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와인을 대표하는 펜폴즈 와이너리는 1844년 크리스토프 펜폴드 부부에 의해 시작되었다.
호주로 이민을 온 펜폴드 의사 부부는 에들레이드에 진료소를 세우고, 빈혈 환자 치료용으로 주정 강화 와인을 만들어 처방을 하다가 치료가 끝난 환자들이 계속 와인을 사러 오자 아예 본업을 와인으로 바꾸어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고, 한때 호주 전체 와인의 50%를 생산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와인 이름 그랜지(Grange)는 시골 농가에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를 말하는데, 곡물 Grain을 뜻하는 라틴어 그라늄 Granum에서 유래된 불어(Grange 그랑쥐)로, 영어권에서는 그랜지라 발음한다.
1989년까지는 ‘그랜지 에르미따주’라는 이름이었지만, 유럽 연합의 원산지 규정 때문에 1990빈부터는 ‘에르미따주’를 지웠다.
에르미따주는 시라, 또는 쉬라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북부론 에르미따주 지방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신대륙 와인메이커들에게 프랑스는 동경의 대상이자 밴치마킹의 모델이었다.
펜폴즈 와인에만 있는 특별한 표기가 바로 Bin 숫자인데, 그랜지 와인에도 Bin 95라고 적혀 있다. Bin이란 Batch Identification Number의 준말로, 와인 창고내 상품별로 구분해서 적재하는 번호를 의미하는데, 펜폴즈의 와인은 빈 95 외에도 Bin 707, 389, 28 및 128 같은 빈 숫자를 사용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남호주의 헤리티지 아이콘으로 등재되어 있는 그랜지는 완전히 익고 강렬한 맛과 구조화된 쉬라즈 포도를 사용하여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일관된 품질을 보이는 와인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독특한 호주 스타일의 와인이다.
Grange 2015빈은 쉬라즈 98%와 카베르네 소비뇽 2%의 블랜딩으로, 주로 바로사 밸리, 맥라렌 베일, 맥길 에스테이트에서 나온 포도를 멀티 빈야드, 멀티 디스트릭트 블렌딩으로 만들었고 18개월간 New American 오크 통에서 숙성했다.

빈은 가장자리에 약간의 퍼플 반영을 띠었고 중간 심도는 잉크처럼 짙고 깊은 루비 색상이었다. 블랙 베리와 자두 잼, 모카, 초콜릿, 후추, 오크 바닐라, 타르, 토바코 등과 같은 농염하고도 복합적인 풍미가 강렬하게 피어 났다. 14.5%에 달하는 알코올로 풀 바디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미각에서는 벨벳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타닌과 풍부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과일향과 산미의 밸런스, 마신 뒤의 긴 피니쉬까지 고급 와인의 덕목을 고루 보여주었다. 깊고 풍성한 맛과 완벽한 밸런스, 꺾임이 없는 강렬한 향은 가히 남호주 헤리티지 아이콘 와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것 같다. 빈은 제임스 서클링 100점 만점을 받았다.
펜폴즈의 역사는 호주 와인의 역사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 펜폴즈의 명성은 그랜지를 만든 막스 슈버트 라는 와인 메이커 덕분이다.
슈버트는 16살의 나이에 펜폴즈의 급사로 취직해 33살이 되던 1948년에 펜폴즈의 양조 책임자로 승진하게 되는데, 1950년 슈버트는 유럽 출장을 갔다가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을 맛보고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돌아와서 장기 숙성이 가능한 펜폴즈 그랜지 와인을 1951년 처음 만들게 된 이후 매년 거르지 않고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Penfolds Grange는 당시로써 획기적인 와인으로 장기 보관성과 농축미, 밸런스를 갖추고 호주 와인 중에서는 추종을 불허하는 와인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1950년에 슈버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 조사를 위해 출장을 갔고, 돌아오는 길에 운 좋게 보르도를 방문하여 와인 양조현장을 견학하면서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을 맛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호주로 돌아온 그는 보르도 와인처럼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을 쉬라즈로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로 특별한 와인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펜폴즈 그랜지가 탄생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1951년에 만든 실험적 그랜지 와인은 지인들에게 선물용으로 나누어 주었고, 상업적인 생산은 이듬해 1952빈티지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1957년 최고 경영진을 포함한 이사회 임원진과 그랜지 시음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더 이상 생산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으며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는 몰래 지하실 깊숙한 곳에 '57, '58, '59 빈티지를 만들어서 숨겨놓게 된다. 언젠가는 이 와인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살려낸 것은 1960년 호주 와인 대회였다. 여기서 그랜지 1955년산이 큰 인기를 얻으며 회사의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중단 조치가 풀리고 공식적인 생산이 재개되었고 지금까지 매년 빈티지를 내고 있다. 1995년 Wine Spectator에서 ‘올해의 레드 와인’으로 Grange 1990빈이 선정된 것을 비롯, 그랜지에 대한 국제적 인정과 수상 소식이 줄을 이었다. Penfolds Grange는 당시 획기적인 와인으로 장기 보관성과 농축미, 밸런스를 갖추고 호주 와인 중에서는 추종을 불허하는 와인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신대륙 와이너리 중에서도 특히 미국, 호주, 뉴질랜드는 M&A가 빈번히 일어나 경영권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가치를 최대한 키워서 큰 돈을 받고 Exit하는 전략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펜폴즈도 1976년에 경영권에 변화가 생기게 되고 펜폴즈가 팔리게 되었다. 펜폴즈의 신화를 이루며 43년간 근속했던 막스 슈버트도 이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에 몇번의 경영권 변동이 있었고, 현재의 펜폴즈 소유주는 호주 기반의 다국적 거대 와인그룹 Treasure Wine Estates(TWE)이다. TWE가 가진 주요 브랜드로는 Matua, Beaulieu Vineyard, Beringer, Wolf Blass 등이 포함되어 있다.

펜폴즈가 하는 아주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 바로 ‘펜폴즈 리코르킹 클리닉’이다. 리코르킹이란 오래된 코르크를 제거하고 새 코르크로 갈아 끼워 와인의 수명을 연장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은 40~50년 이상을 가지만, 문제는 코르크의 수명이 이보다는 짧다는 점이다. 고급 코르크의 수명은 25년 내외라고 보는데, 적절한 시점에 코르크를 새것으로 바꿔주면 20년 이상 추가 보존이 가능하게 된다.
이 서비스의 유래는 그랜지를 만든 펜폴즈의 막스 슈버트가 친구들을 위해 오래된 와인의 코르크를 무료로 갈아 끼워 주었던 것에 착안해서 약 30년전인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매년 전세계를 돌면서 오래된 펜폴즈 와인의 코르크를 교환해주는 특별한 무료 서비스인데,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기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15년 이상된 펜폴즈 와인이면서 와인의 헤드 스페이스(head space)가 병의 어깨 아래로 내려와 있어야 한다. 예약한 일정에 와인을 들고가면 펜폴즈 양조팀의 직원들이 일단 라벨이나, 보관상태, 해드 스페이스를 보고 리코르킹 여부를 결정하는데, 와인이 병의 어깨 중간 보다 더 내려온 경우는 변질된 것으로 판단해서 그냥 돌려준다고 한다. 리코르킹은 아소를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오래된 코르크를 제거하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질소가스를 병안에 주입하고 주사기를 이용해서 와인을 뽑아내서 테이스팅 하면서 의뢰인에게 와인의 상태를 설명해준 후 모자라는 만큼의 와인을 다시 채우고 질소가스를 뿌려 산소를 제거하고 새 코르크를 끼우고 새 캡슐을 씌워준다. 와인의 숙성 상태가 정상적인 경우는 인증서에 사인을 해서 백 라벨에 붙여주고 품질을 보증해준다. 이런 서비스는 주로 대도시에서 진행되는데, 호주의 주요 도시, 런던, 뉴욕, 뱅쿠버, LA, 싱가폴 등이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인력개발원,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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