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 (사진=Wikimedia)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 (사진=Wikimedia)

‘파스퇴르(1822-1895)’가 알코올발효의 미생물학적 측면을 규명했다면, 그 전 세대인 ‘라부아지에’는 알코올발효의 메커니즘을 화학적으로 밝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제된 설탕을 발효시키면서 발효 전과 발효 후의 질량 차이가 거의 없다는 데 착안하고, 포도즙을 이용하여 당분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효 전의 포도즙 무게와 발효에 얻은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합친 무게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남긴 업적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쉽게 말해서,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반응물질의 질량과 화학반응 후 생성된 물질의 질량이 같다는 것이다. 즉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물질들은 화학반응 후 생성된 물질들로 변하기 때문에 물질이 소멸되거나 없었던 물질이 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당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되는 현상을 ‘알코올발효’라고 설명하였다.

라부아지에는 프랑스의 화학자로 현대 화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였고 집안도 부유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법학 공부를 했지만 자연과학에 흥미가 많았으며, 천문학ㆍ식물학ㆍ광물학ㆍ화학 등을 배우고, 1768년 세금징수원이 되었지만 같은 해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이어서 국립 화약 공장 감독관에 취임(1775)하고, 조병창 내에 자기의 실험실을 차렸다. 일찍이 물질의 연소반응에 관심을 갖고 이때 필요한 기체에 처음으로 ‘산소’라는 이름을 붙여 원소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동물의 호흡과 연소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또 물을 분해하여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고, 반대로 산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물을 만들어 보았다. 1783년에는 수소를 ‘수소’라고 명명하고, 1787년에는 듀퐁(du Pont)에게 화학을 지도했다. 이러한 연구에 의해 새로운 합리적인 화학의 체계를 확립, 현대 화학의 시조로 불린다.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대혁명 중에도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입지는 점점 위협받게 되었다. 1793년 11월 24일, 국민 공회의 의원인 프랑수아 루이 부르동은 전직 세금 징수원의 체포를 발의하였고, 이는 국민 공회를 통과하였다. 라부아지에는 세금 징수원으로 활동하면서 심각한 가렴주구와 폭정으로 프랑스 백성들을 수탈했다는 혐의를 받아 11월 28일 투옥되었다. 다음 해 5월 사형 선고를 받고, 그날 저녁 단두대에서 참수되었다. 그의 시신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공동묘지에 버려졌다. 라부아지에가 처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대한 처형이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천문학자 제롬 랄랑드는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책을 썼으며 공동묘지에 버려졌던 그의 시신을 찾아 성대한 장례식도 치렀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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