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아 몬테팔코’ 포맷은 생산자와 와인 미디어 기자들과 정보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가는 와이너리마다 새로 도입한 양조법이나 그 성과,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애로점, 누구의 밭에 우박이 쏟아졌다는 등 사연을 풀어놓는다. 얘깃거리의 일 순위는 단연코 타닌이 점령한다. 발효와 침용법을 바꿨더니 타닌의 쓴맛과 떫은맛이 덜했다는 식이다.
필자가 고른 이번 취재장소는 몬테팔코 북동부다. 일단 교통요충지인 폴리뇨(Foligno) 시에서 30분 거리에 있다는 이동 편리성과 2천 년대 초반에 진출하여 성장의 틀을 다진 중견 생산자와 막 창업한 초보자가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사그란티노의 거북이 숙성에 착안- 테누타 카스텔부오노(Tenuta Castelbuono)의 카라파체
북이탈리아 트렌티노 알토아디제주 출신 루넬리(Lunelli) 그룹이 중부 이탈리아에 투자한 와인 전진 기지다. 루넬리 가족은 122년 전통의 샴페인 방식 트렌토 스푸만테의 거성 페라리(Ferrari)사를 인수하면서 와인업계에 존재감을 떨쳤다. 루넬리 가족은 북중부 이탈리아 주요 등급와인 생산지를 거점지로 정해 세 군데의 테누타(tenuta, 포도밭 딸린 양조장)로 관리하고 있다. 움브리아주 몬테팔코에 설립한 것이 테누타 카스텔부오노다.

테누타 카스텔부오노는 거북이 등껍질을 본 따 만든 카라파체 (Carapace) 건물로 더 유명하다. 루넬리 소유 건물들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아르날도 포모도로 조각가가 직접 설계와 제작을 지휘했다. 웅장한 외관은 건축물로 오인될 수 있으나 실제는 조각품이다. 구리로 만든 외관은 영락 머리, 꼬리를 등껍질 속에 오므린 거북이 형상이다. 태양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구릿빛 지붕은 짙음이 제각각인 밝기와 어둠으로 반응한다. 천장은 등껍질과 같은 느낌을 내는 소재가 덮고 있는데 구릿 가루로 만든 반죽을 조각가가 직접 발랐다고 한다. 동선을 거북머리로 들어가서 등껍질 아래 내장에서 시음하는 순서로 배치했다. 중앙 바닥에 나있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지구랏 신전과 숙성실이 등장한다.
카라파체 안에서 3차원 알코올 발효법 공개 시음회가 열렸다. 이 발효법은 2004년 첫 빈티지 출시이래 타닌의 감도 개선을 위해 다채로운 양조실험 시도한 지 11년 만에 거둔 쾌거다. 2015년부터 사그란티노 전 제품에 도입한 이 발효법은 먼저 선별수확에 이어 압착한 포도즙을 3등분 한다. 이어 즙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오크통, 암포라와 꼬초페스토 탱크에 나누어 주입한 후 알코올 발효를 실시한다. 꼬초페스토는 구운 토기로 표면에 퍼져있는 기공을 통해 유입된 산소가 타닌의 거친 맛을 줄여준다. 무맛무취인 점토로 만들어 천연풍미 보존성이 탁월해 알코올 발효와 단기 와인보관 용기로 인기가 높다.

3차원 알코올 발효법을 적용한 와인은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카라파체로 2019년과 도입 전의 2011년을 비교하는 시음이 이어졌다.
2011 빈티지는 스테인리스 스틸탱크에서 발효했고 바리크에서 24개월 숙성했다. 유칼립투스, 오크향, 초콜릿, 타바코의 숙성향기와 블랙베리, 흑자두, 석류의 농익은 과일향이 난다. 풀보디의 중후함과 드라이한 타닌이 집중감을 끌어올리며 반듯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조밀하고 촘촘하게 엮인 타닌과 알코올이 남기는 매끈한 질감이 혀를 감싼다.
2019년은 3차원 발효법으로 발효한 와인을 24개월 보테와 12개월 병에서 숙성했다. 특히 사그란티노가 루비색을 낸다는 게 놀라웠다. 바이올렛, 장미의 화사함, 블랙 티, 흑연, 블러드 오렌지, 체리, 라즈베리가 매혹적이다. 한층 가벼워진 바디감 그러나 미각은 조밀하고 섬세한 타닌이 감싼다. 입안에 와 닿는 타닌은 촉촉하면서도 신선한 과즙으로 채운다.
실전 경험으로 무장한 M세대 와이너리 테누테 발도 Tenute Baldo
실전에 강한 M세대 양조가와 영농가가 의기 투합한 동업 와이너리다. 창업한 지 20년도 안 됐으나 사 모은 60헥타르 밭은 두 종류의 DOCG 등급 와인지역 내에 두고 있다. 몬테팔코에 지은 양조장은 프레다 델 팔코 사그란티노와 두 종류의 몬테팔코 로쏘를 선보인다. 천연 아로마 구현과 구조감, 유연성, 균형감이 조화를 이룬 사그란티노를 얻기 위해 첨단 양조법 도입과 극도의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2021년부터 거둬들인 포도는 자신들이 개발한 단기 고온 알코올 발효법을 적용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사그란티노는 소량만으로 파급력이 크다는 것과 알코올 농도가 낮은 발효환경에서는 타닌이 적게 추출된다는데 있다. 압착한 포도로 채워진 발효 탱크를 고온 (섭씨 32~35도)으로 덮여서 알코올 발효를 실행한다. 알코올 농도가 낮을 때는 향기성분, 안토시안 색소가 녹아 나온다. 5~6일 경과하면 과피에 몰려있는 고급 타닌을 재빨리 얻을 수 있다. 이어 발효를 중단하고 껍질과 씨를 제거한 후 온도를 24도 맞춘 상태에서 탱크를 재가동시켜 발효를 끝낸다. 첫 시도한 와인이 2025년에 선보일 예정이라니 기대가 크다.

프레다 델 팔코 2019년은 해발 4백 미터 피에트라 우타이아 밭에서 수확한 사그란티노로 만들어 점토의 힘과 구조감, 모래토의 향기와 우아함을 모아놨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발효 및 침용 30일, 18개월 오크 숙성, 12개월 병숙성의 거쳐 완성했다 . 검붉은 색깔의 강한 인상, 달콤한 스파이시, 후추, 타임에 이어 견과류, 블랙베리, 사워체리, 초콜릿의 잘 익은 향기가 풍성하다. 단단한 골격과 농축미가 발산하는 다부진 인상, 입언저리에서 시작한 타닌은 입안 깊숙이 파고들면서 신경을 붙들어 놓는다.
미셸 롤랑과 협업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아르날도 카프라이 Arnaldo Caprai 사그란티노
지역사회에 헌신한 공로로 기사작위를 수여받은 아르날도 카프라이가 창립했다. 아르날도가 토대를 만든 와인생산 기반은 아들인 마르코가 상속받았다. 그때가 1986년. 아직 사그란티노는 디저트 와인으로 명맥만 이어갔고 DOC로 승급했으나 지역 와인에 머무르던 시절이었다. 마르코는 토착품종에 대한 체계적 지식의 부재를 깨달았고 밀라노 대학교와 산학연구를 통해 세 종류의 우량 클론을 분리해 냈다. 뿐만 아니라 새 클론에 적합한 수형(스퍼드 코르동)도 발견했다.

1993년 창립 25주년을 맞아 ‘25 안니 25 Anni ‘사그란티노를 출시했다. 2000년은 카프라이에 경사가 쏟아진 해로 기록된다. 로버트 파커가 25 안니에 97점을 수여했고 마이클 더글라스와 카터린 제타 존스 커플의 결혼 축하주로 선정되었다.
2007년에는 감베로 로쏘와 슬로우 푸드가 주최하는 올해의 와이너리(Winery Of the Year)에 뽑혔다. 그런가 하면 지속가능한 친환경 구현에도 발 벗고 나서 ISO/TS 14067, EN ISO50001:2001, EQUALITAS 같은 환경인증서를 취득했다.
우량 클론 선별과 바리크 숙성 매뉴얼은 거친 맛과 튀는 골격을 어느 정도 순화시켰으나 마르코는 근본적으로 사그란티노의 야성적 유전자를 교육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2016년에는 양조의 신성 미셸 롤랑 와인메이커를 영입해 ‘인테그랄 비니피케이션 ( Integral Vinification )’ 을 개발했다.
일명 바리크 수평회전 발효기술. 바리크(225리터 프렌치오크) 안에 손수확한 포도알과 드라이아이스 파우더를 차곡차고 쌓는다. 바리크를 수평으로 눕힌 뒤 자동 회전기에 장착한다. 실온을 섭씨 4~5 도로 유지하면서 10~15일간 색소와 아로마만 추출하는데 이를 콜드 전침용( Cold Pre-Fermentative)이라 한다. 회전기는 하루 세 번씩 회전하게 프로그램이 맞추어져 있다. 이후 실온을 21-22도로 올려 7~10일 간 저온 알코올 발효를 실시한다. 발효가 종료되면 동일한 온도에서 21~30일 동안 후침용(Post Maceration) 모드를 작동시킨다. 위 기간 내내 바리크는 일정한 속도로 느리게 원형 회전을 한다. 펌핑오버 침용(껍질과 즙을 수직방향으로 회전시켜 추출하는 방식)보다 아로마 보존도를 끌어올릴 수 있고 매끈한 타닌을 얻는데 효과적이다. 발효가 끝나면 와인의 꽃 (vino fiore)을 얻는데 자체로 완벽한 고순도의 아로마를 말한다. 평균 5 개 바리크로부터 3개 바리크를 얻는다.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발디마조 2020는 허브, 스파이시, 초콜릿, 에스프레소, 오리엔탈 메디신, 체리즙의 농후한 과일향을 흩뿌린다. 말린 라벤더 꽃다발, 장미향이 직관적이다. 아기 볼 살 같은 매끈한 식감과 탄력 있는 타닌이 입안을 감싼다. 과일즙이 배어있는 산미와 풀보디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25 안니 2020은 후추, 타바코, 흑자두, 초콜릿, 감초, 타바코, 주니퍼베리, 블랙베리가 매혹적이다. 산미의 쾌감과 밸런스 잡힌 타닌이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꽉 채워진 풍미와 치밀한 타닌감이 주는 풀보디를 만끽할 수 있다.
몬테팔코 속 토스카나, 파토리아 콜산토 Fattoria Colsanto 와이너리

몬테팔코 속의 토스카나라 할까! 입구에서 콜산토 언덕까지 이어주는 1km 남짓한 길을 사이프러스 터널이 마중한다. 가로수길 끝에는 18세기 농가를 개조한 와이너리 건물이 들어섰다. 가로수 양 옆으로 접이 부채를 활짝 핀 듯한 포도밭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밭은 헥타르당 식재율이 7천 5백 그루로 식재 밀도로는 몬테팔코에서 단연 최고다. 간격이 좁은 나무끼리 서로 경쟁을 일으켜 뿌리가 깊숙이 내려가면 나무 당 한 병에 담을 수 있는 양 (8백 그램)만 열리게 돼 농축미와 집중도가 뛰어난 와인을 낳는다.
파토리아 콜산토 생산라인은 북 이탈리아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주의 콜리오 지역에서 토착와인으로 내공을 쌓은 리본(LIVON) 그룹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 60년간 다품종을 다루면서 쌓인 경험을 무기로 사그란티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고밀도 식재는 수퍼투스칸 와인을 생산할 때 오감으로 익힌 경험을 적용한 거라고.
콜산토 건물과 마르타니 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광대한 평원은 신생대 3기 (6550만 년 전~2300만 년 전)에 바다를 담고 있던 토양으로 모래와 점토가 주성분으로 화석도 섞여있다. 점토는 물 저장력이 탁월해 극한 가뭄에도 물부족에서 자유롭다. 사그란티노는 물 스트레스를 받으면 타닌이 거칠고 쓴 맛이 강해진다.
리본 가족이 활동 20주년을 기념하는 올드 빈티지 시음회를 열었다. 2천 년 초반을 풍미했던 옛 스타일을 떠올리는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월을 역행하는 젊음, 그런가 하면 지나온 시간만큼 다가 올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왕성한 숙성력등 사그란티노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2007년 사그란티노는 버섯, 타바코, 가죽, 타르, 주니퍼베리, 한약 달이는 향, 눅눅한 땅 냄새를 낸다. 달큰한 체리향과 감초향이 생동감을 준다. 견고한 타닌이 바디를 지탱하여 힘과 균형미가 샘솟는다. 조밀하게 엮인 타닌은 곧 속을 펼쳐 보일 것 같은 기대감을 증대시킨다. 타닌이 입 속에 번질 때 닿는 곳마다 수분을 빨아들이는 속도감이 전달된다.
2005년은 감초, 블랙베리, 체리, 말린 꽃, 눅눅한 숲 향기, 오크향, 타르, 젖은 흙, 건포도, 오렌지 머멀레이드, 약초 향이 실려온다. 풀보디가 주는 묵직함과 충만함 그러면서도 타닌의 치밀한 조직은 각이 잘 잡힌 바디를 연상시킨다. 타닌의 야성은 순해졌으나 빠르게 입안을 건조한다. 산미는 원만해 목 넘김이 좋고 산미 끝은 미세한 산화취, 금속 맛을 남긴다.
벽돌 쌓는 마음으로 한걸음 씩- 칸티네 브리지아렐리 Cantine Briziarelli 와이너리

몬테팔코 모자이크는 세대를 이은 와인가문 출신 조각과 와인경력이 제로인 초보자 조각이 완성한다. 이러한 무경력자의 유입은 몬테팔코 다양성을 충전하는 에너지다. 벽돌 제조업으로 성공을 거둔 브리지아렐리 가문이 몬테팔코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2000년 초반이다.
움브리아 전역에 와인생산에 적합한 토양을 3백 헥타를 사들이는데 이 중 55헥타르는 몬테팔코 북부에 위치한다. 북향에다 통풍이 잘 되는 25헥타르는 DOCG 등급에 지정된 밭이다. 서늘한 기온에 놓인 포도는 당분을 적게 축적하여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며 긴장감과 아로마를 모아주고 신선도와 정갈한 산미의 원천이다.
현 와이너리 건물은 2016년에 완성된 것으로 포도밭 토양과 동일한 진흙을 구워서 만든 벽돌로 지었다. 유기농으로 전환 중이며 사그란티노 로제를 출시한 세 명의 생산자 중 하나다. 단기목표는 사그란티노 면적을 5헥타르로 확장하는 것. 실현된다면 연 10만 병의 중간 규모급 생산자로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다.

사그란티노(85%)와 산조베제(15%)를 블랜딩해 만든 안타이아Anthaia 로제는 프로방스 로제의 살구빛이 돌며 소량의 잔당맛이 시큼 달큼한 여운을 남긴다. 균형잡힌 산미, 미네랄의 쌉쌀함이 어우러져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 라즈베리, 체리, 딸기, 장미, 자몽, 제라늄 같은 유쾌한 향기가 향연을 벌인다.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를 거친 후 바리크 숙성 12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숙성 21개월, 병숙성 및 안정화를 마쳤다. 허브, 흙 , 에스프레소, 초콜릿, 농익은 흑자두, 체리향이 그윽하다. 바리크 숙성을 했으나 오크향이 미세하며 거추장스러운 묵직함이 전혀 없다. 아직 제자리 잡지 못한 타닌은 날카로움과 조이는 느낌을 주나 조밀한 짜임새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긴장감은 와인메이커의 타닌 다루는 솜씨를 짐작케 한다. 산미에 녹아있는 경쾌한 아로마가 끝 매듭을 짓는 와인은 일 년 후의 모습에 궁금증을 일게 한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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