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내 시민들 대상으로 친숙한 이탈리아 단어를 알아보는 인터넷 설문조사가 있었다. 참가자마다 백개 단어가 주워지고 이 중 열개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피자, 카푸치노, 스파게티, 에스프레소, 티라미수가 상위권에 올랐다. 예상대로 이탈리아는 식문화 종주국이고 이들 음식이 전 세계 깊숙이 침투했음을 증명했다. 이밖에도 유럽인이 손꼽은 단어들로는 오페라, 비올리노, 로또, 끼안티, 프레스코, 브라보, 돌체 비타도 있어 이탈리아어가 다분야에 국제어를 내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진행은 해외에 이탈리아 언어, 문화 소개와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 문화원 Società Dante Aligheri이 맡았다.

소믈리에타임즈 독자들도 이 기회에 이탈리아 어휘력을 점검해 보면 어떨까. 결과는 유럽인하고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다수의 독자는 평상시 툭툭 내뱉던 외국어 중에 이탈리아어가 꽤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거다.

이탈리아발 외래어는 국어에는 없는 풍습이나 용어를 대체하는 식으로 우리말 속에 들어왔다. 예를 들어 피자는 밀가루 반죽에 온갖 재료로 한껏 멋을 부린 부침개와 겉모습은 비슷하나 우리 전통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이탈리아 적인 토핑이 올라간다. 모짜렐라와 토마토소스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국 국기의 적색은 토마토, 흰색은 모짜렐라로 비교할 만큼 소울푸드다. 음식과 정서의 일치화는 끼안티에도 적용된다. 누구는 끼안티 하면 토스카나, 사이프러스 가로수, 피아스코 바구니에 담긴 와인을, 어떤 이는 피렌체의 한 고깃집에서 허기를 달래 던 피렌체 스테이크와 마신 레드 와인을 떠올릴 것이다. 무엇을 떠올리건 끼안티는 토스카나 로망을 건드린다. 한 토스카나인으로부터 들은 표현으로 끼안티 와인에 대한 이들의 자존감을 대신하겠다. ‘이탈리아 수출 품목 리스트에는 끼안티 와인이 빠짐없이 들어있다고’.

모렐리노 스칸사노 와인과 시너지를 노린다

이번 안테프리메 데 토스카나의 세 번째 순서는 끼안티 와인의 새 빈티지 시음회였다. 그런데 시음회 이름이 독특하다. 끼안티 러버스 Chianti Lovers다. 등급에 지정된 원산지 명칭을 안테프리마 이름으로 정하는 네이밍 관행에서 벗어났다. 세계 공통어인 ‘러버스’와 결합시켜 부드럽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2020년을 기점으로 끼안티 와인 협회는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 와인 협회와 협업으로 한 날 두 행사를 동시에 개최하기로 했다. 행사명을 끼안티 러버스 & 로쏘 모렐리노로 내세워 시너지 효과는 물론 참여 와인 수도 늘렸다. 무엇보다 진행방식이 자유로운데 둘 다 시음할지 하나만 선택할지는 참가자의 재량이다. 필자는 끼안티 러버스를 선택했다. 올해 끼안티 러버스에 참여한 와이너리는 67여 군데, 와인은 120종이며 이를 타입과 빈티지로 구분하면 안나타 2024년 , 수페리어 타입 2023년, 리제르바 2022년이다.

끼안티와 끼안티 클라시코의 다른 점

끼안티는 토스카나 주 여섯 군데 지방을 포함하는 거대 와인산지다. 토스카나 북부의 피스토이아, 프라토, 피사에서 중부의 피렌체, 아레초를 거처 남쪽의 시에나를 아우른다. 앞의 지명들은 동명의 도시와 이의 영향력이 미치는 여섯 군데 행정단위의 결합체다. 일부 서해안 지방과 피렌체 남부 - 시에나 북쪽 구간을 제외한 토스카나 전체가 생산권이다. 순수하게 끼안티 등급에 지정된 밭은 15,000헥타르, 포도농가 및 와이너리가 3천6백 군데, 연 생산 실적이 80만 헥토리터에 달한다. 다른 말로 하면 끼안티 땅을 밟지 않고는 토스카나 여행이 불가하다는 말이다. 워낙 크다보니 서브 존을 도입해 7군데의 세부지역으로 관리하고 끼안티 협회 밑으로 세부지역 별 와인협회를 두고 있다. 끼안티 협회는 세부지역 및 끼안티 전체를 관리하는 대표 역할을 맡는다.

끼안티는 여섯개 지방을 포함하며  7군데 세부지역으로 나뉜다. 세부지역 구분 없이 여섯군데 지방 내에서 재배, 양조, 숙성된 끼안티는 끼안티 제네리코라 한다
끼안티는 여섯개 지방을 포함하며 7군데 세부지역으로 나뉜다. 세부지역 구분 없이 여섯군데 지방 내에서 재배, 양조, 숙성된 끼안티는 끼안티 제네리코라 한다

새로 출시한 끼안티 소개에 앞서 끼안티 와인과 끼안티 클라시코의 다른 점을 살펴보자. 엄연히 각자 생산 지역과 규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 좀 마셨다는 사람들 조차 헷갈려한다. 심한 경우는 끼안티가 끼안티 클라시코의 줄임말로 알고 있다. 혼동의 원인은 둘 다 끼안티란 단어를 공유하며 생산 지역이 서로 이웃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1932년까지만 해도 끼안티는 한 개만 존재했었다. 그러니 헷갈리는 게 당연하다.

두 와인협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역사를 묘사한 부분은 1932년 이전까지는 판박이다. 예를 들면 둘 다 끼안티의 어원을 고대 토스카나 문화를 꽃피운 에트루리아인의 언어로 들고 있다. 날짐승이 날갯짓할 때나,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혹은 뿔 부딪칠 때 나는 소리를 본 딴 의성어를 기원으로 보는 설이다. 클란테란 이름의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끼안티가 와인으로 처음으로 불려진 시기를 1398년이라는 데 일치한다. 프라토 Prato시 문서국에 소장된 고문서에서 밝혀진 내용을 토대로 한 거다. 그러나 끼안티를 화이트 와인이라 적었고 이후 출간된 문서들은 레드 와인이라 기록한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끼안티는 와인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토스카나 와인은 자유도시, 은행가, 상공업 길드의 탄생과 발전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오랫동안 수도원 영역에 머물러 있던 포도재배와 양조법은 신흥 부자들한테 이전 됐고 이들은 곧 와인이 가문의 부를 늘리는데 효과적 수단임을 인지한다. 현대 토스카나 와인계를 주무르는 와인명가들의 탄생도 이 시기와 연결돼있다.

특히, 메디치 가문은 정치적 위상을 알리는데 와인을 적절히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6세기 메디치가의 공식 궁전인 팔라쪼 베끼오 안뜰은 포도와 나뭇잎 부조로 장식된 기둥들이 열 지어있다. 궁 방문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이미지다. 궁 내부 건물 중 메디치 수장들이 외국 대신의 알현이나 국정 업무를 수행하던 ‘오백 인의 방 Salone Dei Cinquecento’ 천장화는 메디치 가문 영토를 주제로 한 연작이다. 그림 중 끼안티는 검은 수탉(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상징)으로 묘사했고 산지미냐노(토스카나 중부 도시)는 이곳의 토착와인인 베르나차를 마시는 주신(酒神) 이 주인공이다.

(좌측) 팔라쪼 베끼오궁(Palazzo Vecchio), 내부에 안뜰과 오백인의 방이 있다
(좌측) 팔라쪼 베끼오궁(Palazzo Vecchio), 내부에 안뜰과 오백인의 방이 있다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은 1716년 코시모 3세 대공이 공포한 코시모 칙령으로 절정을 이룬다. 코시모 칙령은 끼안티 지역의 경계를 구분했고 나아가 토스카나 와인의 체계를 세우는데 기여했다. 20세기에 들어 끼안티 와인은 토스카나에서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자 코시모 칙령 내 지역에서 활동하던 33명의 와인 생산자는 1924년 와인협회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기로 한다. 협회 로고로 갈로 네로(검은 수탉)로 정하고 끼안티와 차별을 두기 위해 본산지라는 뜻의 ‘클라시코’ 단어를 추가했다.

한편 이 지역 밖에 있는 피렌체, 아레초, 시에나, 피스토이아 생산자들은 끼안티 협회 설립으로 맞대응한다. 두 지역 결별은 말뿐, 한쪽 와인이 다른 쪽 세부지역에 포함되거나 한 지역에서 다른 와인이 나오는 등 경계가 분명치 않았다. 그러다 1996년에 독자적인 Docg 규정을 통과시키면서 서로 완전히 분리된다. 다음은 두 와인의 차이점을 표로 정리해 봤다. 이것보다 더 직접이고 단순한 구별법이 있다. 와인 병의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갈로 네로 마크가 있으면 끼안티 클라시코, 없으면 끼안티다.

끼안티 Docg 2024 칸티나 젠티리 와이너리- 라즈베리, 산딸기, 레드 커런드, 석류, 발효향 같은 산조베제의 밝은 개성이 톡톡 튄다. 신선한 산미와 순한 타닌의 깔끔한 미각이 돋보인다.

끼안티 Docg 2024 카스텔베끼오 인 산카샤노 발디페사 와이너리- 핵과일의 달콤함, 흙 내음, 약간의 미네랄, 허브향 등 복합적인 향기가 풍성하다. 산뜻한 보디감, 입안에 경쾌한 산미가 번질 때 입안이 향긋해진다. 아몬드의 쌉쌀한 맛이 향긋함을 높인다.

끼안티 Docg 2024- 포조 델 모로 와이너리- 라즈베리, 레드 커런트의 붉은빛 도는 과일, 삼나무 향이 피어오른다. 상큼한 산미, 날카로운 타닌에서 느껴지는 활달함, 두 맛의 조화로운 결합은 산뜻한 목 넘김으로 표현된다.

끼안티 Docg 2024-포조톤도 디 알베르토 안토니노 와이너리- 신선한 과일의 화사함, 붉은 꽃의 은은함이 매혹적이다. 쌉쌀한 풍미와 향기로운 산미가 오랫동안 입안에 감돈다. 타닌이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다.

끼안티 Docg 2024- 루피노 와이너리- 블랙베리, 다크 초콜릿, 흑자두, 묵직하며 달콤한 향기가 몰입감을 선사한다. 강렬한 산미와 타닌의 조화는 생기를 불어넣는다. 결은 부드럽고 속은 꽉 채워진 완성도 높은 와인이다.

끼안티 Docg 2024 살케토 와이너리- 라벤더와 장미, 민트 향에 곁들여진 오크향이 매력을 더했다. 막 따낸 과일을 깨물었을 때 입안에 차오르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끼안티 Docg 2024-발비르지니오 와이너리- 말린 꽃다발, 격조 높은 허브의 우아함이 특기다. 깔끔한 산미, 혀를 보듬는 듯한 순한 타닌이 보태져 혀는 매끈한 식감을 경험한다.

끼안티 콜리 세네시 Docg 2024- 베끼아 칸티나 디 몬테풀차노 와이너리-수풀내음, 허브, 라즈베리, 산딸기의 신선한 내음이 솟는다. 상큼한 산도와 어우러지는 가벼운 질감에 순한 타닌이 더해져 계속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인다.

끼안티 몬탈바노 Docg 2024- 테누타 디 아르티미노 와이너리- 순수한 사워 체리, 라벤더, 산딸기가 풍기는 고급스러운 느낌. 날카로운 산미의 집중감, 밀도 있게 짜여진 타닌이 발산하는 힘이 느껴진다.

끼안티 콜리 피오렌티니 Docg 2023- 테누타 산 비토 와이너리- 블러드 오렌지, 민트, 바이올렛, 핵과일 등 정갈한 아로마를 피운다. 조밀한 타닌에서 정교함이 전달되며 상쾌한 산미는 감미로운 향을 머금고 있다.

끼안티 수페리오레 Docg 2023- 멜리니 와이너리- 라즈베리, 체리, 장미, 오렌지, 바이올렛의 은은함이 봄날의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촘촘한 타닌의 밀도감, 신선한 산도와 어우러진 미디엄 보디의 절제된 밸런스를 보여준다.

끼안티 수페리오레 Docg 2023- 피치니 와이너리- 농익은 과일의 달콤하고 깊은 맛, 홍차, 흙 내음이 묻어온다. 신선한 산도, 고운 질감은 산뜻하게 입안에 감돌다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끼안티 콜리 아레티니 Docg 리제르바 2022 드로안디 와이너리- 검붉은 과일, 흑연, 바닐라, 카카오, 검붉은 자두, 블랙베리향이 사랑스럽다. 깔끔한 뒷 맛과 원만한 산도, 예리한 타닌이 어우러진 깊은 맛이 인상적이다.

끼안티 콜리 피오렌티니 Docg 리제르바 2022 라 퀘르체 와이너리- 바이올렛, 홍차, 타바코, 허브 느낌이 잔잔하게 퍼진다. 타닌의 치밀함과 이에 걸맞은 날을 세운 산미, 유연한 질감의 알코올을 지닌 미디엄 보디의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다.

끼안티 콜리 피오렌티니 Docg 리제르바 2022 테누타 산 비토 와이너리- 잘 익은 붉은빛 과일, 상쾌한 숲 향기가 어우러진다. 경쾌한 산미와 치밀한 조직만이 도달할 수 있는 중후한 질감, 긴 여운이 곁들여져 만족도를 배가시킨다. 코가 감지한 과일 향기와 미각이 일치하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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