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영어 사전에 소시지 (Sausage)를 검색해보면 '얇고 튜브처럼 생긴 케이싱(껍질)에 넣은 여러 향신료와 섞은 잘게 다진 고기'라고 나온다. 모든 부위의 고기를 남김없이 먹기 위한 조리법으로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다. 

대개 요리하고 남은 자투리 고기나 내장, 피 등을 사용한다. 특히 내장이나 피 등은 잡내가 심해 요리에 자주 쓰지 않는 부위로, 이 냄새를 잡기 위해 여러 향신료를 함께 넣는다. 여러 재료가 잘 어우러지도록 함께 갈아 섞고, 얇은 케이싱 안에 넣어 모양을 잡는다. 케이싱으로는 돼지 창자를 많이 쓰지만, 다른 동물의 창자나 콜라겐, 펄프, 합성수지제로 만든 인공 케이싱도 많이 쓴다. 속 재료와케이싱의 종류에 따라 조리법이 워낙 다양해 하나의 레시피라기보단 고기를 가공하는 방법에 가깝다. 

돼지 창자에 각종 재료를 섞어 넣은 우리나라 순대도 소시지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외국의 순대가 소시지인 셈이다. (유럽 소시지 중에는 피를 사용한 것들도 있는데 그 맛과 모양이 순대와 거의 유사하다.) 소시지 종류에 따라 속 재료나 케이싱에 따라 다양해지듯 순대도 그렇다. 케이싱의 종류에 따라 돼지 순대, 오징어 순대, 명태 순대 등으로 나눠지고, 과거에는 개 순대나 소 순대, 어교 순대(민어로 만든 순대)도 있었다.

▲ 필자가 스페인에서 만난 피로 만든 소시지. 튀겨낸 것이 다르다 뿐이지 한국의 순대와 아주 비슷했다.

가장 일반적인 순대는 돼지 순대다. 케이싱을 소창(소장)을 사용했는지 대창(대장)을 사용했는지, 내용물로 돼지 피를 많이 썼는지 찹쌀이나 당면을 많이 썼는지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순대가 발전했는데 유명한 것으로는 용인의 백암순대, 천안의 병천순대, 함경도의 아바이순대가 있다.

용인의 백암순대는 야채가 많이 쓰였고 상대적으로 잡내가 덜한 소창을 사용해 비교적 깔끔한 맛이 난다. 병천순대는 백암순대와 마찬가지로 소창을 사용했지만 선지와 찹쌀이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전주의 피순대는 병천순대의 변형이다. 아바이순대는 대창을 사용해 크기가 크고 내용물로는 선지와 찹쌀이 쓰였다. 한국 전쟁 이후 함경도 실향민들이 구하기 어려운 돼지 대창 대신 오징어를 케이싱으로 사용하면서 아바이순대의 변형, 오징어 순대도 생겨났다.

▲ 마트에서 산 찹쌀 순대. 당면을 적게 쓰고 피와 야채를 많이 넣었다. 미식 트렌드에 맞추어 요즘엔 마트에서도 손쉽게 옛날식에 가까운 순대를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분식으로 먹는 순대는 돼지 소창에 당면을 주로 넣은 것으로 전통 순대와는 약간 다르다. 지금은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데다 피와 내장 같은 고기의 부속을 사용한 음식이라 자칫 저렴한 음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순대는 원래 귀한 음식이었다. 고기 부속이라 해도 서민들은 쉽게 구하기 어려웠고, 창자를 깨끗이 씻고 각종 재료를 잘 손질해 창자가 터지지 않도록 속을 넣는 과정도 매우 번거로웠다. 돼지를 잡고 일손이 모이는 잔칫날쯤 되어야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순대가 대중화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양돈업이 활성화되어 돼지값이 내렸고, 돼지 피와 찹쌀 등 대신 더 저렴한 당면을 속 재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간식이 되었다. 

대중화된 순대가 과거의 순대와 다르듯 소시지도 변화를 겪어왔다. 돼지 내장을 케이싱으로 하여 자투리 고기와 부속을 사용해 만들어온 소시지이지만, 요즘은 살코기를 주요 속 재료로 쓰고 있다. 케이싱 또한 콜라겐 등 인공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당면 사용으로 고기 부속 비율이 줄어든 순대와는 또 다른 '탈 부속화'를 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순대도 소시지도 과거의 색깔을 많이 잃긴 했지만, 덕분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명맥을 유지한 덕에 미식이 트렌드가 된 오늘날에는 과거 방식의 부속을 사용한 순대와 소시지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전통이 변한다는 것이 항상 나쁜 일 만은 아니다. 유명한 순대나 소시지가 있는 지역에서는 앞다투어 자신의 음식들을 홍보하고 있으니, 국내외 여행을 다닐 때 비교하며 먹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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