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 와인 전문가
백난영 와인 전문가

백난영 저널리스트는 로에로 지역의 와인과 문화를 소개한 칼럼으로 2022년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한 국제 저널리트 상을 수상한 적이 있으며, 이후에도 한국인 와인 애호가들을 위해 로에로 와인 및 와인 문화 소개, 지역 매력 발굴, 로에로 와인 관광 활성에 공헌한점을 인정받아 6월 24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산미켈레 델 로에로 기사작위(Ordine Dei Cavalieri Di San Michele Del Roero)를 수여받았다.

와인을 모르던 초보에서 인정받는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가 되기까지 그녀는 어떠한 길을 걸어왔을까? 이에 소믈리에타임즈는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먼저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믈리에타임즈 독자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에 거주하고 있는 백난영입니다. 소믈리에타임즈에 칼럼을 기고하며 주로 이탈리아 와인 소식과 트렌드를 다루고 있으며, 그 외에도 바롤로 & 바르바레스코 와이너리 투어 운영 및 국제와인 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피에몬테에 정착하게 된 과정이 굉장히 로맨틱했습니다. 독자분들을 위해 현재 남편분을 만나게 된 스토리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남편은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국적이 다른 연인 사이에 있을 법한 가슴을 오글아들게 만드는 애틋한 열애의 순간은 둘 다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23년전인 2000년 8월, 남편이 국제학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마침 제가 학회에 참석한 외국인들의 통역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열리는 행사였는데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남편과 마주할 자리가 여러 번 생겼어요. 예를 들어 MT를 갔는데 같은 그룹에 속한다든지, 돌아오는 버스에 남은 자리 하나가 남편 옆이라든가, 행사장에서 그가 머물던 숙소까지는 전철을 여러 번 환승해야 했는데 저의 집 가는 길도 같은 경로를 거쳐야 했죠.

한 번은 서울 외곽으로 견학을 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제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버스가 출발했어요. 아무도 제가 버스를 놓친 걸 알아채지 못했는데 남편만 눈치를 채서 기사분한테 일행을 놓쳤다고 알려줘 버스를 돌린 일이 있었어요. 남편은 섬세하고 자상해서 첫 느낌이 오래 사귄 남자친구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음식을 너무나 잘 먹더라고요. 마치 한국인이 이탈리아인의 신체를 빌린 거란 착각이 들 정도로요. 올해로 결혼한 지 22년째지만 제 마음에 새겨진 그의 첫인상은 지금까지도 변색되지 않았습니다.

Q3. 와인 업계에는 어떻게 입문하시게 되신 건가요? 그리고 와인에 끌렸던 이유는요?

제가 결혼 전에 마신 와인이라고는 엄마표 포도주가 다였어요. 결혼 초반까지만 해도 모스카토 한 잔만 마셔도 카라바조가 그린 바커스신처럼 얼굴이 붉어졌죠. 마셔 본 레드와인은 달달한 람부르스코가 다였으니, 네비올로나 산지오베제는 상상 밖의 세계였죠. 그러다 와인 애호가인 한국 지인분이 이탈리아에 거주하는데도 와인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제가 딱해 보였나 봐요. 그래서 와인 과정을 해볼 것을 권유하시더군요.

이후 인터넷을 검색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이탈리아는 와인을 통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듯했어요. 와인마다 수천수백년 동안 풍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닮아가고 교감을 이뤄가고 있었죠. 아무리 단순한 와인이라도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고요. 또한, 한 병에 수천 유로가 호가하는 와인도 단순함의 긴 과거 끝에 마주한 찬란한 햇빛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Q4. 2012년에 이탈리아소믈리에협회의 공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획득하셨는데요. 본격적으로 와인 공부를 시작한 지 단 2년 만에 이룬 성과이신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다녔던 소믈리에 과정은 이탈리아 성인을 위한 과정이어서 그런지 수강생들의 스펙이 대단했습니다. 현직 소믈리에부터 와인 생산자의 자녀, 와이너리 직원 그리고 이미 와인 업계에서 일하지만 자격증 취득 차 등록한 현장 실무자였죠. 그래서 10년 정도 이탈리아에서 거주한 외국인이 넘기 힘든 장벽에 여러 번 맞닥뜨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강사들은 수강생 중에 외국인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강의 내용과 전달 형식은 이탈리아인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었어요. 어떤 강사는 토스카나 와인 입문에 들어가면서 단테의 신곡을 낭송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멍청히 앉아있던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강의 내용을 전부 녹음해서 주말에 남편과 같이 들었으며, 어려운 부분은 남편이 하나하나 설명해 줬어요. 덕분에 남편도 와인 내공을 탄탄히 쌓았죠.

그런데 이론은 새 발의 피였습니다. 와인 내공이 빈곤하다 보니 다른 수강생들 입에서 술술 나오는 향기나 타닌 표현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이 들더군요. 뜻이 맞는 친구들은 시음모임을 만들어 실기시험에 대비하고 있고요. 나도 껴달라는 부탁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주말을 셀프 시음의 날로 정했습니다. 일요일 오전은 시음에 올인하고 남은 와인은 점심 식사에 초대한 친구들과 마시면서 와인과 음식 매칭 훈련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다행히 이탈리아 친구들이 기꺼이 동참해 줬고 테이스팅 실기시험 전까지 두 달 동안 주말 모임을 반복한 덕에 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산미켈레 델 로에로 명예 기사 작위를 받은 백난영 저널리스트 (사진 = PAOLO BRUNO)
한국인 최초로 산미켈레 델 로에로 명예 기사 작위를 받은 백난영 저널리스트 (사진 = PAOLO BRUNO)

Q5. 따른 국가의 와인 산지와 비교하여 ‘이탈리아 와인’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흔히 이탈리아 와인을 상징하는 수식어는 1천 여종의 토착 품종이라고들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주면 그건 공식적인 통계가 그렇고 시골 텃밭에서 노인들이 취미로 가꾸는 희귀 품종은 제외된 겁니다. 소믈리에 자격증을 막 땄을 때는 호기롭게 토착 품종은 모조리 맛보겠다는 의욕에 불탔어요. 하지만 다수는 블렌딩에 사용하고 토착 품종에 등록되었더라도 상업화하지 못한 서류상 품종이란 걸 알게 되었죠. 이후 다 마셔봐야겠다는 욕심을 접고 대신 주요 품종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요즘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와인은 특정 테루아를 기반으로 원산지 풍미를 끄집어낸 크뤼 와인이 대세입니다. 바롤로 와인만 해도 170개의 크뤼가 존재합니다. 거기다 생산자만 해도 250군데가 되니 평생 바롤로만 마신다 해도 다 마실 수 없죠.

사실 토착 품종도 이를 지켜내려는 농부들의 투혼이 없었다면 국제 품종에 밭을 다 내주었을 겁니다. 특히 남이탈리아의 캄파니아주, 움브리아주 생산자들의 토착품종에 대한 집착은 대단합니다. 캄파니아주는 2천 년 전 조상이 마시던 팔랑기나, 알리아니코, 그레코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MZ세대가 즐기고 있어요. 단적인 예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폭발로 해체된 폼페이의 포도밭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원상태로 복원시켜 놓은 거죠. 이렇게 무한대의 토착 품종이란 재료와 인간의 양념을 요리해 완성한 이야깃거리 음식이 이탈리아 와인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Q6. 현재 소믈리에타임즈에서 [이탈리아 DOCG 와인 2023 트렌드]라는 칼럼을 기고하시고 계십니다. 물론 칼럼을 통해서 자세한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올해 주목할 만한 혹은 눈에 띄었던 2023년 이탈리아 와인 업계의 트렌드는 무엇이 있었나요?

2023년 수확기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2022년 폭염과 가뭄에 이어 올해도 포근한 겨울과 가뭄, 폭우, 잦은 우박 등 비슷한 기상이변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요. 포도는 기후에 민감한 식물이라 날씨가 패턴을 조금만 벗어나도 포도밭 관리자와 양조가 한테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어요. 점점 생산현장은 산도 유지, 알코올 도수 억제, 비대해지는 바디 및 타닌과 싸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포도밭 담당자들이 기상이변의 배틀 현장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이렇습니다. 북, 동, 서향의 밭 모색이라던가 밭 고도 높이기, 지표의 습기 증발을 억제하는 초지 조성이라든가 우박방지망 설치, 포도의 이른 완숙 속도를 늦추는 백색 고령토(Kaolinite) 살포등이 있어요.

산도와 알코올 도수의 균형도 양조계의 화두입니다. 여름이 점점 뜨거워지자 와인은 산도를 잃고 알코올 농도는 치솟고 있어 밸런스가 흔들리고 있죠. 어느 와이너리는 수확을 쪼개서 하는 다중 수확 묘안을 내놓았어요. 일찍 수확한 포도밭에서는 산도를 얻고 나머지 밭은 아로마가 완숙할 때까지 내버려 두죠. 수확한 대로 개별 발효하고 숙성을 마친 뒤 블랜딩하면 산도와 알코올 농도를 원하는 파라미터 안에 가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요. 아직 실험 단계지만 사카로미세스 우바룸 효모는 기존효모(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에 비해 에탄올 생산량이 최대 2도 정도 낮아 알코올 도수를 잡아둘 수 있는 미래효모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어요.

Q7.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이너리 투어를 운영하시고 계신데요.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의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정말로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방법과 투어 스케줄(와이너리 선정, 일정 등)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바롤로 와이너리 투어는 프라이빗 방식으로 소그룹 단위(최대 4명)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정은 당일, 1박 2일, 2박 3일로 다양하며 바롤로 투어에 바르바레스코 투어를 연계시켜 맞춤형 프라이빗 투어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투어 상품은 바롤로 및 바르바레스코 MGA(크뤼) 와인의 체계적 이해와 체험을 원하는 와인 애호가, 바롤로에 관심 많은 와린이,이탈리아 와인 애호가 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상품은 클래식 바롤로 투어와 크뤼 바롤로 투어가 있는데 차이는 크뤼 바롤로의 종류와 시음 개수입니다. 예를 들어 크뤼는 다수의 밭을 블렌딩한 클래식 바롤로와 크뤼 바롤로를 포함하며 시음 와인은 5종류 이상입니다. 또한 크뤼에 한 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전통 스타일과 모던 스타일 바롤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관련 문의: 이메일 baeknanyoung@hanmail.net / 카카오톡 - jnclny)

Q8. 지금 한국은 가을이 완연한데요. 소믈리에타임즈 독자분들을 위해 가을과 어울리는 이탈리아 와인 몇 가지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가을은 기온이 쌀쌀해 와인과 계절을 페어링 하기에 이만한 계절이 없어요. 부담 없이 고급 분위기 내기 좋은 바르베라 달바, 로쏘 디 몬탈치노, 끼안티 지역의 수퍼투스칸, 랑게 네비올로가 어울리죠. 기교를 부리지 않아 과일과 꽃향기에서 순수함이 느껴지고 타닌과 잘 결합한 구조를 두루 갖추었죠.

화이트라면 북부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남부의 팔랑기나, 리구리아의 베르멘티노가 가을 무드를 한층 띄어줍니다. 미디엄 보디가 실어 오는 산미와 과일향의 밸런스가 멋들어집니다. 미리 따라 두어 온도를 1~2도 정도 올린 후 마시면 짙은 열대 과일향과 다소 동글해진 산미를 즐길 수 있어요.

(좌측부터) 파체 와이너리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구이차르디니 스트로지 와이너리의 밀라니 수퍼 투스칸, 가브리엘레 코르데로 와이너리의 바르베라 달바
(좌측부터) 파체 와이너리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구이차르디니 스트로지 와이너리의 밀라니 수퍼 투스칸, 가브리엘레 코르데로 와이너리의 바르베라 달바

Q9. 백난영님은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공인 소믈리에이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위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그리고 칼럼니스트까지 와인 업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시고 계십니다. 백난영님과 같이 와인 업계에서의 다양한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와인업계라 해서 그 분야에만 적용되는 조언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와인은 본래 화려함과 축제성이 다분해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속도와 에너지가 블랙홀에 비견될 정도죠. 초기의 진입 속도에 비해 그 세계에서 나의 존재감을 알리고 나에 맞는 분야를 발견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저도 그 중도에 있고 나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중입니다. 의욕의 씨앗불이 꺼지지 않도록 마음 단속 잘하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면서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가세요.

Q10. 마지막 질문입니다. 소믈리에타임즈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앞으로도 꾸준한 성원과 방문, 뉴스레터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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