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7살의 나이에 세계 소믈리에 경기대회에서 우승한 이탈리아의 엔리코 베르나르도(Enrico Bernardo)는 『How Wine -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에게 배우는 와인 맛보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판된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와인은 여행이다.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땅의 개척자나 다름없다. 황금을 찾고 새로운 수맥을 찾는 사람이다.”
와인이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황금을 찾고 새로운 수맥을 찾는다는 표현은 사실 와인을 마시는 사람보다는 와인 수입업자에게 더 어울릴 것이다. 대부분의 수입사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이 가장 유명한 와인산지에서 우선적으로 와인을 찾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수입사도 있다.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와인산지에서 와인을 수입할 경우 처음에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몰디브와 자주 혼동되는 동유럽의 작은 국가 몰도바의 와인을 국내에 처음으로 수입한 차르와인의 이수호 대표를 만났다.
“2006~2008년 시기에 유럽출장을 갔을 때 덴마크의 플랜트 사업 비즈니스 파트너가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이 아니어도 훌륭한 와인이 있다고 말하면서 내놓은 와인이 몰도바의 푸카리(Purcari) 와이너리가 생산한 와인이었죠. 그런 계기로 처음에는 회사선물용으로 푸카리 와인을 수입했는데 점차 종류가 많아지고 구색이 갖춰졌습니다. 2011년경에 국내시장 개척을 위한 유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몰도바 와인이 이와 같이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이 되었다. 어려움의 시작이었고, 그 어려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2015년경 까지만 해도 호텔, 레스토랑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몰도바 와인은 아주 생소했습니다. 몰도바의 지리와 역사를 중언부언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접하게 된 소믈리에들은 와인의 히스토리와 가성비에 매력을 느껴서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푸카리 와인을 찾아주는 기업이나 단체의 고객과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일반 고객들은 낯설어 하고 몰도바를 몰디브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도 와인은 좋은데 고객들에게 생소하다는 이유로 구매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모든 와인애호가가 몰도바라는 나라를 알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필자가 2020년에 출판한 몰도바 와인에 대한 책과 출판 이후 꾸준히 해온 몰도바 와인에 대한 세미나가 몰도바 와인을 수입하는 수입사들의 다각적인 노력과 더불어 몰도바 와인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수호 대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2020년에 『몰도바 와인』 책이 출판된 것을 계기로 몰도바 와인에 대한 세미나가 활발해지면서 업계 내에 인지도가 많이 올라감에 따라 와인을 즐기는 대중들의 몰도바 와인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져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와인의 경우, 한번 접한 고객이라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도바 와인을 수입하는 수입사의 대표가 이 나라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이수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몰도바는 공산주의 종주국의 한 연방이었다는 사실로 첫 방문시에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 들어왔구나 하는 묘한 감정과 함께 도심 곳곳의 남루한 벽들이 프로파간다(Propaganda)성 선전물처럼 느껴지고는 했지만, 낮은 구릉들로 이루어진 경작 지대들이 안온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역사가 없어서인지 만나는 사람들의 성정도 착합니다.”
그런 나라에서 만든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은 어떠할까?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와인산업을 부흥시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가열차고, 수천 년 전 고대의 조상 이래로 포도주를 담고 마셔온 DNA를 받아서인지 유럽 주류국가의 양조기술을 접목하여 질 좋은 새로운 와인들을 개발하는 기량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옛날 몰도바에서는 “영혼을 치유하는 와인을 담는 장인“을 Black Doctor라고 불렀습니다. 몰도바 사람들에게 있어서 와인은 그 자체로 그들의 영혼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내게 몰도바 와인은 유럽의 럭셔리한 명품샵들이 즐비한 거리의 한 모퉁이를 살짝 돌자 숨은 듯 자리한 근대의 고즈넉한 유물가게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 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와인입니다.”
차르와인의 이수호 대표가 몰도바 와인을 국내에 처음 알린 사람이라면 몰도바 와인의 명성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와이너리는 그의 파트너인 푸카리 와이너리다. 푸카리는 몰도바의 와이너리 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다.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가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첫 계기가 되었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제15권에서는 푸카리 와인을 “영국 왕실에서 사랑하는 몰도바공화국의 숨은 명주”라고 소개했다. 네그루 드 푸카리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절부터 영국의 왕실에 납품되고 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에도 사용되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즐겨 마셨고, 2013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방한 시 행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식적인 푸카리의 역사는 1827년에 시작되었다. 몰도바가 제정 러시아에 속했던 베사라비아(Bessarabia) 시절인 1827년 제정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특별 칙령을 통해 푸카리를 베사라비아의 최초 전문화된 와이너리로 지정했다. 푸카리가 몰도바 최초의 와이너리이며 푸카리의 역사가 1827년에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푸카리 와이너리는 마찬가지로 몰도바에 있는 와이너리 보스타반(Bostavan)과 와인 브랜디인 디빈(Divin)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와이너리 바르다(Bardar), 루마니아에 있는 와이너리 크라마 쳅투라(Crama Ceptura)와 함께 2003년부터 Purcari Wineries Group을 형성하고 있다. 차르와인은 푸카리 이외에 보스타반의 와인도 수입하고 있다.
현재 수입되고 있는 와인 중에서는 네그루 드 푸카리와 더불어 『신의 물방울』에서 소개된 피노 누아 드 푸카리(Pinot Noir de Purcari)와 보스타반의 다오스 카베르네 소비뇽(Daos Cabernet Sauvignon)이 가장 잘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수호 대표가 이 와인들 이외에 와인업계 종사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와인은 몰도바, 조지아, 우크라이나의 토착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든 푸카리의 프리덤 블렌드(Freedom Blend)와 보스타반의 뉴 몰다비안 밸리 까베르네 소비뇽(New Moldavian Valley Cabernet Sauvignon)이라고 한다.

이수도 대표의 꿈은 몰도바 와인에 그치지 않는다. 푸카리와 보스타반의 새로운 와인들을 추가, 보완하면서 루마니아, 불가리아, 조지아 등의 와인을 발굴해서 명실공히 질 좋은 동유럽 와인을 전문으로 다루는 수입사로 발전하고 싶어한다. 우리의 와인시장이 이제는 많이 성숙해서 동유럽 와인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그의 꿈이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박찬준 대표
㈜디렉스인터내셔날 대표이사
Break Events의 한국 대표
와인 강사, 와인 컨설턴트
아시아와인트로피 아시아 디렉터
아시아와인컨퍼런스 디렉터
동유럽와인연구원 원장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국제협력)
다수의 국제와인품평회 심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