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8일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주도인 토리노에서 열린 한 와인행사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프리마 델 알타랑가(PRIMA DELL’ ALTA LANGA)라는 시음회로 주최지인 토리노가 174년 전에 태동시킨 샴페인 방식 스푸만테를 추억하는 행사다. 더불어 샴페인방식이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까지 그 행보를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174년 만에 고향을 밟은 와인의 정체. 한 겹씩 벗겨보도록 하겠다. 샴페인 방식 스푸만테로 더 알려진 전통방식 스푸만테는 프라텔리 간자의 설립자 까를로 간차(Carlo Gancia)와 깊숙이 관련돼 있다. 그는 샹파뉴 지역에서 이뤄지는 샴페인 방식을 이탈리아에 들여와 그때까지 발포성 와인의 불모지였던 모국에 샴페인 열망에 기름을 부었다. 토리노는 샴페인 제조기법을 배우기 위해 랭스 유학을 단행하고 파이퍼 하이직 메종에서 수습기간을 마친 청년 까를로 간차가 귀국 후 실험적 생산시설을 일으킨 도시다.
이때가 1848년, 그의 곁에는 남동생 에도아르도가 있었다. 그러나 형제는 곧 첫 난관에 봉착한다. 주원료인 피노 누아나 샤르도네를 키우는 농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모스카토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스카토는 2차 공정인 병 발효 때 병내부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높은 기압을 견뎌 내고 지속력이 뛰어난 기포를 생성하는 등 기대이상의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당분이 높아 단맛을 줄이려면 발효를 중단하고 여과 한 와인을 재병입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 공정의 중복으로 알코올 도수의 감소는 피할 수 없었으나 본토의 맛( 드미 섹 , 35~40g/리터)에 근접시킬 수 있었다. 1865년 간차 형제는 이렇게 얻은 와인을 ‘이탈리안 방식의 샴페인’이라는 뜻의 ‘스푸만테 이탈리아노(Spumante Italiano)’라 지칭했다.
한편 간차 형제는 피노누아와 샤르도네 쿠베가 내는 정통 샴페인 맛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상파뉴 자연을 닮은 테루아와 포도 농가를 물색했다. 결국 토리노 동남부 90 km 떨어진 아스티 인근 소도시 카넬리( Canelli)가 유력지로 좁혀졌다. 간차 형제는 곧 카넬리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프라텔리 간차(Fratelli Gancia )를 출범시켰다. 샹파뉴를 흉내 낸 이탈리안 방식의 샴페인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전통방식 체계를 실현했다.

까를로 간차의 신화는 지구의 중력이 달을 잡아끌듯 콘트라토, 보스카, 콥포 같은 스푸만테 하우스를 카넬리로 쏠리게 했다. 이들은 도심에 있는 지하를 뚫어 터널을 낸 공간을 생산 및 저장실로 사용했다. 이를 지하의 대성당이라 하는데 유네스코 유산에 지정될 정도로 심미적으로 뛰어나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설계한 궁륭무늬 천장이 연속적으로 터널 허공을 받치고 있다. 천장의 아치와 맞닿아 있는 기둥들은 장엄한 기운을 품고 있어 마치 대성당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기둥 마다 병입구를 구멍에 박은 채 병바닥을 위로 치켜올린 스푸만테가 꽂혀있는 푸피트르(pupitre)가 고개를 내민다. 지하의 대성당은 카넬리 도심에 무리 지어 있어 경관 관광과 와인관광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득템 관광지다.
까를로 간차가 시작하고 알타 랑가로 맥을 이어가는 전통방식 스푸만테의 물줄기
앞으로 돌아가 시음회 장소는 토리노 왕립극장으로 1740년에 완공된 이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공연무대가 펼쳐진 곳이다. 루차노 파바로티, 마리아 스칼라의 역대급 공연은 물론 자코모 푸치니의 마농레스코(1893년)와 아루트로 토스카니니작 라 보엠의 초연(1896년)이 이뤄졌다.

행사 당일날은 오페라대신 150종의 코르크가 일시에 터지는 뻥 소리가 극장에 울려 퍼졌다. 알타 랑가 스푸만테를 생산하는 65군데 와이너리가 갗 출시한 2020년 빈티지와 숙성기간이 10년 을 초월하는 실험적인 쿠베도 끼어있었다.
알타 랑가는 까를로 간차가 심어놓은 샴페인 방식 스푸만테의 맥을 잇는다. 그런 전력에 비해 훨씬 늦게 등장한 트렌토 DOC, 프란차코르타 DOCG보다 인지도가 낮다. 이는 카넬리가 전통방식 스푸만테의 메카로 떠오를 무렵 샤마 방식 보급이 가한 타격 때문이다. 대형 압력탱크가 병숙성을 대신했고 빠르고 손쉬운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 거기다 모스카토 품종은 압력 탱크생산의 총아로 떠오르면서 그간 간차를 비롯한 후발주자들이 쌓아 놓은 이탈리아 속 샹파뉴 생태계를 위협했다.
1990년 21개 와이너리가 발의한 스푸만테 프로젝트(Progetto Spumante)가 출범한다. 프로젝트는 20헥타르의 실험 포도밭 지정에 이어 다채로운 클론으로 구성된 피노누아와 샤르도네 식재를 목표로 했다. 이어 “트라디지오네 스푸만테Tradizione Spumante” 협회가 창설되었고 실험 밭에서 자란 첫 소출로 스푸만테를 생산했고 이를 알타랑가라 불렀다. 한편 협회는 피에몬테 전통 스푸만테 하우스 (Case Storiche Piemontesi)로 이름을 변경했고 알타 랑가를 등급으로 인정받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2002년 DOC등급을 받았고 2011년에 DOCG로 승급했다. 공백기간이 길었으나 재기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는 와인협회가 세운 단기 목표에서도 드러난다. 2023년 기준 포도밭 면적을 2025년까지 440헥타르에서 597헥타르로 확대하고 연생산량도 3백2십만 병에서 6백만 병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알타 랑가의 가파른 인기 비결

알타 랑가 지역은 남 피에몬테 아스티, 알레산드리아, 쿠네오에 자리 잡은 3개 지방(province)이 속한다. 넓은 면적에 비해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자연은 440헥타르 정도다. 샹파뉴와 비슷한 석회석과 점토로 된 토질, 최저 해발이 250미터인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물색하다 보니 범위가 넓어졌다. 또한 배수가 나쁘고 연중 습기 차며 냉해피해가 빈번한 산자락은 제외시키다 보니 고도 한계선이 최대 800미터까지 상승했다.
알타 랑가는 수확 연도가 같은 포도로만 양조한 ‘밀레시마토’며 라벨에 수확연도를 꼭 표시해야 한다. 밀레시마토, 밀레시마토 리제르바, 블랑드 블랑, 블랑드 누아, 로제 타입이 있다. 블랜딩 할 경우 피노 누아 함량이 우세하다. 기본 와인에 당과 효모를 섞은 후 병에 가두고 이산화탄소 발생과 복합미를 촉진하는 2차 발효 최소 숙성기간을 30개월로 못 박아 놨다. 리제르바는 밀레시마토나 숙성기간은 생산자 재량이다. 이번 시음회는 빈티지가 5년 , 10년 전인 것도 등장해 숙성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실험성이 돋보였다.

알타랑가의 모든 밭은 묘목 식수 단계부터 작물구성을 3분의 2는 피노누아, 나머지는 샤르도네로 정해놨다. 그만큼 피노누아의 역할이 중요한데 샤르도네의 크림결이나 풍만함에 길이 든 입맛에는 마치 중후한 화이트 와인처럼 느껴질 수 있다. 2020 밀레시마토는 풋풋한 들꽃, 백장미를 터트린 뒤 고소한 효모와 라임, 사과, 서양배, 건살구 향을 피운다. 기포는 떠다니다가 잔 바닥에 닿는 순간 반동으로 열을 가다듬은 뒤 솟구쳐 오른다. 기포 기둥은 흩어지지 않고 상승하다가 표면에 이르면 방울이 보듬고 있던 향기를 터트린다. 입안 가득 차오르는 밀도감, 예리한 산도가 단단히 구조의 고삐를 잡고 있다. 돌가루나 분필가루 냄새도 섞여 나오며 미네랄과 보디의 조화가 미각을 홀리다가 만족감으로 무르익는 반전을 감상할 수 있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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