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비아 와이너리의 테사리 자매가 이 루오기 라인을 발표하는 장면- 왼쪽부터 메리, 알레산드라, 발렌티나
수아비아 와이너리의 테사리 자매가 이 루오기 라인을 발표하는 장면- 왼쪽부터 메리, 알레산드라, 발렌티나

스타급 와인들이 천상에 박힌 보석처럼 빛을 반짝이는 소아베 와인 세계에서 테사리 자매들이 확고한 팬덤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출발점과 회귀점이 찍는 마침표가 토양이다. 그녀들이 일치시킨 감각의 촉수는 화산토를 겨냥하고 있다. 촉수의 레이더는 소구역에 내재한 미세한 토양, 고유의 자연을 예리하게 감지해 낸다. 이들의 감각이 타고났거나 아니면 반복된 일을 하면서 획득한 자질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무엇이든 그녀들의 소아베 와인은 개별 풍미가 지닌 미묘한 차이의 간극을 유지하며 고유한 풍미는 유일함으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면 메리, 발렌티나, 알레산드라 자매가 발군의 끼를 발휘한 분야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먼저 그녀들이 출시한 6종의 와인은 하나같이 단일 품종을 지향한다. 주력와인인 소아베 클라시코와 레초토 디 소아베는 오직 가르가네가 품종만 넣었고, 2종의 베로나 IGT 와인은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로만 만들었다.

자매가 운영하는 수아비아 와이너리의 밭은 소아베 클라시코 지역에 몰려있다. 소아베 지역은 토질과 형성시기에 따라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으로 이분된다. 동쪽 언덕은 지구 면적의 1%밖에 안 되는 매우 희귀한 현무암토다. 현무암이 장기간 대기에 노출되면서 산화와 변질을 겪은 화산토로 포도에 강렬한 미네랄과 산미 캐릭터를 부여한다.

피타 Fitta’ 의 현무암토 단면. 맨 밑의 회색 부분이 현무암 모재, 그 위의 층은 모재가 퇴적이나 산화 작용에 의해 변성을 거듭한 뒤 진화한 적색토다
피타 Fitta’ 의 현무암토 단면. 맨 밑의 회색 부분이 현무암 모재, 그 위의 층은 모재가 퇴적이나 산화 작용에 의해 변성을 거듭한 뒤 진화한 적색토다

그녀들은 레드와인은 전혀 관심 없다. 소아베에서 발폴리첼라 레드와인 산지가 지척이라 마음만 먹으면 레드 라인에 투자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이들은 품종 늘리기보다는 토착 화이트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주어진 조건은 화산토이고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품종은 세대를 거쳐 검증된 가르가네가와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뿐이란 확고한 신념이 세 자매의 동기부여 코드다.

그녀들의 차별성은 포도재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30헥타르의 밭은 조상들이 개발하고 착오와 수정을 반복한 뒤 정착된 페르골라 수형을 고집하고 있다. 페르골라 자체는 네 개의 기둥이 떠 받치고 있는 평편한 지붕을 말한다. 그러나 와인 용어로 사용되면 포도나무 형태를 잡아주는 수형을 의미하며 한글의 ㄱ(기역 혹은 뒤집은 모양 ) 자 형태를 취한다. 페르골라로 키우면 포도는 직선으로 자라다가 꺾이는 부분부터 잎과 열매를 맺는다. 페르골라와 사람을 나란히 세우면 포도가 머리 위에 넝쿨을 드리우고 있는 형상이다.

자매 중 막내인 알레산드라는 한 때 귀요가 유행할 때 이에 휩쓸리지 않고 페르골라를 고집하길 잘했다고 토로했다. “ 다들 관리가 쉬운 귀요방식으로 갈아타기 위해 페르골라를 허물었죠.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상황은 페르골라에 점점 유리해지고 있어요. 페르골라는 기온 상승이 촉발한 여러 문제들을 최소화하거나 제어가 가능해요. 잎이 3겹이상 덮여있어 직사광선을 차단해 포도의 화상이나 이른 완숙을 억제하죠. 또한 잎이 드리우는 그늘은 통풍효과를 높여 노균병 침투가 쉽지 않죠. 지붕은 지표의 습기 증발을 억제해 뿌리가 항상 물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죠 ”.

자매들의 소울 메이트, 소아베 마을

소아베 성과 성벽
소아베 성과 성벽

수아비아 와이너리는 소아베 마을에서 북동방향으로 9km거리에 있다. 수아비아는 소아베의 고어다. 소아베는 성곽도시로 베로나 중세시대의 전능적인 존재, 델라 스칼라 가문이 14세기말에 축성했다. 마을의 지형을 따라 설계된 성벽의 곡선은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성벽이 마을에 순응한 것처럼 보인다. 마을을 일주하던 성벽이 마을 정상에 도달하면 단아한 성채건물이 우뚝 서있고 그 주변을 포도밭이 원형극장처럼 두르고 있다.

테사리 가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소아베 동쪽 언덕에 자리 잡은 콘트라다 피타(Contrada Fitta’)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왔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서 포도농부로 전향했고 품질이 월등한 포도는 인근의 협동조합 와이너리에 판매하 곤 했다. 그러다 세 자매의 부모세대에 이르러 재배한 포도를 직접 양조하기 시작했다.

한날 태어난 쌍둥이라도 기질이 제 각각인데 세대차가 심한 자매가 같은 업종에 뛰어드는 일은 흔치 않다. 이에 큰 언니 메리는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돼 듯 가업을 잇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고 추억한다. “ 어릴 때부터 우리 자매는 아무리 사소한 밭 일이라도 정성을 쏟아붓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어요. 아버지의 철처함은 우리의 롤 모델로 굳었고 이는 지역성을 표출하는 소아베를 추구하는 자극제로 작용했어요”.

자매들의 유년기 추억은 와인 병 선택에도 반영되었다. 수아비아의 모든 와인은 일명 피아스코라 불리는 전통 병에 담긴다. 추억 속에서 할아버지는 식전주로 피아스코 병에서 따른 와인을 빵과 같이 드시곤 했다. 병의 외관은 정교한 기술로 마감했다. 입구를 스크류 캡으로 막아 시판 당시의 완벽한 상태를 지켜주는 것. 수아비아 와인은 어려도 매력이 뛰어나지만 10년 지나면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이 임무를 탈없이 완수하는 데 있어 마개의 성능은 핵심이다 . 스크류 캡은 악취를 일으키는 불청객인 TCA(트리클로로아니솔) 를 제거한 검증된 마개다. 또한 캡 내부에 부착된 라이너가 산소 유입량을 자동조절해 미량의 산소가 병 안에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한마디로 병 숙성 전용 안심 마개다.

화산토양의 크뤼 시대를 열다

9월 29일 오전 9시, 소아베 마을에 소재하는 소아베 와인컨소시엄 내부. 테사리 자매가 5년 전에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공개하는 날이다. 프로젝트 명은 ‘그 장소’란 뜻의 ‘ 이 루오기 (I Luoghi, The Places)다. ‘그 장소’는 그녀의 선조들이 살아온 과거이자 그녀들의 현재 삶이 펼쳐지고 있는 화산토다.

소아베 지역 동쪽 언덕은 북이탈리아 와인 중 화산토양이 원산지인 등급지역이다. 지질시대가 약 6천 5백 만 년 전에서 2천만 년 전(신생대 3기)에 닿아 있다. 이때는 유럽 대륙이 망망대해에 잠겨있던 시절로 베네토주 북부와 알프스 산자락이 만나는 접점에 용암이 자주 분출했다. 용암을 게워낼 때마다 새로운 봉오리가 생기거나 기존의 봉우리 위로 현무암 층이 얹혔다. 해저 현무암 지대는 1천2백만 년 전 융기운동에 의해 수면으로 솟아올랐다. 육지가 된 현무암은 퇴적작용이나 산화에 의해 변성을 거듭한 끝에 현재 상태로 진화했다.

양조를 전담하는 발렌티나와 주제페 벤초리니 토양학 교수가 5년에 걸쳐 30헥타르의 토질 및 토양 입자와 크기, 배수력을 면밀히 조사했다. 이후 경사도, 밭의 방위, 밭 주변의 산세와 수종을 종합해 세 군데의 구획을 선별해 냈다. 피타, 카스텔라로, 트레메날토 등 3군데 밭으로 다 합쳐봐야 4 헥타르에 약간 못 미친다.

이 루오기 프로젝트는 화산토양에 크뤼밭 세분화 기준을 적용한 첫 사례임에 의미를 둘 수 있다. 화산토란 일반적 정의에 파묻혀 있던 현무암을 서로 차별되는 미세한 특징들을 끄집어낸 것이다. 프로젝트 덕분에 햇빛을 보게 된 3군데 포도밭도 2020년 전까지만 해도 소아베 클라시코로 혼합됐었다.

UGA트렌드를 반영한 이 루오기 라인

이 루오기 라인에 선발된 밭은 UGA 트렌드를 반영했다. 소아베 와인협회는 소아베 토양을 15년간 면밀히 조사한 끝에 소아베 UGA 지도를 완성했고 이를 2017 이탈리아 정부가 승인한 크뤼제도다. 풀어서 쓰면 추가적 지리단위 (Unita’ Geografiche Aggiuntive)로, 고유하며 특징적인 미세 생태계를 구현한 밭을 인증하는 제도다. UGA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라벨에 이를 명시할 수 있게 했고 유럽연합의 승인도 받았다. UGA에 등록된 밭은 33개로 이들 중 29개가 소아베 클라시코(동쪽 언덕)에 집중돼있으며 나머지 밭은 서쪽 언덕에 산재해 있다. 피타, 카스텔라로, 트레메날토는 UGA에 등록된 밭으로, 이 루오기는 2017년 규정이 발효된 이래 출시된 최초의 UGA 라인이라 할 수 있다.

소아베 와인협회가 완성한 UGA 지도. 적색 원이 보여주는 곳이 피타, 카스텔라로,트레메날도 크뤼
소아베 와인협회가 완성한 UGA 지도. 적색 원이 보여주는 곳이 피타, 카스텔라로,트레메날도 크뤼

본 라인은 모두 동일한 양조방식을 적용해 양조방식이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했다. 10월 중순에 손수확한 가르가네가를 보름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내부 온도를 15~18도를 유지하면서 알코올 발효를 했다. 발효가 종료되면 효모앙금과 와인을 주기적으로 저어주면서 6개월 놔두었다. 효모앙금을 걷어 낸 상태에서 6개월 더 숙성한 후 병숙성 (2년)을 추가했다. 알코올 도수는 똑같이 12.5%다.

이 루오기 라인의 피타, 카스텔라로, 트레메날토는 개별적인 밭이 모여 소아베 클라시코란 큰 그림을 완성하므로 세트로 구성했다. 첫 빈티지는 2020년이며 2천 세트가 출시됐다.

이 루오기 라인
이 루오기 라인

Soave Classico Doc 2020 Fitta’ 소아베 클라시코 Doc 2020 피타

수아비아 와이너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1헥타르 크기 밭이다. 해발 240~255미터 대에 위치하며 남향이나 일부 동쪽 밭은 급경사라 계단식으로 조성했다. 경사도는 15%에서 45%로 다양하다. 1943년에 식목한 수아비아의 최장수 목이다. 토양의 45 퍼센트가 점토로 된 변질 현무암(altered vulcanic soil) 토다. 장기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갈라진 땅 틈새로 공기가 유입된다. 토양이 1 미터로 두꺼워 뿌리가 지하 깊숙이 내려간다.

바나나,라임, 복숭아 , 시트론, 청사과의 달콤함과 신선함이 매력적이다. 희미한 부싯돌 향, 샐비어, 타임 같은 허브향이 산뜻한 분위기를 살려준다. 발랄하고 직선적인 향기는 모든 층에 어필한다. 산미는 청량감을 뽐내며 아몬드의 여운과 어우러져 깔끔한 미각을 선사한다.

Soave Classico Doc 2020 Castellaro 소아베 클라시코 Doc 2020 카스텔라로

몬테 델 카스텔라로 언덕, 해발 200~220미터대에 들어서있는 1헥타르 밭이다. 경사도 20%의 완만한 구릉지로 북향이다. 피타처럼 변질 현무암 기반에 자갈이 듬성듬성 섞여있다. 발달포네 계곡과 마주 보고 있어 계곡발 바람을 수시로 받는다. 수령은 53년이다.

첫 향기는 재스민, 라벤더, 노란색 들 꽃, 송진이 수즙은 듯 모습을 드러낸다. 발렌티나의 섬세하고 우아한 기품을 제대로 끄집어낸 양조 기량이 돋보인다. 리슬링의 페트롤 뉘앙스와 미네랄과 어우러진 풍미는 훌륭한 숙성 자질을 보여주고 있다. 산미의 매력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는 소아베다. 정신이 번쩍 들만한 산도가 놀랍고 산미가 엮어 낸 구조안에서 향기가 향연을 펼치고 있다. 산미의 균형이 잘 잡혔고 산미의 레이어 감상에 제격이다.

Soave Classico Doc 2020 Tremenalto 소아베 클라시코 Doc 2020 트레메날토

L자 형태의 서향 밭이다. 대략 2헥타르 크기의 밭은 해발 80미터 130 미터 대에 걸쳐있다. 해발은 낮지만 다채로운 경사도 (최저 5% , 최대 40%)를 지닌 구획들로 채워져 있다. 장시간의 미네랄 변형과 산화가 일으킨 적색토양, 노후된 두꺼운 토양(deep and evolved) 층, 기복이 심한 침식토, 극도로 침식된 얇은 토양층, 인간의 개입으로 변질된 토양 등 화산토양의 모자이크라 할 수 있다.

피타,카스텔라로, 트레메날토로 구성된 이 루오기 세트
피타,카스텔라로, 트레메날토로 구성된 이 루오기 세트

트레멘날토는 토양을 닮아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낸다. 처음부터 자신을 보여주진 않지만 조금 지나면 짙은 풍미와 조각 같은 구조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노란 꽃, 말린 무화과, 사프란, 화이트 초콜릿, 바나나, 송진, 타임 허브가 잔잔히 피어오른다. 이어 패트롤, 숲 속의 청량감, 젖은 토양 같은 부케의 심오함이 드러난다. 향기가 짙고 또렷하지만 절대로 농밀하거나 과숙한 느낌은 없다. 산미 결이 부드럽지만 동시에 신선미가 살아있다. 산미와 미네랄이 어우러져 내는 조화로운 맛, 잘 짜인 구도가 완성도 높은 미각을 선사한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