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재임 1801-1809)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재임 1801-1809)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재임 1801-1809)은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지만,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최초의 ‘와인 감정가(Connoisseur)’로 더 알려져 있을 정도로 와인에 대한 안목과 애정이 대단했다. “와인을 즐기는 것보다 미각의 습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청년 시절부터 스승인 ‘조지 위스(George Wythe)’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와인을 접했으며, 독립전쟁 전에 포트, 셰리, 그리고 가끔 레드와인을 마시는 정도였으나, 1784년부터 프랑스 주재공사로 근무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보르도, 부르고뉴, 론, 피에몬테 등 명산지를 방문하고 시음한 와인의 특성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보르도의 레드와인 중에서 마르고(Ch. Margaux), 라투르(Ch. Latour), 오브리옹(Ch. Haut-Brion), 라피트(Ch. Lafite) 네 곳의 와인을 최고의 것으로 선정하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프랑스에 있을 때는 고급 와인을 미국으로 보내고, 백악관에 있을 때도 연간 600병의 프랑스 와인을 주문하였다. 당시는 오크통에 담긴 와인을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오크통의 와인에 물을 타는 수가 많아서 제퍼슨은 꼭 왁스로 밀봉한 병에 들어 있는 와인을 선호했다고 한다. 최근에 밝혀진 것을 보면, 그는 보르도 와인 뿐 아니라 샴페인, 마데이라, 말라가, 라인, 소테른, 셰리, 샹베르탱, 화이트 에르미타주, 몬테풀치아노까지 다양한 와인을 주문하였다. 1809년 퇴직할 때 미지불한 와인 값이 11,000달러(현재는 158,000달러)였고, 집에서도 1년에 400병을 소비할 정도로 와인을 좋아하였다.

제퍼슨은 이렇게 와인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도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버지니아의 ‘몬티첼로(Moncello)’에 농장을 차리고 포도를 재배하였다. 처음에는 미국 토종 포도를 재배하다가 나중에 유럽 포도를 들여와 재배하였으나, 매서운 미국동부의 기후와 필록세라 등 병충해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였다. 제퍼슨이 살아있는 동안 그의 농장에서 와인을 생산하지 않았지만, 많은 와인 병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10개 이상의 와인 창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몬티첼로에서는 다른 술들은 많이 생산했다. 수백 명의 노예 중 두 명인 조지(George)와 우르술라 그랜저(Ursula Granger)는 사이다를 생산하는 기술로 제퍼슨의 칭찬을 받았고, 또 다른 노예인 피터 헤밍스(Peter Hemmings)는 맥주를 잘 만들어서 제퍼슨은 이를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몬티첼로는 제퍼슨을 기념하는 포도밭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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