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병의 색깔은 와인의 보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와인은 햇빛뿐만 아니라 형광등 조명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햇빛에서는 단 한 시간의 노출만으로도 맛이 변질되어 이른바 ‘라이트스트럭(lightstruck)’ 향이라 불리는 불쾌한 향미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빨․주․노․초․파․남․보로 보이는 가시광선에서 빨강색의 파장은 700 나노미터(㎚) 근처, 보라색의 파장은 300 ㎚ 근처가 된다. 와인이 350~500 ㎚의 파장을 가진 빛에 노출되면 광화학 반응이 일어나며, 특히 370~440 ㎚의 파장에서 가장 큰 손상이 발생한다. 이 빛은 와인 병의 유리를 통과해 와인에 존재하는 리보플라빈(riboflavin)을 자극하여, 황화수소와 메르캅탄(mercaptans) 등을 생성하는데, 메르캅탄은 썩은 나뭇잎, 익힌 양배추, 리크, 양파, 스컹크, 젖은 양모, 간장 등과 같은 불쾌한 향을 유발하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
와인 병은 일반적으로 ‘갈색 병’, ‘녹색 병’, ‘투명한 병’ 세 가지로 나오는데, 이중에서 자외선 차단 효과가 가장 큰 것은 갈색 병이다. 갈색 병은 자외선의 97~98%를 차단하며, 와인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그리고 녹색 병은 색상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자외선을 63~92% 차단하는 효과가 있으며, 투명한 병은 자외선을 약 10% 정도만 차단한다. 사실상 10% 차단은 자외선 보호 기능이 거의 없는 수준이므로, 투명한 병에 담긴 와인은 단기 소비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실험에 따르면, 투명한 병에 담긴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와인은 형광등 아래에서 단 3.3~3.4시간 노출된 것만으로도 시트러스 향이 감소하고 불쾌한 향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외선 차단에 가장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갈색 병’은 독일의 라인가우 지역 외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와인메이커들이 와인을 가장 잘 보호하는 목적으로 병의 색상을 선택한다면, 와인 병은 무조건 갈색이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병 색상 선택에 있어 마케팅이나 기타 요소들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와인메이커는 병 색상을 선택할 때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 이들은 미적 측면(포장 디자인), 와인의 색상을 드러내고 싶은지 여부, 자외선(UV) 차단 수준, 전통적인 병 형태와 같은 소비자의 기대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하여 결정한다. 따라서, 와인 병의 색상 선택은 와인의 보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된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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