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몬탈치노 이벤트의 개막을 장식한 ‘붉은빛 진화-로쏘 디 몬탈치노의 기원과 미래’ 토크 쇼 장면. 맨 좌측이 토크 쇼 진행자, 좌측 두번째가 엔조 티에찌옹
레드 몬탈치노 이벤트의 개막을 장식한 ‘붉은빛 진화-로쏘 디 몬탈치노의 기원과 미래’ 토크 쇼 장면. 맨 좌측이 토크 쇼 진행자, 좌측 두번째가 엔조 티에찌옹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이 있다. 먼저 태어난 형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은 처음일 테고 이를 헤쳐나가면서 나름 세상이치를 터득했을 거다. 당연히 경험상 우위에 있는 형한테 일반인의 기대치가 기울어질 수밖에.

이 속담을 몬탈치노 상황에 빗대보자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몬탈치노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이하 부르넬로)의 본산지로 부르넬로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내노라하는 와인비평가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하지만 빛나는 칭송은 로쏘 디 몬탈치노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와인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의인법에 기대는 사람들은 부르넬로를 형에, 로쏘 디 몬탈치노를 아우에 빗댄다. 종종 우리는 아우를 망각 한다. 필자처럼 기억하지만 일부러 로쏘 디 몬탈치노를 찾아 마시려고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독자는 많지 않을 거란 얘기다.

부르넬로는 1960년대 이탈리아 와인등급이 도입됐을 무렵 최초로 DOC에 지정됐고 20년 뒤에 DOCG로 승급했다. 로쏘 디 몬탈치노는 이보다 4년 뒤인 1984년에 DOC등급을 받았다. 형의 그림자에 갇혀있던 것은 탄생한 해의 순서보다는 부르넬로 형의 인기몰이 위세가 대단했던 것에 있다.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된 등급체제 안에서 부르넬로 밑 칸에 있는 아우는 한 단계 낮은 와인이란 오해를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6월 21일 열린 레드 몬탈치노 행사의 성공적 개최에 비추어 보면 둘의 관계가 형과 아우란 틀에 꼭 들어맞지는 않다. 아우의 효용도가 낮은 가격에 있음은 더더욱 아니다. 로쏘 디 몬탈치노는 자신만의 색깔과 차별성으로 고가 럭셔리 와인의 빈틈을 공략했다. 형의 아우라를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로 홀로서기 한 아우는 형만 한 아우가 아닐지 싶다.

DOC등급을 자축하는 레드 몬탈치노 이벤트

오후 이벤트가 열린 몬탈치노 요새 정면
오후 이벤트가 열린 몬탈치노 요새 정면

로쏘 디 몬탈치노가 40개 촛불이 얹힌 생일케이크를 받았다. 올 해로 3회를 맞는 레드 몬탈치노 RED MONTALCINO이벤트가 기획한 이벤트 중 가장 꼼꼼하게 챙긴 행사다. 이벤트 장소는 올해도 산 아고스티노 성당 내 회랑과 몬탈치노 요새가 선정됐다. 오전과 오후 행사로 분리해 콘셉트와 색깔을 명확히 했다. 오전 프로그램은 토크 쇼 ‘붉은빛 진화-로쏘 디 몬탈치노의 기원과 미래’에 이어 1993년- 2017년 버티칼 시음회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토크 쇼의 개막은 엔조 티에찌(Enzo Tiezzi) 옹이 발표한 로쏘 디 몬탈치노의 탄생배경이 장식했다. 옹은 반피의 전신인 포조알레 무라, 아르자노, 콜 도르차에서 포도재배와 양조부서 책임자를 지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협회장 임기동안 로쏘 디 몬탈치노 제안부터 등급 확정까지 전 과정을 전사적으로 처리한 공로로 로쏘 디 몬탈치노의 아버지란 닉네임을 얻었다.

탄생이유가 부르넬로 밭에서 나온 레드와인

1980년대 몬탈치노는 현재와 달랐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중견급 와이너리와 이제 막 진출한 소작농 출신 극소 와이너리가 뒤 섞여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와인등급은 존재했으나 구체적인 기준이 모호해 처한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적용했다. 부르넬로는 최소 48개월 숙성을 끝내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 생산자 규모와는 무관하게 총체적 자금압박을 받고 있었다.

장기전을 버티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그 당시 협회장을 맡고 있던 엔조 티에찌와 협회 임원들은 자금난의 숨통을 트여 줄 방법을 모색하다가 부르넬로 밭에서 재배한 일부 산조베제를 떼어 내 일상와인(데일리 와인)에 사용하는 묘안을 내놓았다. 숙성기간은 1년 내로 조정하여 출시시기를 3년 앞당겼다. 그러나 생산공정에 필수인 품질 관리나 절차는 부르넬로 기준을 따랐다. 이 와인을 부르넬로 밭에서 나온 레드와인( Rosso Dai Vigneti di Brunello)이라 호칭을 했고 DOC 등급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몬탈치노에서 벌어진 일들은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다. DOC로 이미 지정된 부르넬로 밭에서 제2의 등급 와인을 만들겠다는 결의는 법에 저촉되었다. 거기다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을 시간이 부족해 생산자들이 임으로 제작한 DOC 등급 병목띠를 부착했는데 이는 마치 자기가 만든 와인을 자신이 검사하고 인증마크를 달아주는 행위였다. 당시 유럽규정은 등급에 지정된 와인 명칭(Brunello)을 제삼자가 무단사용하는 걸 금지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무모함이 생산자를 돕기 위한 선한 의지의 발현이었음을 증명했고 당국은 Rosso Di Montalcino로 채택하고 DOC신청을 승낙하는 것으로 일단락 맺었다. 앞의 과정은 짧은 숙성 주기를 갖고도 상위등급 와인의 품질을 지닌 DOC급 와인의 시대를 여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들을 비난했던 여러 와인협회도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탄생 의도대로 밭을 일치시킨 티에찌의 부르넬로와 로쏘 디 몬탈치노. 부르넬로는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
탄생 의도대로 밭을 일치시킨 티에찌의 부르넬로와 로쏘 디 몬탈치노. 부르넬로는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

엔조 티에찌옹은 자신 성과 동일한 와이너리를 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전 건물명이 포데레 소코르소Podere Soccorso 라 불리던 5헥타르 밭이 둘러 싼 농가를 개조한 건물이다. 몬탈치노 요새에서 도보로 15분 걸 릴 정도로 몬탈치노에서 지척이다. 포데레 소코르소는 1870년에 와인 라벨에 부르넬로를 새겨 넣어 부르넬로 선구자로 칭송받고 있는 고인 리까르도 파카니니가 소유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옹은 탄생 의도대로 로쏘 디 몬탈치노 밭과 부르넬로 밭을 일치시켰다. 부르넬로 크뤼인 포조 체리노 밭에서 부르넬로 다루 듯 똑같은 영농법으로 키운 산조베제로 만든다. 발효와 침용 기간도 20일, 슬라보니아산 오크에 숙성한 것도 똑같다. 다만 숙성기간을 12개월로 단축시켰고 부르넬로 명칭을 뺀 것만 제외하고 라벨 디자인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로쏘 디 몬탈치노의 현주소

한 등급 낮은 와인이 아니라 젊은 산조베조로 우뚝 선 와인은 어려서 마시기 좋고, 풍미가 즉흥적이며 직관적인 데다가 접근 문턱을 낮춘 친근한 와인이다. 부르넬로가 미래의 와인이면 로쏘 디 몬탈치노는 현재의 와인이다.

오크숙성 의무와 마개에 대한 제약을 따로 두지 않아 수확한 다음 해 9월이면 시중에 유통된다. 이런 융통성은 생산자가 창의성을 발휘해 와인에 독특한 개성을 입힐 수 있는 여력을 준다. 오래된 수령을 십 분 발휘해 숙성력을 보강시킨 와인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초에 등급밭 확장과 병입와인 생산량을 늘리는 법안도 통과됐다. 기존의 519,7헥타르보다 60% 늘어난 364헥타르를 추가한다는 파격적인 안이다. 이 안의 수혜자는 산조베제 밭 DOC 등급신청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던 밭 소유주들이다. 새로 구입한 밭은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톡톡 튀는 MZ세대 감성 현장

몬탈치노 요새가 무대가 된 오후 행사는 로쏘 디 몬탈치노의 타깃 고객 층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래의 부르넬로 잠재고객층인 MZ세대를 겨냥했다. 중세의 둔탁한 벽이 사각형으로 두르고 있는 요새 경내에 설치된 스피커는 팝, 록 뮤직을 흘려보냈다. 조명 빔을 받은 성벽은 화려한 무지개 빛을 반사했다. 참여한 와이너리가 67여 군데. 시음 코너는 아르자노, 반피, 콜 도르차, 마스트로얀니, 탈렌티, 포조 디 소또 등 굴지의 생산자들이 MZ 세대에 어필하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차가운 와인 한 잔과 DJ가 선곡한 락큰롤에 몸을 맞긴 채 댄스에 열중하는 M세대도 보였다. 마치 언더락 로쏘 디 몬탈치노가 어울릴 것 같은 감성이 젖어들었다. 피자, 핑거푸드, 꼬치, 라자냐, 샐러드 같은 가볍고 먹기 편한 음식을 쌓아 올린 키오스크는 향기로운 냄새를 잇다라 발산했다. 밤 10시 30분을 기해 칵테일, 믹소로지(개성이 다른 주류를 2개 이상 칵테일한 음료)가 추가됐고 한층 댄스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즉흥과 현재를 뛰어넘어- 31년을 압축한 로쏘 디 몬탈치노 시음회

행사 주최자인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협회는 최장 빈티지가 1993년, 최소 빈티지가 2017인 로쏘 디 몬탈치노 버티칼 시음회를 마련했다. 부르넬로밭 세대부터 따로 DOC로 지정된 밭에서 자란 세대를 안배한 리스트를 보는 순간 40년을 담아 논 압축 파일을 푸는 키워드가 내 손에 쥐어진 듯한 전율을 느꼈다.

1993년(포조 안티코 Poggio Antico 와이너리)은 색소의 침전으로 인해 빛의 각도에 따라 루비빛 또는 연한 브라운 빛이 돌았다. 감초, 타바코, 타르, 버섯, 동물 가죽향이 배어있다. 산미가 다소 도드라지나 타닌과 구조의 단단한 결속에 힘입어 꼿꼿한 밸런스와 강한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2006년(카프릴리 Caprili)은 톡 쏘는 허브, 감초, 버섯, 가죽, 에스프레소, 시나몬 향기 융단에 녹아있는 농익은 과일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숙성력을 빛나게 하는 매끈한 타닌과 경쾌한 산미가 잇따른다. 셰리주를 혀로 굴리는 순간 번지는 견과류와 바다의 짠 내음이 입안에 감돈다.

2009년 (포조 디 소토 Poggio di Sotto)은 한약 달인향, 트러플, 감초가 농후하고, 숲의 청량한 향기, 화이트 와인의 핵과일 향기 등 서로 충돌하는 향기가 기묘하게 어우러졌다. 절정기에 달한 타닌의 섬세한 표현, 정갈한 산미는 기품이 돌았다. 2014년 (우첼리에라 Uccelliera)는 오크향, 허브, 매콤한 스파이시 향이 코끝에 닿는 순간 정신이 맑아진다. 날카로운 각의 산미와 팽팽한 촉수를 세운 타닌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추운 여름의 테루아를 온전히 담은 2014 빈티지가 앞으로 펼쳐 보일 신선함과 우아함이 기대된다. 2015년(파토리아 델 피노 Fattoria del Pino )은 체리, 라즈베리, 흑자두, 바이올렛, 케이퍼향이 유혹한다. 매끈한 타닌결과 산미가 전성기에 도달해 목 넘김이 편하고 농익은 과실의 잔향이 입안을 떠나 줄 모른다.

2016년 (세스티 Sesti) 붉은빛 와인이 장미, 타바코, 염분 향, 핵과일, 블러드 오렌지향을 터트린다. 미각을 빠르게 붙들어 매는 타닌의 집중감과 빈틈없이 채워진 구조가 발산하는 힘을 만끽할 수 있었다. 2016년 (반피 Banfi) 의 붉은빛이 육감적이다. 색깔과 매칭한 듯한 체리, 라즈베리, 딸기잼 같은 붉은 과일과 스파이시, 주니퍼베리,오크향의 행복감에 빠져든다. 조밀한 속살과 유연한 결을 지닌 타닌, 적당한 산미는 와인에 생동감을 선사한다. 2017년 (볼리에로 Voliero)는 블러드 오렌지, 핵과일, 타바코, 흑자두, 건과일 향이 직관적이다. 뜨거운 여름의 농축미와 에너지가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러 힘을 조절하는 산도와 섬세한 양조 기교가 차분하게 균형을 잡아준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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