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움브리아주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와인의 새 빈티지 공개 전담 창구를 맡았던 안테프리마 사그란티노가 작별을 고했다. 특정 와인 발표회로 국한됐던 기존 포맷만으로는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트렌드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이 중단 이유다.
이를 대신할 행사는 ‘아 몬테팔코 A Montefalco’다. A는 알파벳의 첫 자이며 최초, 즉 원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지 표현이다. 또한 A가 지명 앞에 오면 특정 장소의 현재 시점으로 의미 변환이 일어나는데 이는 이탈리아 와인계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는 몬테팔코 지역의 역동적인 현재를 압축시켜 놨다.
6월 12일과 13일 열린 ‘아 몬테팔코’는 사그란티노 새 빈티지 시음회 기존 포맷에 덧붙여 사그란티노의 원조인 파시토 재발견, 와인 미디어의 극찬을 받고 있는 트레비아노 스포레티노의 새 빈티지 공개 및 생산자 방문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사그란티노 탄생과 현재가 공존하는 몬테팔코
개막식은 몬테팔코 시민이 성지로 받들고 있는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열렸다. 몬테팔코는 사그란티노 와인과 막역지간이다. 사그란티노(Sagrantino)의 사그로는 신성함(sagra)과 매(falco)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프리드리히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둘을 연결하는 매듭역할을 한다. 황제가 애지중지하는 신성한 사냥매가 불시에 병을 앓게 되었는데 사냥터 인근 마을의 민간요법으로 만든 와인을 마신 매는 완쾌했다. 이 특효약의 원료는 제비꽃을 우린 달콤한 와인(비오라체움)으로 후에 사그란티노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사냥터가 있던 마을은 매의 산이란 뜻의 몬테팔코로 개명했다.
14세기 초반(1335~1338)에 설립된 산 프란체스코 성당은 프란체스코 성인에 봉헌된 건물이다. 제단 후진의 움푹 들어간 벽감 안에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생을 묘사한 벽화로 장식돼있는데 피렌체 출신의 르네상스 화가 베노조 고졸리가 15세기 중반에 그렸다. 성당 지하에는 사그란티노를 최초로 재배했고 이를 미사주로 올린 프렌체스코 수도사들이 사용하던 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개막식은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2020 빈티지 점수 공개로 막이 올랐다. 영국 출신의 와인 평론가이자 이탈리아 통신원, 디켄터 매거진 기고가이기도 한 월터 스펠러 (Walter Speller)는 2020 빈티지를 5 스타 빈티지(100점 만점 96점)로 평가했다. 스펠러는 2020년 작황을 ”겨울은 비가 자주 내렸고 봄 기온은 덥고 건조했다. 일부 언덕저지대는 서리와 한파를 겪어 생산량 감소를 감수해야 했다. 6월의 잦은 비는 기온을 평년 수준 이하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9월 들어 온화한 날씨를 회복했고 비가 내리지 않아 포도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완숙에 달해 예년처럼 10월 달에 수확을 마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 2020년 작황을 함축하는 키워드는 균형이다. 특히 타닌과 알코올 도수의 균형이 괄목할만 했는데 무겁지 않고 우아함을 지니면서도 청량한 산미가 받쳐준다” 라고 곁들였다.

이어, 에티케타 다우토레 (Etichetta D’Autore) 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본 대회는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와인협회가 주관하며 와인과 예술을 접목해 몬테팔코를 도시로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올해는 적색과 청색 대비와 선과 곡선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쟈다 리치(Giada Ricci)의 작품이 우승했다.

크리스티나 메르쿠리(Cristina Mercuri) WSET 디플로마 와인 에듀케이터가 진행하는 마스터클래스로 이어졌다. 메르쿠리는 변호사 출신으로 2015년 와인 업계에 진출한 이래 러브 콜을 가장 많이 받는 와인 강사 중 하나다. 현재 마스터 오브 와인 과정을 이수중이며 그녀가 험난한 시험의 장벽을 통과하여 이탈리아 1호 여성 MW가 될지 초유의 관심을 얻고 있다.

다음은 “ 맛과 향을 초월- 타닌으로 이해하는 와인품질 Beyond Flavors- Understanding Wine Quality by tannin)”이란 제목으로 진행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나는 화이트 와인을 산미로 이해하고 레드 와인은 타닌으로 깨닫는다. 산미는 형태, 양, 표현 방식, 힘(power)을 통해 이해된다. 산도가 와인에 녹아들 때 표출하는 맛의 언어들을 감지하려 애쓴다. 타닌은 양, 질감(texture), 완숙도, 형태(shape)로 이해되며 타닌이 입에 남기는 여운이 중요하다. 기분 좋은 여운, 쓴맛, 말리는 느낌, 매끄러움, 부드러움이 여기에 해당된다.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는 산지별 자연조건이 다양성을 결정한다. 이탈리아 중부에 속해 대륙성 기후권에 속하지만 각자 고유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1992년 Docg로 승급한 390헥타르 포도밭은 5개 지역으로 쪼개진다. 밭은 해발 250~450 미터에 조성돼있고 신생대 3기에 형성된 복잡한 해양성 토양이 토대를 이룬다. 입자 크기와 조성이 다른 토양층과 동일한 시대에 퇴적된 단조로운 지층들이 불규칙적으로 분포돼 있다.
몬테팔코 주변은 점토와 모래 혼합토로 섬세하며 다채로운 풍미와 질감이 부드러운 사그란티노가 특색이다. 반면 베바냐(북동)는 주된 토양이 점토로 날씨가 건조하고 덥더라도 물부족에서 자유롭다. 잔노 델 움브리아(남쪽)는 모래와 자갈이 풍부해 배수력이 우수하다. 북서에 위치한 괄도 카타네오는 석회석이 주된 이회토로 구조와 질감이 강건한 타닌이 특징이다.
사그란티노는 태양을 좋아하나 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껍질이 두껍기 때문에 섬세하고 매끄러운 타닌을 얻으려면 동향이나 북향 밭에서 천천히 완숙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세계적인 영농학 연구소 마크 재단(Fondazione Mach)이 2천 년 초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사그란티노는 타닌 함량으로는 세계 1, 2위를 다툰다. 하지만 타닌 분자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지녀 정형화된 타닌 제어 방법이 정립되지 못했다.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2020 빈티지 주관적 평가
올 해의 시음 리스트는 190여 종으로 풍성했다. 몬테팔코 5대 지역이 원산지인 등급와인과 확장된 등급 와인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이들 중 필자는 몬테팔코 사그란티노와 몬테팔코 로쏘, 트레비아노 스포레티노(Trebbiano Spoletino) 와인 시음에 집중했다.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2020년 빈티지
‘아 몬테팔코’가 새로 시도한 결정 중 하나가 오크 숙성 중인 와인은 시음 리스트에서 빼기로 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힐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사그란티노의 긴 숙성 사이클 관점에서 볼 때 4년의 의무 숙성기간은 짧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았다. 의무 숙성을 마친 와인은 드물고 대부분의 와인이 병숙성 마지막 단계 거나 이제 막 병입했다. 12개월 추가는 기본이고 디오니지나 아단테 와이너리는 출시를 10년 후로 미루는 곳도 있다.
시음 리스트는 2020년 산 29종류, 2019년부터 2014년까지 50여 종으로 구성돼 있었다. 시장에 선보인 새 빈티지와 이전 빈티지를 나란히 배치해 넓은 시야를 갖고 긴 호흡으로 새 와인과 대면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20년은 유독 과일향이 도드라진다. 체리, 흑자두, 블랙베리, 라즈베리가 선명하며 허브, 야생초, 오리엔탈 허브, 장미, 바이올릿, 키나(Quinine) 향이 잔잔히 퍼진다. 단기 침용과 소형 오크통에 숙성한 경우 농밀한 과일향과 오크향, 초콜릿, 바닐라 같은 현대적 터치를 더 했다.
타닌이 미치는 영역은 입안 전체보다는 혀 주변에 몰린다. 밸런스 잡힌 산미와 어우러진 타닌은 산뜻한 바디감을 준다. 뜨겁거나 조이는 듯한 촉감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중심이 곧게 선 반듯한 구조와 팽팽한 하프 줄 같은 긴장감이 전달된다. 씹히는 질감과 충만감은 입안에 무겁게 내려앉거나 다른 맛을 덮지 않는다. 시간을 갖고 제대로 완숙한 타닌은 입안을 촉촉한 과즙으로 채워주어 음용감이 뛰어나다.
2019년도가 좋은 퍼포먼스를 펼쳤다. 다채로운 풍미가 제대로 맛이 들었고 잘 다듬어진 타닌결이 돋보였다. 바디의 선도 훨씬 유연해졌고 산미가 배어든 과즙에 생기가 돌았다. 타닌이 혀에 닿는 순간 치밀한 조직이 미각을 채웠다. 2019년은 2020년처럼 5스타를 받은 역대급 빈티지다. 하지만 작년에 단단히 뭉쳐있던 조직이 일 년 만에 훨씬 조화롭게 다듬어져 유려한 느낌을 자아냈다.
2020빈티지는 몇몇 와이너리가 다년간 실행해 온 실험적 양조법이 결실을 맺어 미디어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르날도 카프라이의 바리크 수평 회전 발효기술, 테누타 부온카스텔로는 3차원 알코올 발효를 들 수 있는데 2편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몬테팔코 로쏘 2022, 몬테팔코 로쏘 리제르바 2021
이탈리아 레드 DOCG 와인은 좀 더 순한 버전 DOC 와인과 짝을 이룬다. 숙성 기간이 길고 그로 인한 가격상승을 감수해야 하는 DOCG에 비해 짧은 숙성을 한 DOC는 음용성과 가격 접근성을 동시에 만족한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랑게 네비올로와 짝을 이루고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는 로쏘 디 몬탈치노가 있다면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는 몬테팔코 로쏘가 있다. 일명, 베이스급, 세컨드 레벨 또는 작다는 수식어 베이비(베이비 바롤로…)가 따라온다.
그러나 로쏘 몬테팔코는 이런 정의에 들어맞지 않다. 일단 주품종이 산조베제이며 DOCG일 때 주역을 맡았던 사그란티노는 조연으로 물러난다. 사그란티노는 소량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가톨릭 명절에나 개봉하던 성스런 와인인데 반해 산조베제는 평일 식탁에 오르던 서민 와인의 풍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오크숙성 의무가 없는 몬테팔코 로쏘와 오크 숙성한 리제르바의 두 종류가 있다. 산조베제는 최소 60% 최대 80% , 사그란티노는 최소 10% 최대 25%를 혼합할 수 있다. 사그란티노 타닌에 유연한 맛을 주기 위해 메를로 (최대 30%)를 넣기도 한다. 산조베제는 과일과 꽃의 신선함과 발랄함에 기여하고 사그란티노는 보디와 색깔을 주기 위해 첨가하는데 약간의 메를로를 혼합하면 여운에 벨벳감을 증진한다.
체리, 라즈베리, 산뜻한 산조베제 과일과 메를로의 후추, 파프리카, 블랙베리, 자두, 블러드 오렌지의 사그란티노가 향연을 벌인다. 경쾌한 산미와 붉은 과일의 청량감이 더해진다. 어리면서도 매끄러운 타닌은 생동감 그 자체며 잘 익은 타닌과 빚어내는 조화가 만족도를 끌어올린다.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을 해 고급스럽고 촘촘한 타닌이 주는 밀도가 느껴진다. 산도, 타닌, 미네랄이 밸런스를 갖추어 세련된 분위기의 식단에 그만이다.
스포레토 트레비아노 스포레티노 Doc 와인Spoleto Trebbiano Spoletino Doc(2023~2020)
스포레티노 품종은 레드와인 생산량이 75%를 차지하는 몬테팔코 생산자들로 부터 여신이란 별명으로 얻을 만큼 인기가 치솟는 와인이다. 최근 5년 사이의 현상인데 급물결을 탄 이유는 사그란티노가 다년간 숙성이 필요한데 반해 트레비아노 스포레티노는 단기간 안정화만 거치면 마시기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트레비아노 스포레티노의 빠른 자금 회전력이 사그란티노의 긴 숙성기간을 부양한다.
규정상 최소 함량비율 85%지만 대부분 와인이 단품종으로 출시된다. 어떠한 양조법과도 궁합이 잘 맞고 여기에 생산자의 창의성과 만나면 새 스타일을 무궁무진하게 연출할 수 있다. 닌니 와이너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숙성을 잠시 하고 병 안에서 오래 안정화시킨 와인은 순도 높은 복숭아, 살구, 서양배, 자몽향을 내며 예리한 산도와 미네랄이 어우러진 깔끔하고 정선된 기품을 보인다. 콜 산토 와이너리가 바리크 숙성한 화이트는 농후한 열대과일, 바닐라, 리치, 카모마일의 풍만함과 바닐라와 오키의 부드러움이 미각을 사로잡는다. 투명한 황금빛, 신경을 사로잡은 날카로운 와인은 집중도가 뛰어나고 여운에 미네랄의 쌉쌀한 맛이 오래간다. 완숙한 포도를 좀 더 놔두어 늦수확한 와인을 효모앙금과 섞어서 숙성하면 생강, 복숭아, 카모마일, 견과류의 복합미가 증진된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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