇌의 정보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개인의 정서적 경험과 기억의 영향을 받습니다. 또한, 특정 성분에 대한 생리학적 감별수준이 서로 다르고 와인에 대한 경험도 모두가 다릅니다. 결국 "감각적인 경험은 정답이 없다" 이며, 거칠게 말하면 “와인의 맛은 정답이 없다” 입니다.

명품 와인을 자주 마시고,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시음행사를 다니지만 (진정한) 애호가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박스 신공을 발휘하며 와인을 사들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의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수의 와인들은 거의 비슷한 와인들로 채워져 있을 겁니다. 레드는 나파나 칠레의 명품 와인, 보르도 그랑크뤼, 화이트는 오크로 잔뜩 화장한 미국의 샤르도네, 리슬링,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까지,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며,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도 대개 자신의 선호도가 기준이 됩니다.

지나치게 강조되고(oversized), 진하고(rich), 편향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고를 좋아하는데, 이 와인은 그것을 연상시키는군, 가격은 저렴하니 가성비는 갑. 그러니 이건 좋은 와인이야” 하는 식입니다.

파리의 심판은 오늘 당장 해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게 분명합니다. 토양과 품종의 특성이 명확하게 표현되고, 오크통 터치가 거의 없는 와인들은 뒷줄로 밀려나게 되어있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파커부터 한국의 일부 애호가까지, 진득하고, 과일향이 풍부하고, 오크통의 풍미가 가득한 와인들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과 나쁜 것이 혼돈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유럽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 와인을 준비합니다. 굉장히 섬세하고 세분화된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명품이 가장 잘 팔리는 나라입니다.

블루보틀이 오픈 할 당시에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장사진을 친 진풍경이 독일 공영방송에 소개될 정도입니다. 비싼 명품 와인을 찾는 이유도 혹시 그런 심리가 숨겨져 있지나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 저의 지나친 노파심이길 바랍니다.

사실 와인은 비쌀 이유가 없는 식품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땅값은 제외하면) 땅에서 생산된 포도로 발효시켜, 숙성과정을 거쳐 병입될 뿐입니다. 좋은 토양, 묘목 관리, 수령, 비싼 오크통 숙성, 포도원의 명성, 단위 면적당 수확량, 인건비, 시장논리 등이 와인의 가격을 몇십 배, 몇백 배를 차이 나게 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과연 비싼 와인이 맛이 더 좋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안토니오 랑겔 박사팀의 연구가 있습니다.

와인의 가격이 마시는 사람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랑겔 박사 연구팀은 세 종류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는 5달러짜리 와인 두 병을 준비하여 각각 5달러와 45달러짜리라고 표시했고, 두 번째는 90달러짜리 와인 두 병에 각각 10달러와 90달러짜리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세 번째는 35달러짜리 와인을 한 병 준비하여 원래대로 표시했습니다.

연구팀은 스무 명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두 번에 걸쳐 다섯 가지 와인을 시음하고 평가하게 했고, 이후 가격표를 모두 떼고 같은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결과는?

와인의 맛은 표시된 가격에 확연히 휘둘렸습니다. 애호가들은 같은 와인이라도 5달러일 때보다 45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어있을 때 더 맛있다고 평가했고, 또 10달러일 때보다 90달러라고 쓰여 있을 때 훨씬 좋아했습니다.

랑겔 교수팀은 기능적 뇌자기 공명 영상을 통해 와인 마실 때의 즐거움을 객관적으로 측정하였는데, 비싼 가격표가 붙어있는 와인을 시음할수록 우리 뇌에서 향기와 맛의 즐거움을 느끼는 안쪽 안와전두엽 피질의 활성화가 훨씬 두드러진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와인을 마셨을 때의 반응은 전혀 달랐지요. 그때는 모든 와인을 엇비슷하게 평가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와인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의 가격을 음미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었습니다.

같은 와인이라도 표시된 가격에 따라 우리의 뇌는 달리 반응합니다. 가격을 정확히 알고 90달러짜리 와인을 마셨을 때, 같은 와인을 10달러짜리라고 알고 마셨을 때보다 뇌에서 향기와 맛의 즐거움을 지각하는 안쪽 안와전두엽 피질의 활성화가 훨씬 두드러집니다.

* 출처(Proc Natl Acad Sci U S A. 2008 Jan 22;105(3):1050-4, Copyright (2008)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그러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과, 진정으로 좋은 와인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생각과 달리 그리 어렵지 않으며, 맛의 품질을 판단하는 이상적인 요소는 없어도, 그 기준은 존재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와인의 품질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복합성(Complexity)입니다.

마실 때마다 향과 맛에서 다른 특성과 매력을 주는 와인이 복합성이 좋은 와인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복합성을 선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도 밝혀졌지요. 심지어 사람과 신경학적 구조가 비슷한 실험실의 쥐조차도 단순한 자극보다는 복합적인 자극을 선호합니다.

음악도 단순한 멜로디에서 복합적인 멜로디로 진화하지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불확실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이것을 혼란이나, Entropy 이론을 적용해서 설명하더군요. 사물이 뒤섞일수록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될 수 있습니다. 명품 와인이 진정으로 만족감을 일으키려면, 일정한 패턴과 함께 불확실성(복합성)이 존재해야 하며, 우리를 계속 놀라게(예측불가성) 해야 합니다.

위대한 와인(작품)들은, 압도적으로 강렬한 느낌보다는 한계가 무한할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합니다. 데이트를 할 때도 몇 시간만 이야기해 보면, 딱 견적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몇 년을 만나도 이 사람의 한계는 어디일까? 하는 사람이 있지요?

진정한 애호가들은 여기에서 정보들을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개구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풀숲에서 두꺼비를 만났을 경우 대체로 눈앞의 두꺼비 보다 머릿속의 개구리를 먼저 보게 됩니다. 

아침에 태양이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것을 본 사람, 그것이 사실입니다.
아침에 태양이 수평선에서 오르는 것을 본 사람,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바다에서도 지평선에서도 떠오른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 와인으로 행복했던 모임에서 한컷, 좌측부터 이인순 원장, 최염규 소믈리에타임즈 발행인, 필자, 박찬준 대표 

와인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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