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마을의 렌드마크, 악마의 다리. 이름이 그런데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있다. 지난 7월 15일 다리는 석양의 건배 이벤트에 참여한 4백 명의 인파로 북적댔다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마을의 렌드마크, 악마의 다리. 이름이 그런데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있다. 지난 7월 15일 다리는 석양의 건배 이벤트에 참여한 4백 명의 인파로 북적댔다

깎아지른 협곡에 의해 반토막이 난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마을은 악마의 다리가 연결해주고 있다. 악마의 다리라 불리는 데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있다.

어느 날 다리 공사에 동원된 동네 주민들은 초조해졌다. 험한 절벽 밑을 굽이치는 강을 뚫고 솟아오른 바위에 교각을 세우려는 계획이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급류가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바위 언저리를 휘감는 물 회오리가 사람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자 사람들은 악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뜻을 모은다.

악마가 그냥 해 줄리 없지 않은가! 그는 다리를 지어주는 댓가로 완성된 다리를 지나가는 첫 영혼을 갖는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악마는 단 하루 만에 다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첫 번째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는데 고양이(개 란 설도 있음)가 다리를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악마가 보기 좋게 사람들 꾀에 넘어간 거다. 분노와 복수심에 휩싸인 악마는 동굴 안에 꽁꽁 숨어 두문불출 한 채 입김을 강 쪽으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이 바람이 북동 이탈리아 겨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보라(Bora) 바람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다리는 1442년 이아코포 다 비쏘네( Iacopo Da Bissone) 건축가가 설계하고 그의 후계자가 완성한 것으로 공사 기간이 5년 걸렸다.

지난 7월 15일 악마의 다리는 관객, 와인, 자연이 주연을 맡은 ‘석양의 건배’ 무대로 탈바꿈했다. 이 무대는 프리울리 콜리 오리엔탈리 & 라만돌로 와인협회(Consorzio Tutela Vini Della Denominazione Friuli Colli Orientali e Ramandolo 이하 와인협회)가 탄생 50 주년 기념을 위해 기획한 이벤트다. 집계에 따르면 이날 석양이 시작되는 19시에 몰려든 순간 관객 수가 4백 명에 달하는 기록을 세웠다. 세로 50미터, 폭 3.60 미터의 다리를 채운 사람들은 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일제히 건배를 합창했다.

이탈리아의 최북동부에서 나는 서늘한 와인

이미지 출처 www.scuolanostra.it
이미지 출처 www.scuolanostra.it

와인협회 이벤트가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에서 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와인협회가 대표 자격을 부여받고 관할하는 지역이 콜리 오리엔탈리 언덕(Colli Orientali)이며 로마시대부터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가 중심지 기능을 해 온데 있다.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마을 동부를 콜리 오리엔탈리 언덕이 에워싸고 있으며 마을과 언덕을 관할하는 주가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Friuli Venezia Giulia. 이하 FVG)다. 그러니깐 이탈리아 여행을 북동에서 출발하는 일정으로 짠다고 가정할 때 첫걸음이 닿는 곳이 FVG고 길 위에서 맞닥뜨리는 이정표 화살은 이 언덕을 가리키고 있을 확률이 높다. 동쪽은 슬로베니아 국경과 맞닿아 있고 북쪽의 알프스 넘으면 남서 오스트리아다.

콜리 오리엔탈리는 15군데 코무네(이탈리아의 기초 지방 자치 단체)와 코무네 별로 등급에 지정된 2천 헥타르의 포도밭으로 구성된 와인 공동체다. 콜리 오리엔탈리 와인을 전 세계에 알린 앰버서더는 메를로, 소비뇽 블랑, 피노 그리조 같은 국제 품종이다. 그러면서도 이곳 아니면 안 되는 배타적인 토착성도 지닌다. 베르두조, 피콜릿, 리볼라 잘라, 프리울라노, 스키오페티노, 타제렌게, 레포스코 델 페둔콜로 로쏘, 피뇰로 같은 생소함과 샤르도네, 피노 블랑, 리슬링, 트라미너, 피노 누아, 카베르네 소비뇽의 익숙함이 충돌하지 않고 상생의 밸류를 창출하고 있다.

콜리 오리엔탈리 와인은 등급 피라미드 안에 포개 넣을 수 있다. 광범위한 품종과 스타일을 아우루는 프리울리 콜리 오리엔탈리 DOC 와인이 하단을 차지하며 그 상단은 토착품종과 그의 자생지로 묶은 다섯 군데 소지역(sub zone)이 놓인다. 즉, DOC와인 최남단을 리볼라 잘라와 피뇰로 디 로싸조 (Ribolla Gialla & Pignolo di Rosazzo), 스키오페티노 디 프레포토( Schioppettino di Prepotto), 레포스코 디 파에디스 (Refosco di Faedis), 찰라(Cialla)등의 소지역이 빙둘러싸고 있다. 피라미드 정상은 라만돌로(Ramandolo), 콜리 오리엔탈리 델 프리울리 피콜릿(Colli Orientali del Friuli Picolit ), 로싸조 (Rosazzo)같은 DOCG 등급이 우뚝 서 있다.

테이스팅 아카데미 내부
테이스팅 아카데미 내부

꽤 복잡해 보이는 콜리 오리엔탈리 와인. 와인 협회는 테이스팅 아카데미를 베이스캠프로 삼을 것을 추천한다. 아카데미는 와인협회가 운영하는 데 토양기초 , 품종, 토양 별 와인 특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얻는 멘토링은 와인투어 코스를 정할 때 유용하다.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마을을 축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지 아니면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지 감이 잡힌다. 치비달레 마을에서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30분 거리 내에 있다.

참고로 아카데미는 32종의 시음 리스트를 구비해 놨고 시음비는 잔 당 1유로로 착하며 업계 종사자는 무료다. 예약이 필수며 와인협회 사이트 (www.collioriental.com)- Tasting Academy 순서로 예약하면 된다.

와인협회 현판. 협회건물 내부에 테이스팅 아카데미가 소재한다
와인협회 현판. 협회건물 내부에 테이스팅 아카데미가 소재한다

필자는 악마의 다리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서쪽, 남쪽순서로 훑고 동부에 이르러 다시 출발점에 귀환하는 순환코스를 만들었다. 와이너리 정보는 와인협회 홈페이지에 가서 The Territory- Municipalities 순서로 얻었다. 참고로 Municipality는 현지어로 코무네(Comune)다.

아로마 언덕을 가슴에 품은 프레마리아코 코무네 (Premariacco Comune)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에서 남서방향으로 6km 전진하면 이플리스( Ipplis) 마을에 도달한다. 포도 나무열이 경사면을 나선형태로 감고 있는 능선을 수십 번 넘으면 스쿠블라 SCUBLA 와이너리 안뜰이 보인다. ㄱ자 형태로 지은 농가 안뜰을 백 년째 지키고 있는 뽕나무가 여행자를 맞는다. 이곳이 와이너리임은 건물 안에 쌓여 있는 와인박스 더미를 본 후에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외관이 평범하다.

로사쪼 수도원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콜리 오리엔탈리 풍광
로사쪼 수도원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콜리 오리엔탈리 풍광

와인에 반생을 바쳐 온 로베르토 스쿠블라 사장은 콜리 오리엔탈리가 아로마 언덕이란 닉네임을 얻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든다. “포도는 수확 열흘 전에 완숙기에 접어든다. 이때 나무는 열매에 아로마를 농축하려고 젖 먹은 힘까지 짜낸다. 아로마 종류와 순도는 포도의 건강상태가 좌우한다. 병충해에 오염된 적이 있거나 질병을 앓은 적이 없어야 한다. 이탈리아 북동부는 발칸반도 발 보라Bora 바람의 직격탄을 맞는다. 알프스를 타고 내려온 북동풍이 협곡을 통과하면 한랭 건조한 돌풍으로 급변한다. 가을과 겨울에 주로 부는데 가끔 여름철에도 발생한다. 운 좋게 콜리 오레엔탈리는 보라가 내리꽂는 협곡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보라가 언덕에 오는 동안 기세가 한 풀 꺾여 공기는 건조해지고 선선한 바람으로 바뀐다 ”.

스쿠블라의 아이콘 와인은 스쿠블라 포메데스(피노 비앙코 60%, 프리울라노 30%, 리슬링 10%) 블랜딩 화이트다. 포메데스는 로베르토가 스키 타러 갔다가 폭설을 피해 머물렀던 산장이름이다. 2020 빈티지는 2023년 디켄터 World Wine Awards 에서 플래티넘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송진, 흰 꽃, 재스민, 타임, 시트론, 아몬드, 라벤더, 아카시아 꿀의 향기가 풍성하며 미각에 또렷한 여운을 남긴다. 손으로 수놓은 듯한 섬세한 질감과 산미가 시너지를 일으켜 몰입도가 높다.

로베르토 스쿠블라의 아이콘 화이트. 피노 비앙코와 포메데스
로베르토 스쿠블라의 아이콘 화이트. 피노 비앙코와 포메데스

올해로 창립 101주년을 맞는 다리오와 루차노 형제가 운영하는 에르마코라 (Ermacola) 와이너리는 피노 비앙코와 피콜릿 와인으로 독보적 존재감을 발한다. 2021년 피노 비앙코는 살구, 흰꽃, 시트론, 진저와 페트롤의 은은함이 매혹적이다. 레몬 여운과 산뜻한 산미가 이루는 조화는 기품을 발한다.

피콜릿Picolit은 디저트 와인으로 ‘아치넬라투라’란 희귀병을 앓는 포도로 만든다. 수정은 일어나지만 열매로 크지 못하고 씨를 떨어트린다. 즉, 자연유산의 일종인데 이 병에 걸리면 포도자루는 소량의 열매만 남게 되고 이곳으로 영양분이 몰리게 된다. 에르마콜라는 수확한 피콜릿을 건조실로 옮겨 두 달 정도 건조한다. 건포도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변할 때까지 아파시멘토 한 포도를 압착해서 발효한다. 바리크에서 30개월 숙성한 와인은 말린 무화과, 건포도, 대추, 살구, 꿀, 망고의 달콤함이 황홀하다. 쌉쌀한 맛과 단맛이 선사하는 밸런스가 놀랍다. 톡 쏘는 산미는 단맛의 당도를 줄여줘 깔끔한 인상을 준다.

에르마코라의 아이콘 와인. 왼쪽부터 소비뇽블랑, 피노 비앙코, 피콜릿 디저트 와인
에르마코라의 아이콘 와인. 왼쪽부터 소비뇽블랑, 피노 비앙코, 피콜릿 디저트 와인

부트리오 코무네(Buttrio Comune)- 해풍과 온화한 기온이 다름의 비결

부트리오 지역은 지리적 이점을 십분 발휘해 와인에 적당한 구조와 풍부한 아로마를 선사한다. 최남단에 솟아오른 언덕 일대로 아드리아 해가 일으킨 해풍이 불어온다. 레드 와인은 짭조롬한 미네랄과 적당한 무게감도 지녀 현지 음식과 매칭에 무난하다. 콘테 다티미스 마니아고 (Conte D’Atimis Maniago) 와이너리는 다티미스 백작가문과 마니아고 백작가문의 결혼에서 비롯되었다. 1585년 2월 15일을 창립일로 삼는데 새로 결혼한 부부가 부트리오로 이주해 온 날이라고 한다.

2백 헥타르의 광대한 밭을 경작하며 와인 리스트는 콜리 오리엔탈리의 전 품종을 망라하고 있다. 리스트 중에는 혀가 갈라진다는 뜻의 타제렌게(Tazzelenghe)도 있다. 산도와 타닌이 얼마나 센지 혀(렌게)가 갈라질(타제) 정도다. 콘테 다티미스-마니아고의 타제렌게 2016 빈티지는 보테 오크통에서 1년간 산미의 날을 다듬고 거친 맛을 솎아내 유연한 식감과 강직한 맛으로 승화시켰다. 블랙베리, 사워체리, 흑자두, 블러드 오렌지의 농익은 과일과 스파이시의 매콤함에서 힘과 기품이 느껴진다.

콘테 다티미스 마니아고의 타제렌게 2016
콘테 다티미스 마니아고의 타제렌게 2016

콜리 오리엔탈리의 피노 그리조는 두 가지 스타일로 모아질 수 있다. 화이트 버전과 짙은 갈색 버전인데 전자는 화이트 와인 양조법을 선택해 우아함과 세련된 감성을 살렸다. 후자는 갈색 톤, 깊이 있는 향기층, 타닌 느낌이 결합해 언뜻 오렌지 와인으로 착각하기 쉽다. 껍질성분을 우려낸 와인은 담금 시기와 시간이 색상과 느낌을 결정한다. 오렌지 와인은 알코올 발효(또는 숙성기간) 때를 노리고 갈색 버전은 발효 직전의 6시간~ 12시간을 타깃으로 한다. 일명 선침용이라 하는데 이는 아로마 농축과 응축한 아로마의 수월한 침출을 돕는다. 마리나 다니엘리 와이너리의 2020년 산 피노 그리조는 구운 헤이즐넛, 카모마일, 부싯돌, 말린 살구, 후추, 키나, 식물뿌리의 향이 몰입감을 선사한다. 날카로운 산도, 반듯한 보디, 타닌이 서로 엮이고 짜 맞춰지는 동안 섬세한 구조를 얻었다.

프리울리 콜리 오리엔탈리 & 라만돌로 와인협회가 추천하는 와이너리 8군데 ②가 이어집니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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